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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Dec 17. 2023

3화. F코드를 가진 이들을 위하여


괜찮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은 꽤 오래전부터 였다. 너무 슬펐고 너무 기운이 없었다. 위험할 정도로 어린 아이 때 부터 죽음에 대하여 고민했고,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해 발버둥쳤다. 나는 그 모든 감정과 질문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하는 것 인줄만 알았다. 나는 어느 순간에도 안락하지 않았고, 무엇도 진짜 사랑할 수 없었다. 


마음이 무겁고 쓸쓸했다. 이 마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도무지 방법을 몰랐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며 깨닫게 되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아팠다. 이어지는 불행은 내가 견디기 힘든 수준의 것이었다. 나에게는 분명 암흑기가 있었고, 건강하지 못했던 나는 계속 패배했다. 이미 지쳐 있던 마음은 지쳐 나가 떨어졌다.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는 불구자가 되었다. 확실히 하루에 백 번은 죽고 싶고, 백 번은 병원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교차하여 드는 상태는 얼만큼은 희망적일지라도 정말 위험한 상태였다. 밤낮이 바뀌고 대낮에는 우는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나는 마지막 방법을 쓰기로 했다.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을 찾은 것은 그 다음 선택이 죽음이라는 전제였다. 진심을 다해 간절한 상태였다. 그리고 동시에 다음 선택이 아슬아슬하게 기다리는, 외줄타기 같은 마음이었다. 냉소가 가득 찼던 당시 나는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았다. 병원의 의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기다리던 백여개가 넘는 질문지는 식은땀이 흐르도록 나를 지치게 했다. 한참이 지나 의사를 만나고 정신과 의료코드 F코드를 몇 개 받고, 약을 병원에서 받고, 몇 시간만에 겨우 나와서 작게 한숨을 쉬며 손발을 덜덜 떨었다. 나는 공식적으로 이상한 사람이 된 것이다. 


드디어, 사는 내내 불편했던 이 감정들이 코드를 찾아 종이에 인쇄되고 그에 맞는 약을 받은 것이다. 나는 이제 어디를 가도 의료기록상으로 정신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된 것이다. 그 날의 기분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만일 내가 정상이라고 하면 어떻게 할지에 대하여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르겠다. 불행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지극히 비정상이었고, 깊은 기억처럼 치료도 고되고 오래 걸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마음 깊이 다행스러웠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러가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나는 지금껏 부지런히 달라졌다. 그럼에도 아직도 F코드명이 미묘하게 조금씩 달라지며 여전히 유효하게 ‘정상적이지 않은’ 아픈 사람이다. 이러한 틀을 꽤나 오래 안고 살면서 거리낄 것 없이 공개하고 살아왔다.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는 정상인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기 위해서 이다. 




같이 지내던 친구와 언쟁이 있었다. 참고로 그 친구는 차분하고 이성적이며 대부분의 경우 화를 내지 않는다. 나는 정신병 여부와 상관없이 기질 자체가 감성적이고, 위기에만 이성적이고, 대부분의 경우 흥분과 기쁨과 슬픔을 모두 잘 표현한다. 이렇게 기질이 다른 둘이 언쟁이 일어나면, 대부분 내가 혼자 흥분하고 괜찮아졌다가, 납득하고 마무리 된다. 누가 봐도 내가 ‘정신이상자’이기 때문에 발발한 갈등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때 나의 기질은 모두 질병으로 치부된다. 


나는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보다 더 많이 슬프고, 더 자주 삶에 대해 생각했고,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하고, 위험하게 한다. 그러나 그 ‘틀’이 주는 고정관념은 참으로 초보적인 실수들이 많은 것이다. 


왼발이 아프다고 오른쪽 발로 지나가던 사람을 걷어차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개연성이 부족하다. 마음이 우울하다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무시하거나 우울하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은 많이 부족한 생각이다. 동요에 취약한 사람에게는 내 우울이나 불안이 잘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백퍼센트의 확률로 전염될 리는 없다. 이것은 유전과 기질과 과거력과 무엇보다, ‘병’일 뿐이다. 느껴지는 것과 전염되는 것은 다르다. 감기환자 옆에 있으면 옮을 ‘수’있지만 무조건 옮지는 않는다. 면역력이 낮으면 옮을 확률이 높다. 반대면 답도 반대일 것이다. 


F코드가 생기면 덧씌워지는 지나치게 ‘충동적’, ‘감정적’ 일 것이라는 오해, 혹은 왜곡은 답답할 뿐이다. 질병과 성격은 닿아 있지만 다르다. 대중의 편견이 변하는 것은 늘 기대보다 느리다. 발맞춰 걷기엔 답답하고 앞장 서기에는 외로운 F코드 방황기는 어디까지 계속 될까. 


누구보다 죽음 앞에 자주 서 본 사람, 누구보다 내 질병과 나에 대하여 많이 되짚어본 사람, 누구보다 F코드가 나보다 더 앞에 서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 F코드를 가진 이들을 위하여 이 글을 바친다. 



2023년 12월

심경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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