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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Dec 03. 2023

1화. 주저앉아 울고만 싶은 하루를 보낸 당신을 위하여


1화> 주저앉아 울고만 싶은 하루를 보낸 당신을 위하여



아직 저녁 6시밖에 되지 않았다. 여름이라면 이 시간에도 빛이 들었겠지. 정말 잔인한 일 이다. 나는 까무러치게 힘든데, 대낮같이 해가 들다니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 시간이면 한 두방울의 눈물 정도는 감출 수 있는, 어스륵한 시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걸까.


나는 힘이 들 때마다 어서 해가 지는 것을 기다린다. 너무도 나약한 태도지만 저녁이 오면 오늘 나의 하루를 마감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허락을 받은 것 처럼, 차분히 마음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어 지고는 한다. 베란다 넘어로 해가 지고, 그 사이에 있는 열 띄었던 식물들이 차분해지는 것 같아 보인다. 모두 다 제 마음이 원하는 대로 보는 광경일테지만 말이다. 밝디 밝은 등을 차분히 끄고, 살구색 등을 하나 둘 켠다. 내가 잠에 들기 위해 준비하는 루틴이다. 하지만 아직 오후 6시 일 뿐이다. 오후 8시로 자동 점멸을 설정해 둔 식물 등이 아직 꺼지지도 않았다.


나는 유별나게 긴장이 많은 아이였다. 초등학생 때, 준비물을 반 쯤은 스스로 챙기곤 했는데, 그때마다 ‘어른들이 하는 일을 내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무척 긴장했다. 문방구에 들러 구경하고 싶은 호기심을 꾹 누르고, 사야할 것이 적혀진 종이를 문방구 아저씨에게 건네고 동동 발을 굴렀던 기억이 꽤 있다. 이게 맞는지, 제대로 산 것인지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 수업 시간이 찾아와서 내 것이 친구들 것과 같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 에야 긴장이 풀려 졸음이 쏟아지던 때도 있었다. 내가 준비한 것이 친구들과 영 다른 것이라면, 그 때의 나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생 준비물이 인생을 좌우할 리가 없는데 그 당시 나의 세상은 그런 것 들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 이르게 찾아온 ‘책임’ 이라든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티나는 일 들 말이다. 수업을 마치기까지, 얼마나 어쩔 줄을 모르며 동공이 흔들렸는지 그런 날은 화장실이든 양호실이든 달려나가 울고 만 싶었다.




어쩌면 요즘의 나는 아직 그때와 비슷하다. 별 도리가 없다. 나에게 준비되어 있어야 할 무언 가가 없다 거나, 생각지도 못한 것을 요구 받으면 그 후로 몇 시간은 ‘뭔가 잘못됐구나.’ 하는 직감과 함께 굳어버리고 만다. 어른이 되고는 준비해야할 것만이 아니라, 일이 엉켜도, 늦어져도, 원하는 의도대로 전달이 되지 않아도, 일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도 이제는 탓할 누군가도 없이 오롯이 내 탓이다. 그러니 순식간에 식은 땀이 흐른다. 이 사건이 인생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지만, 이런 것들이 누적되어가면 평판에 좋지 않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뒷수습을 하는 것 까지 모두 하고 나면 어느새 빽빽한 반성문을 쓴 것 처럼, 지칠대로 지치고 만다. 그리고 딱 울고 싶어 진다. 화장실과 양호실이 사뭇 그립다.


그 어느 누구라도 나를 위로해줬으면 하지만, 사실 누구의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디든 내 몸 누일 곳에 가 소리를 내든 말든 그저 울고만 싶어 진다.


아직 저녁 6시를 조금 벗어난 시간, 7시도 9시도 12시도 도달하려면 약속한 기다림이 필요하다. 어쩌면 오늘 같은 날은, 시간이 내 편이어서, 잠시 멍-하게 기다리면, 조금 일찍 늦은 밤에 다다르기를 괜시리 투정해본다.

치열하게, 오늘도 가득 채운 당신을 위하여 얼굴도 모르는 이가 드리는 위로가 얼마나 힘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누구의 위로라도 필요할 때가 있곤 했다. 어떤 날들은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위로가 더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을, 삶이 퍽퍽하다는 것을 배움과 동시에 함께 알아차렸다. 홀로 울어도 주저앉아 빨리 오늘을 어떤식으로든 마감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이 마음 그대로를 알아주는 이가 아주 멀리 있지는 않다고 생각해주시길.


하루를 성실히 채운다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무엇을 잔뜩 했던 안 했던, 하루를 채운 ‘나’는 존중 받아 마땅하다. 되도록 주무시는 그 곳만은 안전하고 완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길, 마음 깊게 소망해본다. 까무라치도록 잠들어 그 다음 날이 되면 개운하게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꿈도 없는 밤을 누리시길. 오늘의 고됨이 그렇게 털어지는지는 감히 짐작할 수 없지만, 응원합니다. 평온하세요.




2023년 12월

심경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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