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매우 구체적이다. 그리고 꾸준하다.
나는 감사하게도 이러한 사랑을 아빠에게서 많이 받고 자랐다. 아빠의 사소하고도 구체적인 사랑은 내가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나갈 힘뿐만 아니라, 내 인생 오랜 후에도 꺼내 기억할만한 진한 인상을 남겼다.
아빠의 매우 구체적인 사랑은 이런 것이다.
매일 밤 자러 가기 한 한 시간 전 내 전기장판을 미리 켜서 따뜻하게 이불을 데워놓고, 전자파 차단을 위해 잘 때쯤 미리 꺼놓는 것. 그 온기는 잠자는 동안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었다. 시간이 지나 전기장판은 유단포, 보온물 주머니로 바뀌었다.
보온물 주머니의 배달은 더 많은 절차를 필요로 했다. 우선 큰 냄비에 뜨거운 수돗물을 가득 채워놓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팔팔 끓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엄마, 본인, 나의 것 차례로 마개를 열어놓은 유단포를 싱크대안에 잘 세워둔 후, 작은 냄비를 이용해 큰 냄비 속 뜨거운 물을 연달아 부어 담는 것. 마친후에는 마개를 꽉 잠근 후, 유단포 주머니천으로 단단히 두르고 리본을 묶어 채운다. 그리고 침대 안에 연탄 배달하듯 넣어두면 된다.
하루의 마지막을 끄고 침대에 들어갈 때 미리 덥혀져 있는 그 보온물 주머니는, 늘 냉기가 도는 나의 차가운 발뿐만 아니라 하루 동안 지친 나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덮어주었다. 원래 가족을 위해 크고 작은 헌신을 보여주시는 아빠이기에 처음에는 이런 수고를 당연하게 여겼지만, 이 수고가 매일 밤 변함없이 거듭 반복될수록, 내겐 당연한 것이 아닌, 마치 매일 밤 준비된 선물처럼 느껴졌다. 자취생활에 이러한 사랑을 잊고 살다가도, 타지에 사시는 부모님이 미국을 방문하셔서, 몇 주에서 때론 한 달 동안 나와 머무는 동안, 나는 이러한 꾸준한 사랑을 먹으며 큰 위로와 힘을 얻었다.
큰 것이 아닌데도 사소하고 구체적이고 꾸준한 것은 아주 커다란 힘이 있다. 그리고 쉽게 잊히지 않고 오래가는 진한 감동을 남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줄 수 없고 받을 수 없는 것이기에 특별한 것.
사소한 것은, 내게 당장 백 불같은 큰돈이 없어도 상대방에게 내어줄 수 있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베푸는 일이다. 또한 구체적인 것은 인격적이다. 다시 말해선 관계적이다. 즉 상대방에게 깊고 차근하게 주의를 기울여야만 알 수 있는 것들. 상대방을 깊이 보아야만 캐치할 수 있는 것 들이다. 그리고 꾸준함은, 늘 반복하는 것.
그러한 사랑을 많이 받았으면 나도 그대로 나누어 줄 법도 한 것인데, 평소에 정이 많고 베풀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주위로부터 자주 듣지만, 꾸준함에 있어서는 나는 퍽 자신이 없다.
꾸준함은 나에게 늘 어려운 단어이다. 늘 이벤트성에 기댔고,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됐고, 깊게 헌신했다가도 때론 동굴 속으로 숨어버리는 나. 꾸준하게 누구를 사랑한다는 건, 지금의 나의 기분과 상황에 리밋하지 않는것. 당신은 늘 내게 참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고, 그런 당신의 존재가치에 맞게 (변함없이) 당신을 대하겠습니다.라는 무언의 약속이 들어있는 듯하다. 관계가 아직 참 많이 어렵고, 사랑에 둔하고, 종종 나의 공간으로 숨어버리는 나이다. 이러한 수많은 나의 못난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사랑으로 내 옆에 함께 있어주는 사람들이 참 고마운 밤이다. 그들을 보며 나는 나의 사랑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나가는 법을 배워나가고, 동굴밖에 나와 다시 손을 내민다.
당신의 사랑이 구체적일 수 있길. 그리고 꾸준하게 누군가를 감싸주길.
그 사랑이 많은 이가 아닌, 단 한 사람을 살리는 사랑이 되길..... 한 사람 안에는 온 우주가 들어있으니까.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