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오아시스는 어디에
업무 인수를 위해 인사 발령이 난 학교로 출장을 갔다. 불안에 휩싸인 마음과는 달리 학교는 평온한 모습 그 자체였다. 바로 이런 걸 모순이라고 하나.
학교 현관 입구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니 행정실장님이 마중 나와 계셨다. 나보다 조금은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젊은 실장님이었고, 푸근한 인상에 긴장이 좀 풀렸다. 교무실, 행정실 직원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업무 인수에 들어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해야 할 일들을 들을 때마다 걱정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주요 업무로는 예결산 업무, 학교운영위원회 업무, 계약 업무, 인사 업무 등이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업무들이라 긴장감은 더해갔다. 역시 경험해보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자기도 처음 왔을 때는 막막했는데 결국 해지더라는 행정실장님의 말에 조금도 공감이 안 됐다. 역시 이미 경험을 한 사람들이 그 업무에 대해서 말할 때는 이렇게나 평온하다.
머릿 속으로 들어오려다가 자꾸 튕겨져만 나가는 업무 인수를 끝마치고 학교를 둘러봤다.
여기저기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이 공사는 어느 예산에서, 저 공사는 어느 예산에서, 입찰로, 수의계약으로.. 하고 있다는 말에, 사실은 쥐뿔도 모르면서 나도 그 정도까지는 이해한다는 것처럼 반응했다.
아하~ 그렇군요.
시설을 모두 둘러보고 이제 인사하고 그만 나가려고 했다. 점심을 먹고 가라는, 예의상 하시는 실장님의 말에 근처 살지도 않는 친구를 핑계 삼아 이미 약속이 있다 둘러댔다.
마음은 혼자 애가 타고 있는데 똥배는 자기 갈 길만 찾는다.
집 근처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에 들러 닭칼국수를 혼자 여유롭게 목구멍으로 후루룩 넘긴다. 오늘 새로운 직장에서 받은 불안감 또한 그렇게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넘어가기를 바라며.
Time waits for no one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자주 나왔었는데, 이게 또 떠올랐다. 새로운 직장으로 갈 날이 가까워지다 보니.
역시 기다려주기를 바라는 순간, 가지 않기를 바라는 순간, 시간을 비롯한 것들은 이토록 매정해진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학교까지 가는 거리가 조금 있다는 것. 차로 40분가량, 그 도로 위에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있다는 것은 일말의 위안으로 느껴졌다.
불안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차 안에서 앞으로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어떤 실장이 되어야 할지 등등을 생각해보려 했지만 의욕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냥 다 필요 없고 유튜브에서 '정말 조용하고 편안한 연주곡'을 검색해서 마음을 달래며 차를 달렸다.
그렇게 평온함을 갈구하면서 달렸던 차는 오아시스에 차마 도착하지 못한 채 어느새 원치 않았던 목적지에 다다랐다. 여전히 사막을 헤매고 있는 불안함을 간직한 채.
저번 학교를 방문했던 때와는 달리, 새 학기가 되자 선생님과 학생들로 학교는 생기가 넘쳐 보였다. 그 모습들에 눌렸는지, 불안한 내면을 감추고 겉으로만 당당한 모습을 내보이며 나는 학교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지금 즐겁지 않고 행복하지 않지만 마치 그래야만 되는 것 같은 느낌에 억지 미소를 인사할 때마다 날렸다. 사회적 가면을 꺼내어 씀과 동시에 나는 또 다른 내가 된다.
새로운 곳에서의 출근 첫날은 어디를 가나 어색하다 하지만. 행정실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발길을 떼는 그 순간의 공기부터 어색한 느낌은 뭔가 이전과는 다른 어색함이었다.
행정실장의 자리에 앉아 책상을 정리하고 쭈뼛쭈뼛 있는데, 처음으로 누군가가 "실장님~" 하는 소리가 들렸다. 듣는 순간, '아 나를 부르고 있는 게 분명한데 왜 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닌 거 같지' 그 찰나의 어색함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업무 인수자료에 따라 그날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교육청 회계와 학교 회계는 서로 다른 측면이 있어 버벅대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학교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었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신감이 하나씩 하나씩 쌓이기 시작하는 순간, 놓치고 있는 어떤 한 가지를 발견했다. 행정실장이기에 '결재'라는 걸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재대기에 가보니 이미 많은 문서가 쌓여 있었다. 처리해야 할 업무도 벅찬데 결재까지 해야 하다니.
하지만 결재할 문서들을 살펴보기도 전에 메신저에 나를 찾는 쪽지들이 보이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는 전화들이 왔다.
화장실 가는 것조차 사치로 느껴질 만큼 행정실장으로서 첫날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