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파업때만 해도 금방 좋아지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대학병원에 다니는 동생 말을 들어보니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이었다. 거의 한달이 지난 지금 전문의도 파업에 합세한다고 했다. 동생의 병원은 교수진 전원 사퇴 문제로 회의에 들어간다고 했다. 현재까지 무엇하나 결정된 게 없는 상태라 동생은 더 애매하다고 했다. 차라리 병원에서 퇴사하라고 하면 실업급여 받으면서 이직을 준비할 수 있을텐데 라고 말이다. 불과 2년전에 퇴사한 나는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병원 생태계상 상급병원 진료가 무너지면 그 밑의 2차기관, 요양병원까지 환자 배정이 원활하게 되지 않을터였다. 그 끝이 간호사 밥벌이까지 갈지는 모르겠으나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보내주지 않으면 우리 같은 요양병원에서는 환자를 유치할 수 있는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면 병원 입장에서는 그 환자를 치료할 의사가 없는데, 환자가 없는데 간호사 수를 지금 이대로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 밥벌이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리고 대학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한 환자들이 2차 병원, 이를테면 종합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는 다거나, 중등도가 높은 환자들이 3차 병원이 아닌 2차 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게될지도 모른다. 내가 전공을 간호학으로 선택한 이유는 대부분의 그렇겠지만 나이팅게일의 숭고한 사명도 아니요. 그러나 물론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은 있어서였다. 밥벌이. 그래도 전문직이라는 타이틀 속에 취업률이 높다는 점도 메리트 그리고 그 한면만 보고 전공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와 댓가를 혹독히 치르는 중이다. 동생의 병원은 3차 병원이라 더 사태가 긴박하게 흘러가는 듯하다. 우리 병원에서도 그 병원으로 외진을 다니는 환자들도 파업 때문에 검사를 못한다고 연락을 받은 상태였다. 그 환자는 수소문 끝에 다른 전문 병원으로 검사를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입원을 시키는 전문의, 전공의 들이 파업에 나가다보니 남아있는 것은 교수진인데, 교수진도 전원 사퇴를 염두에 두고 회의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재원 환자수는 적고, 병상은 남아도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에 따라 간호사도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강제 무급휴가에 다음주부터 들어간다고 했다.
동생은 생계가 위태롭다며 농담반 진심반 이야기를 꺼냈다. 쿠X 알바를 해볼까 알아보기도 했다고 한다. 본인도 의사 파업이 되기전에는 평생 직장, 적어도 일할 데가 없지는 않겠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그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했다. 다른 일을 뭔가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면서 말이다. 이 시기 나는 대학병원에 진료를 볼 일이 있었다. 전공의가 없어 수술에 들어갈 일손이 부족하고 그러다보니 교수님은 수술실과 외래를 왔다갔다 하며 진료를 봐야했다. 그 덕분에 환자들의 늘어난 대기시간은 덤. 이 모든 것의 씨앗은 의대 정원 늘리기인가 싶지만 한편으로는 정부에서 조금더 의협과 원활한 대화와 소통으로 협의점을 찾았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있다. 언론에서는 전공의가 없어 응급실에 교수가 대기한다는 이야기. PA라고 하는 전문 간호사가 의사의 일을 한다는 이야기. 그로 인해 간호사들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어 간호법을 개정하자는 이야기 등등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간호사기도 하지만 환자의 입장으로서 의료 파업이 장기화되면 결국 피해를 받는 것은 국민, 환자들이다. 중증도에 따라 환자를 분류하여 1차 병원, 2차 병원, 3차 병원에서 치료를 하는데 의료 파업으로 병상 가동률이 떨어지는 병원들이 있다고 들었다. 실제로 기사에 의하면 빅5 병원의 매출은 감소하여 하루 손실액이 10억이라고 한다. 전공의들이 파업을 하므로 수술이나 입원을 시킬 환자 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내 주변 동료들의 병원도 50% 정도로 입원,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외래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왜냐하면 토요일에 출근하면 직원들 월급을 줘야하는데 환자는 반토막이므로) 토요 진료도 없애는 등, 병원 내부도 살아남기 위해 고육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지인의 직장도 이중에 하나) 만약 이런 병원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면 치료해야 할, 치료 받아야 할 환자들의 수요는 어디서 감당할 것인가? 라는 걱정이 든다.
이런 때 아프면 답도 없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코로나보다 훨씬 더 심각한 때가 지금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데 정부와 의협 모두 대화라기 보다는 서로 철벽치는 분위기다. 우리 나라 상급병원이 무너지면 그 밑의 병원도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된다. 문제는 정말 환자들이다. 아플 때 제 때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 병원 생태계에 딸려 있는 임상 병리사, 재활 치료사, 방사선사, 원무과 직원, 간호사, 법무팀, 행정팀 등등 수많은 사람들의 직장이 사라진다. 물론 다른 병원을 찾으면 되냐고 물어볼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정도 병원급보다 더 좋은 직장을 찾기란 어려울 것이며, 2차 병원 상황, 혹은 그 이직할 다른 병원 상황도 어떻게 될 지 모른다. 병원 다니면 정년 보장 이라는 말도 다 옛날 이야기가 되버렸다. 이로써 점점 평생 직장이라는 말의 의미는 사라졌다. 내 밥벌이는 회사나 직업이 책임져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부디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 의료 생태계, 병원 생태계가 환자들에게 적재적소의 진료, 치료를 하는 시스템으로 바뀌기를 바랄 뿐이다. 총선과 의사파업 때문에 정부도 고민이 많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쩌면 정치적 프레임을 위해 의사파업을 유도한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없지 않아 있다. 그 이념과 정치적 갈등 속에서 국민들과 환자들은 빼주시길. 정부와 의협이 원만한 대화를 통해 협의점을 찾았으면 좋겠는데 애초에 협의점을 찾을 수 있는 안건인가 라는 생각도 들긴 한다.
한줄평: 이 현상에서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피해를 보는 지를 생각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