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의 주제를 끄적여 내려가면서 하나하나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아 이 때는 이런 마음이었구나. 이 때는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나를 스쳐갔던 사람들, 내가 스쳐간 사람들과의 기억 조각들을 각각 맞는 병에 담는 느낌이랄까. 기억 조각들을 정리하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내가 일하면서 힘든 점, 어려운 점,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에 대해 적기 시작했다면 적으면서 환자들 생각도 참 많이 났다. 그들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한발짝 멀리서 응원하기도 하고 안타까워 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특히 더 이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간호사였으면서도 보호자였기 때문이었다. 2년전 아빠의 2번째 뇌경색이 발병하면서 환자와 보호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보호자들이 어떤 점이 힘든지, 환자 입장에서는 어떤 부분이 힘아빠의 회복 과정을 지켜보면서 절절하게 피부로 와닿았다.
그럼에도 원칙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다보니 내선에서 컷트하는 일들도 있다. 내 마음은 한 분 한 분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고, 그들의 요구대로 해주고 싶을 때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주면 우리도 편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어떤 한 사람만의 간호사가 아닌 모두의 간호사이기 때문이다. 원칙대로 처리하지 않고 봐주다보면 형평성에 어긋나게 되고 이많은 환자들을 케어하기 어려워진다. 물론 원칙대로 지키는 것도 어렵다. 그렇지만 의료나 공공서비스에 있어서는 원칙대로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공공의 선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돈의 많고 적음, 어떤 사람인지 관계없이 차등없는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사람 먹는 것으로 장난치는 가게나 사람들이 뭇매를 맞는 것처럼 최소한 건강, 사람 입으로 몸으로 들어가는 것에는 공정하고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그러다보니 우리 엄마, 아빠 잘 봐주세요 하는 보호자분의 마음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도 사람인지라 아 다르고 어 다르듯이 윽박지르거나 어깃장 놓듯이 말하는 분보다는 잘 좀 부탁드린다고 말하는 보호자나 환자에게 더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물론 그럼에도 형평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결국 모든 것은 말이나 태도에 대한 부분인데 우리가 감정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 예의있게 말도 행동도 조심해야 싶지 않나 싶다. 잘해도 욕먹고 못하면 더 욕먹는 직종에 종사하다보니 감사하다는 말도 듣지만 보통은 아무 소리도 안 들으면 평균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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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하면서부터 1인당 배정된 어마어마한 환자수 대비, 넘치는 일, 오버타임(퇴근 시간 이후 늦게 퇴근하는 것) 그럼에도 잘하지 못하면 욕을 먹거나 각종 사건보고서를 써야하는 일들, 같이 일하는 동료들 사이의 예민함, 아픈 환자 보호자 사이의 예민함, 주치의들과의 소통에서 벌어지는 일들 등등 이런 부분 때문에 이직이나 전직을 생각한 적이 많다. 지금은 인계 시간도 대폭 줄이고 대학병원도 머리망이 필수도 아닌 시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태움 문화가 있는 병원은 소리없는 전쟁터다. 가끔은 우리가 병원 밖, 다른 곳에서 만났으면 참 좋았을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아마 의료 서비스 업무 자체가 잘해도 욕먹고 못하면 더 욕먹는 업종이다보니 아무리 근무 환경이 좋아진다고 한들, 조직 문화 자체가 바뀌기에는 어렵다고 느낀다. 그 어려운 현장에서 일하고 계신 간호사 선배님들, 후배님들, 동료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럼에도 환자들과 만나고 신뢰가 형성되고 대면하는 병원이 좋으면서도 몇몇 힘든 일을 겪게 되면 가슴 속의 사표를 마치 총으로 쏴버리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피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았던 것.(응급 사직하지 않았던 것) 여러 파트를 경험했던 것. 여러 가지 도전을 했던 일들이 스스로도 기특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 쓰고 있는 글 중 상당수가 현장에서 일하고 배우고 몸과 마음으로 굴러서(?) 얻은 경험이기에. 경험이 자산이다는 말을 실감하는 중이다. 만약 간호사가 되지 않았다면, 병원에서 경력이 짧았다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쓰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특히 아빠가 아팠을 때 병원에서 일했던 것이 참 많은 도움이 됐다. 가족들을 지지해줄 수 있었고, 왜 이런 치료를 했는지, 앞으로 과정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현직에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된 건 물론이다. 생각해보면 간호사는 스스로 일해서 좋은 것보다는 그들의 가족이 좋은 것 같다.
아이들이 아플 때도 선택과 결정, 판단이 빠른 편이다. 이럴 때는 당장 병원에 가야할 상황인지 아닌지, 어느 과를 가야하는지 등등. 여기 병원 선생님은 이런 스타일이시구나 라는 것들이 너무 그려진다는. 가끔 그래서 병원을 옮길 때도 있다. 너무 권위적이거나 너무 친절한 의사 선생님도 부담스럽고. 개인적으로 극강의 친절함보다는 적당한 친절함과 서비스를 장착한, 약을 잘써서 빨리 낫게 해주는 선생님이 좋다. 또 여초 집단(물론 남자 간호사도 최근 많아지는 추세다.), 위계서열 명확한 곳에서 일하다보니 기본적인 사회 기술&눈치를 저절로 탑재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간호사로 일하면서 너무 힘들었지만 힘든 것만 있었던 건 아니었더라는 걸 깨닫는다.
가끔, 환자 보호자에게 친절하고 잘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이름을 물어보기도 했고 감사인사를 받기도 했다. 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내가 이렇게 묵묵히 일하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었다.(이런 것이 잠깜인데 업무랄 때 힘든 부분이 훨씬 많기에 커버되지 안는다고나 할까?)그곳에서 나랑 너무 복붙인 친구를 만났고, 어쨌든 그 일로 밥벌이 하면서 결혼도 하고 집도사고 그 돈으로 아이들도 키우고 있다. 감사하면서도 애증의 직종이라고나 할까. 언제까지 계속할지, 어떤 답을 내릴 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내가 간호사가 된 이유가 있을거라는 생각은 한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사기치는 일은 아니고 떳떳한 일이라 이만하기를 다행이다는 생각도 함께.
요양병원 김간호사 외진 및 후기 마침.
한줄평: 10년 뒤 나는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