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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루씨 Feb 20. 2022

엄마가 되면 희미해지는 것들

[그래도, 워킹맘] 내 이름 석자 찾기




엄마가 되면 그때부터 희미해지는 것들이 있다.

내 이름, 내 시간, 내 공간


내 이름 석자보다는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고,

내 시간보다 아이의 시간이 우선되고,

내 공간은 육아용품으로 가득 찬다.


희미해지는 것은 내 취향도 마찬가지다. 밥을 먹을 때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보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먹게 된다. 신혼 시절 몇 달을 고심하여 예쁘게 꾸며놓은 집은 아이의 육아용품이 점령하여 내 취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여행을 갈 때도 아이를 위한 편의시설이 있는 곳부터 찾게 된다.




아이를 낳고 몇 달 동안은 그게 좋았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를 보며 자라왔고 나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커오면서 사회에서 주입받은 교육도 한몫했다. 우리 사회는 육아는 전적으로 엄마의 일이라고 나에게 교육시켰다.


하지만 그 생각에 의심을 품은 건 처음으로 엄마가 나를 'OO 엄마'로 불렀을 때였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나를 이름으로 부르던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OO 엄마'로 부르기 시작했다. 아빠에게 그랬고, 남편에게 그랬고, 전화하면서 친구에게 그랬다.


아이를 데리고 동네 소아과에 처음 갔을 때가 기억난다.

"어머니, 이거 작성하시고 가져다주세요."

예방접종을 하기 전에 오늘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보호자 사인을 하는 종이였다.


어머니?

내가?


삼십몇 년 동안 병원에서 불렀던 내 이름은 온데간데없고 '어머니'라는 호칭이 이제는 나를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그때는 얼떨결에 대답했지만, 집에 오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자기 전에도 '어머니'라고 부르던 소아과 간호사의 음성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희미해져서 없어지기 직전인 내 이름은 복직 후에 되찾을 수 있었다. 회사에서 나를 'OO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업무 시간은 온전히 내 시간이었고, 점심을 먹을 때도 커피를 마실 때도 내 취향대로 선택해서 먹을 수 있었다. 책상 위의 공간은 내 취향대로 꾸밀 수 있었다. 출퇴근 시간에는 내가 무슨 일을 해도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 했던 일들을 출퇴근 시간에 넣어서 해보았다. 책을 읽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도 했다. 지하철에 사람이 많든 적든 그건 상관없었다. 오로지 내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아이를 낳고 처음 백일 동안은 몸이 힘들다. 아이는 배가 고플 때 기저귀가 불편할 때 잠이 올 때 수시로 칭얼대고 운다. 그때마다 아이를 달래서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고 잠을 재운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끝나버린다. 잠이 부족해서 힘들고 밥을 제때 먹지 못해 힘들다.


아이가 통잠을 자고, 이유식을 떼고 유아식을 먹고, 걸음마를 떼고 혼자 걸을 수 있게 되면 비로소 몸이 힘듦은 어느정도 사라진다. 이제는 밤에 아이가 깨지 않아 푹 잘 수 있고, 밥도 그나마 제때 먹을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정신적인 힘듦이 찾아온다. 이러다가 내가 점점 희미해져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점점 없어진다는 거였다.


복직 후 6개월 동안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을 그만둘까 휴직을 더 할까 라는 생각 속에서도 나를 끌어올려준 건 나를 되찾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매일 일과 육아로 전쟁 같은 하루를 치르면서도 내가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이다.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나를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나로서 대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희미해져 가는 나를 

조금씩 되찾았다.

온전히 내 이름 석 자를 불러주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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