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실장의 첫 한 달은 불안과 긴장의 반복과 연속이었다.
업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불안감에 휩싸이다가 막상 방법을 알고 난 뒤에는 일을 추진해 나가기 전 항상 긴장감이 뒤따라왔다. 편안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왕복 1시간 30분의 차를 달리는 동안 편안함을 찾고자 전에는 거들떠 듣지 않던 클래식에 손이 갔고, 자신감을 얻고자 10여 년 동안 찾지 않았던 록 음악을 귀가 찢어질 만큼 볼륨을 높여 들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느낌과 함께 너무 과도한 오버핏의 옷을 입은 것과 같은 어색한 느낌이 이어져, 나의 위치를 줄곧 스스로 알아차리며 확인해야 했다.
안 그래도 업무로 인하여 휘청거리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흐느적거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 흔들림에 강도를 더했다.
"실장님, 밖에서 일을 하다가 리어카 바퀴가 돌에 걸려 바람이 빠져버렸네요."
"아, 선생님 그럼 수리하는 업체에 맡겨야 하겠네요."
"네, 그런데 업체가 여기까지 출장은 못 온다고 합니다."
"그러면 바퀴만 빼서 차에 싣고 수리하고 와야겠네요."
"네, 실장님이 좀 다녀와 주세요."
마지막 말에 살짝 당황스러운 느낌을 받아, "네? 제가요?"라고 반응했더니, 오히려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흥분 섞인 목소리로 쏘아붙인다.
"아니, 제가 밖에서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것까지 제가 해야 합니까?"
너무나 황당무계한 발언으로 느껴져 어이가 없음이 표정으로 드러났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지극히 희생을 감수하는 평화주의자다. 그래서 너무나 안타깝게도 "아 그럼 알겠어요"라는 말로 나만의 평화를 추구한다.
마음이 허벌나게 타들어 가는 그런 말도 안 되는 평.화.
같이 일하는 차석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며 불로 지져지는 마음을 아주 조금은 식혔지만, 아직도 타들어 가는 후회가 뒤섞인 자괴감은 전혀 식을 줄을 몰랐다.
하지만 되돌려 놓을 수 없는 일이기에 나는 애써 아주 이상한 합리화를 했다. 내가 당신보다는 그릇이 넓으니 감수해 드리겠다. 나는 이런 허드렛일도 손수 하는 그런 섬기는 자세를 갖춘, 서번트 리더 행정실장이니까.
그러면서 펑크 난 리어카 바퀴를 들고 차에 실어 가까운 자전거 수리점에 가 수리를 맡긴다. 바람이 다 빠진 바퀴를 내려놓자 바퀴가 흐물거리며 드러눕는다.
힘이 다 빠져버린 모냥이 처량하기 그지없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나의 출퇴근 차 안은 명상과 심리학 유튜브 채널로 가득 찼다. 이런 상황은 왜 벌어진 것이고, 그 사람은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했으며,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생각을 곱씹으며 사건을 돌아봄을 반복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암만 생각을 좋은 쪽으로 바꿔보려 해도.
그리 해 지지가 않았다.
서번트리더는 무슨.
나는 그냥 한 마디로 호구.
그냥 정말 간단히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호구였다.
황당한 발언에 의해 무시를 당함으로써, 당황한 듯 반응을 보이며 꼬리를 내리는 모습이 꼭 집 한 켠에 아이가 붙여 놓은 포스터의 초식공룡 중에서도 가장 약한 초식공룡과도 모양이 같았다.
다른 공룡들을 해치지 않으며 평화를 추구하는, 하지만 행여나 공격을 받을까 늘 노심초사하는, 공격해 올 것 같으면 재빨리 도망치려 하는.
그런. 초식공룡.
나이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쉽게 보이는 성격을 파악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텃세 때문이든지. 아무튼 어떤 이유로 인해 그 사람은 나를 무시했고, 나는 또다시 그런 상황이 되풀이될까 봐 노심초사했다.
주위 사람들한테 내가 약한 모습으로만 비칠까. 항상 당하기만 하는 모습으로 비치지는 않을까. 그렇게 타인의 시선 또한 염려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자신감을 잃어가며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을 때, 어떤 유튜브에서 스테디셀러인 '미움받을 용기'를 자신의 인생책 중 한 권이라 소개하고 있었다.
곰곰이 들어보니, 그러지 않기를 계속 다짐하곤 했지만 나는 여전히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미움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은 그 인정 욕구의 범위가 과도하게 확대된 상태였기에.
미움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용기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아플 거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걸 알아차리고 있기에 과도한 인정 욕구를 내려놓게 됨으로써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달라진 상태로 벽에 붙어 있는 초식공룡을 보니 조금은 그 모습이 달리 보인다.
공격을 좀처럼 하지 않는 초식공룡들은 육식공룡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수단이 존재한다. 채찍 같은 꼬리, 머리에 난 날카로운 뿔, 갑옷처럼 단단한 등판.
애초에 날 때부터 갖고 있었을까. 아니면..
가만히 있는 너를 건드리진 않겠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나를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
가만두지 않겠다. 가만두지 않겠다.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셀 수 없이 당하면서, 다음번엔 절대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다짐을 반복하며 생겨난 진화의 결과물일까.
바득바득 이를 갈며, 강한 의지가 섞인 다짐을 머릿속으로 되뇌면 생각이 생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비슷한 상황이 다시금 벌어졌을 때 그 생각은 현실에서 행동으로 나타난다.
내가 바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