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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년차 간호사지만 적성고민 하는 이유

by 유의미

최근 의료파업 이슈로 정부와.. 의협간의 대립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그 이슈속에 진지하게 내 밥벌이에 대한 고찰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사실 30 중반 넘어가서 적성 논란을 운운 할줄은 몰랐다. 왠지 30살이 넘으면 엄청 어른같고 뭐든 것이 안정되어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지극히 초등학생, 어릴 때의 관점으로는 그랬다는 거다. 그러나 내가 막상 어른이 되어보니 스스로를 책임진다는 것. 그리고 가족을 책임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느낀다. 오히려 부양할 가족이 생기고, 부모님을 챙겨야 하는 등, 30~40대는 유난히 힘든 세대다. 가장 풍요로우면서도 가장 빈곤하다고나 해야할까. 아무튼 창틀에 낀 느낌이 드는 건 없지 않아 있다.





내가 진로에 대한 현실 자각 타임을 처음 느꼈던 것은 학생 간호사 때였다. 아동 간호학 실습을 나갔는데 병동 선생님이 너무 바빠 보였다. 심장 병동이라 엄마들이 아이들의 맥박을 청진하는 것도 예민했다. 지금은 내가 아이를 낳아보니 그 마음이 어떨지 이해가 되면서도 말이다. 병동 선생님들은 학생 간호사에게 베풀 여유와 마음 따위는 없었다. 그곳은 각자 주어진 일을 다 해내기에도 부족한 전쟁터, 성지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이런 곳에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결코 졸업반 때 이 병원에는 지원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짐을 지켜냈다. 병동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대체로 대학병원 혹은 종합병원의 분위기는 이와 비슷했다. 절대 실수해서는 안되는 곳. 확인과 컨펌 인수인계가 명확해야 하는 곳. 그리고 그 병동 스타일은 팀장님(수간호사)을 보통 따라가거나 윗년차(고연차 핵심 멤버들)의 분위기를 타고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처음 일했던 곳은 내외과 종합병원 병동이었는데 팀장님 분위기 자체가 일반적인 넉넉한 관리자 마인드는 아니였기에 정말 별로였다. 자연히 윗년차들의 분위기도 그러했으며,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 생각하는 부분도 있지만 서로 바쁘다보니 예민해지고 뾰족해지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나는 그런 병동 분위기에 잘 적응할 수 없었고, 결국 3년차때 새로 병동이 오픈하면서 트랜스퍼를 권유했고 좋다하고 트랜스퍼를 간다. 새로 올라간 병동은 그나마 조금 더 나은 분위기였고 다닐려면 계속 다닐 수 있었지만 결혼을 핑계로 집에서 가까운 직장에 다니고 싶었다. 그렇게 호기롭게 그만두고 또다시 취업한 곳은 또 대학 병원이었다.(왜 퇴사했지 싶은...남편이 지금도 가끔 말하는 주제 중 하나다.) 그 사이 생각보다 일찍 첫째가 나오는 바람에 일찍 출산휴가에 들어가게 됐다. 그리고 다른 대학병원에 재취업한다. 왜 한 직장에 계속 다니지 않았냐 물어본다면 당시 나는 평생 임상에서 일할 생각이 없었다. 그 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책을 쓰는 일이며, 책을 읽는 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 thommilkovic, 출처 Unsplash







그리고 첫째 돌무렵, 첫번째 책이 나왔기에 아 뭔가. 내가 다른 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란 희망회로를 돌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업무, 육아를 병행하면서 두번째 책을 쓰기는 힘들었으며, 그무렵 나는 무언가 몰두할 대상을 찾다. 이번에는 부동산에 꽂힌다. 그렇게 1년 내내 부동산 강의와 임장을 하게 된다. 결국 3~4년 만에 결과를 내기는 했지만 전업 투자자로 살기는 또 어렵다는 판단을 한다. 그리고 단기간에 승부를 보는 일도 아니라는 것. 꾸준히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장기적으로는 관심을 갖고 책도 찾아보고 있다. 그러던 찰나 대학병원 경력직도 지원하고 이 길은 나의 길은 아님을 깨닫고 요양병원으로 이직했다. 물론 병원은 다 똑같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워라밸이 한층 나아진 상태에서 근무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랬는데 최근 의료파업 이슈가 생기면서 내가 정말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하고 있다.






10여년전만 해도 단순히 간호사하면 병원은 많으니까 밥벌이는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단순히 밥벌이로만 보기에 간호사 업무는 정확해야 하고 실수하지 않아야 하는 일이다. 혹 실수 했더라도 명확한 보고체계에 따라 보고해야 하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감정적인 성향인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올라올 때가 많아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연봉은 초임 치고는 높지만 그렇게 높지도 않다. 성과급이나 정근 수당, 효도 수당 등 나올 때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병원 재량, 몇차 의료 기관이냐에 따라 다르며 위험 수당, 나이트 근무, 공휴일 근무 등을 하면서 이 돈을 받는다면 연봉은 높지 않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보호자, 환자, 의사, 동료 사이에 많이 치이기도 하며 명확한 의사소통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 이건 어느 직군에서나 그럴 거지만 간호사 업무에 있어서는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워라밸이 별로 라는 점, (교대 근무를 한다는 점에서 남친이나 친구 만나기도 쉽지 않다. 일반 직장인과는 다른 한달 스케쥴로 살고 있으므로)감염 질환이 있는 환자 처치 등을 할 때는 나도 감염될 수 있다는 점. (물론 보호구나 손씻기를 잘하면 되지만 나도 모르게 바쁘게 일하다보면 needle stick(주사침 찔림 등을 당할 수 도 있다.)





특히 내가 있던 병동은 감염 병동이라 역격리, VRE(반코 마이신 내성균을 가진 사람), HIV positive (에이즈) 환자부터 교도소 수감 환자(보통 수갑을 차고 있고 교도관? 같은 분들이 지키고 계시는데 새벽마다 v/s을 나가거나 피검사를 할 때 여간 무서운 게 아니었다), 트랜스 젠더까지... 각양각색의 여러 환자들을 봤다. 이런 심신 불안정까지 생각하면 결코 많이 받는 것이 아닌. 또 실제로 심신 불안정 수당은 없기에.(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고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현재는 일하고 있으나 내가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나 진지하게 고민중이다. 내가 고연차지만 적성고민을 하는 이유는 아무리 일이 익숙해진다 한들,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 어려울 때가 많다는 점(물론 나도 만만치 않은 성격이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편이다), 업무 강도 자체가 타이트하며 그 날 그 날 이벤트에 따라 변동이 많다는 점이며, 무엇보다 내가 일을 하면서 재밌거나 행복하지 않다는 점이다. 심지어 더 재밌는 일을 찾았지만 수익화에 대한 고민이 있어 이것은 앞으로 내가 풀어갈 과제인 것 같다. 올해는 내가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무엇을 준비할지 차분히 생각해 볼 예정이다.







한줄평: 꿈을 그린 자는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데 내 꿈 오고 있는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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