그것만은 피하고 싶었건만
오전 10시. 인사 명단이 떴다.
교육청에서 2년 6개월 동안 근무하고 있었던 터라 떠나리라는 예상은 어느정도 하고 있었지만.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과 마음도 맞고, 일에도 자신감이 붙어 6개월만 더 있다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나 불안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아무리 가게 되더라도 학교 행정실의 차석 자리나 아니면 차라리 지원청 또 다른 부서의 일원으로 가고 싶었지만. 정말 피하고 싶었던, 가장 피하고 싶었던 행정실장의 자리로 가게 됐다.
아무리 작은 학교일지라도 새로운 곳으로, 특히나 새로운 직책을 맡아 가게 되는 그 떨림은 거의 두려움에 가까웠다. 교육청의 한 부서에서 거의 막내인 서무 역할을 하다 단번에 리더의 자리로 가게 되는 것이기에.
생각해 보면 리더의 역할이 분명 처음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동안 나는 반장을 도맡아 해왔다. 하지만 말이 반장이지 거의 전달책에 가까웠다. 반 친구들의 말을 선생님께 전하고, 선생님의 말을 반 친구들의 전하는 일. 그것이 거의 반장 직무의 전부였다.
무엇보다도 그때의 나는 모든 면에서 어렸기에 리더가 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저 시키는 일을 생각 없이 묵묵히 하곤 했을 뿐.
물론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보기에는 하찮아 보이겠지만) 30여 년을 살아온 터라 생각의 높이와 경험의 수준이 분명 학창 시절의 나보다는 높아졌으리라.
분명 높아졌다고 자부하는 나의 시선으로 행정실장이라는 자리를 바라봤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는 나의 눈높이를 집어삼킬만한 크기로 가로막고는 앞을 내다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그냥. 두려웠다. 때문에. 피하고 싶었다.
승진하면서 동시에 발령이 났기에 주변에서는 축하한다는 말이 빗발쳤지만, 그 말이 들리지도 와닿지도 않았다. 머릿속은 그냥 어둠이었다. 너무 깜깜해서 축하의 빛이 들어올 틈조차 없었다.
피하고 싶으면 피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를 이끌어 나갈 수 있었으면 정말 좋았겠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을뿐더러 현실을 좀 더 생각해야 했다.
그렇게 푸념하듯. 체념하듯. 현실을 받아들이려 했다.
이미 쌓일 대로 쌓여버린 근심과 걱정은 머릿속에 그대로 놔둔 채.
인사 명단을 확인하고 발령이 나기까지 일주일 동안 마음 편히 일을 하지 못했다. 현실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걱정이 다시금 휘몰아쳐 그 의지를 꺾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그냥 온갖 좋지 않은 것들을 껴안은 채 그냥 교육청을 떠나고 그냥 행정실장의 자리로 옮겨갔다.
그냥. 뚜벅뚜벅.
그렇게 나는 승진을 하며 교육청을 떠나 시골의 작은 학교로 가게 됐다.
그것도 정말 피하고 싶었던 행정실의 장으로.
그것도 온갖 불안에 휩싸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