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워킹맘] 엄마이기 전 나로 살아가기
얼마 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한 글을 보았다.
워킹맘의 이직 관련 고민이었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가 아이에게 좋은데, 이직하고 싶은 회사는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엄마로서 이직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이었다. 아마 워킹맘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봤을 문제일 것이다. 블라인드에는 이런 글들이 자주 올라온다. 워킹맘의 '워킹'을 택할 것인지 '맘'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댓글의 행태는 다양했다. 대부분의 댓글은 엄마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이직을 하라고 했다. 일부 댓글은 아이를 위해 현재 직장에 머무르라고 했다. 선택은 글쓴이의 몫이겠지만, 남 일 같지 않아서 한참을 보았다. 댓글을 쓸까 말까 고민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다가 결국 쓰지는 않았다. 각자의 사정이 다르므로 글쓴이의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
워킹맘 3년 차.
나 또한 이런 고민을 수없이 많이 했다.
하지만, 나는 올해 6월 이직을 했다.
이전 회사는 워라밸이 좋은 회사였다. 주 35시간이라 오후 5시면 업무가 끝났다. 대기업이라 복지도 좋은 편이었다. 오래 근무하여서 업무도 익숙했고 아는 사람도 많아서 일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평가도 잘 받았고 작년에는 승진도 했다. 이대로 계속 근무하면 평가도 계속 잘 받고 위로 잘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직을 결심했다. 그 이유는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나를 위해서였다. 이제 나이도 꽤 있는지라 마지막으로 내가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회사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새로 옮기는 회사는 업무강도가 세서 아이에게는 좋지 않을 것 같았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다. 엄마가 아닌 나로 살기 위해서. 나는 그렇게 엄마가 아닌 나의 삶을 선택했고, 이직에 도전해 성공했다.
우리 동네 맘카페에 자주 올라오는 글이 있다.
워킹맘의 퇴사 고민이다.
이 고민은 복직해야 하는데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와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가장 많이 올라온다.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한창 필요할 때 회사에 다니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초등학교 때는 엄마의 손길이 가장 많이 필요할 때라고 하는데, 아직 아이가 4살이라 얼마나 손길이 필요할지 상상이 안 된다. 우리 엄마도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워킹맘들이 가장 많이 퇴사하는 것 같다.
나 또한 퇴사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아이를 낳고 1년 3개월 동안 계속 붙어 있다가 회사에 복직한 첫날,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맨날 집에서 맨얼굴에 편안한 옷차림만 하고 있다가, 화장하고 새로 산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왔는데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에서도 내내 기뻤다. 회사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갑자기 아이가 생각났다. '지금쯤이면 어린이집에 도착했겠지?', '뭐하고 있을까?', '밥은 잘 먹었나?' 복직하고 한동안은 회사에서 아이를 생각하느라 일에 집중을 못 했다. 계속 아이의 얼굴이 아른거렸고, 걱정되었다.
복직을 하고 5개월 정도 지났을 때, 일이 너무 많아서 야근을 계속 한 적이 있다. 아이가 잠들 때 집에서 나오고 집에 도착하면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아이와 함께해주지 못한다는 마음에 죄책감을 수없이 많이 느꼈다. 아마 그맘때쯤이었을 것이다. 내가 퇴사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시기가. 나는 온종일 퇴사에 대해 고민을 했다. '아이를 위해 퇴사를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야. 나는 아직 일하고 싶어. 내 일이 있는 멋지고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어'. 내 안에 두 자아가 매일 같이 싸웠고, 결국 일을 하고 싶은 자아가 승리하여 아직 워킹맘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때 나의 퇴사 결심을 무찌른 건 지인이 건네준 아이와의 대화였다.
그분은 아이가 둘이 있었고, 이미 다 커서 한 명은 대학생, 한 명은 고등학생이다. 예전부터 쭉 일해오던 분인데, 아이가 컸을 때 아이에게 이렇게 물어봤다고 한다.
"OO아, 너는 만약 예전으로 돌아가면 엄마가 일 안 하고 집에 있으면 좋겠어?"
"아니, 나는 일하는 멋진 엄마가 좋아."
그러면서 그분은 아이는 다 각자의 방식으로 알아서 크게 되어 있으니, 내 삶에 집중하라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그분처럼 일하는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가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그런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2019년에 한 조사에 따르면, 워킹맘의 95%가 퇴사를 고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상대로 퇴사 고민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극에 달했다. 이 시기에 많은 부모가 아이를 위해 회사를 그만둔다. 그런데 나는 그 후가 궁금했다. 과연 회사를 그만둔 부모들이 행복한지 궁금했다. 퇴사 결심을 그만둔 데에는 앞서 말한 지인의 대화도 중요했지만, 중요한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아이가 컸을 때? 그때는? 아이는 다 커서 자기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나는? 그때야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가서 다시 나의 직업을 찾아야 하는 걸까? 그러기엔 너무 늦은 거 아닐까?
세상에 무수히 많은 직업 중에 '워킹맘'이 있다.
워킹맘은 직업 중 가장 많은 노동시간을 요구하는 직업이다. 하루의 24시간이 노동이다. 일과 육아.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돌아와서 아이를 보고 아이를 재우고 나면 정작 남는 시간은 1~2시간. 이 시간도 집안 정리하고 설거지하면 어김없이 사라져 버린다. 과연 누구를 위한 직업인지 새삼스럽게 궁금해진다.
직장인의 삶을 잘 그려내 인기를 끈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그 드라마에는 뭐든지 잘하는 워킹맘 선 차장이 나온다. 일과 육아 뭐든지 잘하는 그녀. 회사에서 힘든 업무를 마치고 야근을 한 뒤 집에 돌아가 늦은 밤에 설거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행복해지자고 하는 일인데 왜 정작 행복해지지 않는 거지?"
모두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
나는 모든 워킹맘이 아이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결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그 행복이 일에서 느껴진다면 계속 일을 하는 것이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서 느껴진다면 그만두고 전업맘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그 선택은 오롯이 워킹맘의 몫이며, 그 선택에 따른 대가도 오롯이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결코 아이만을 위해 선택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구를 위한 선택이 아닌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면 좋겠다. 엄마가 일하는 건 누군가에게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워킹맘들이여.
누구에게도 미안해하지 말고 자신을 먼저 생각했으면 좋겠다.
오늘도 퇴사와 이직 고민으로 힘들어할 세상의 모든 워킹맘에게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