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대하여 생각했다. 겨울이 이렇게 따뜻해도 될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겨울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지, 여름을 유독 힘들어 하는 내가 사계절이 전체적으로 따뜻해 지는 이 현상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심지어는 12월 한복판에 반팔에 얇은 셔츠를 걸쳐 입고 짧은 외출을 하기도 했다. 춥지 않고 알맞았다. 놀라웠고 어떤 부분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것 앞에서 느끼는 무기력에서 느껴지는 슬픔을 느꼈다.
불안과도 비슷한 불행 중 다행이라 할지, 곧 이어 ‘이게 추위였지.’ 싶은 강한 겨울 바람이 불었다. 순식간에 영하 7도 영하10도, 쭉쭉 떨어졌다. 한 주 만에 20도를 훌쩍 뛰어넘는 온도차가 발생했다. 그와 동시에 감기 환자가 속출했다. 겨울이 제대로 온 것이다. 급하게 월동준비를 해야했다. 발코니에 있는 식물을 전체적으로 단속하고, 많이 추운 날은 물을 굶겼다. 무리하게 물을 먹였다간 그대로 얼어버리고 말테니.
강한 추위에도 정해진 약속과 일정은 소화해야 했다. 오히려 취소하려고 머리 쓰지 않는 내가 기특하다는 생각에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긴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서는데 강아지 둘 중 하나만 마중 나온다. 작은 요크셔테리어 젊은 할배는 추워서 움직이기가 싫은 것이다. ‘백 번 이해해.’ 외투를 벗고 가방을 적당한 곳에 올려 두는데, 갑자기 집안에 썰렁한 기분이 든다. ‘혼자 사는 집’이라는 강한 느낌이 온 몸에 느껴졌다. 그 순간 철저히 외로워졌다. ‘이건 또 어떤 고독함이지?’ 혼자라는 생각을 애써 피해왔는데, ‘정말 나 혼자구나’하는 생각이 스며들어 나를 가득 채웠다. 그렇다. 난 혼자다.
연말이 다가오니 후회와 반성의 나날이 지나간다. ‘조금 더, 조금 덜, 그럼에도, 그렇지만…’ 쌓인 마음과 해소해야 넘어갈 수 있는 숱한 나날들이 버겁고 내년은 나아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하루 차이로 새 해가 되어, 나는 갑자기 성장하듯 그렇게 훨씬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맞나? 신경숙의 <외딴방>에 이런 말이 나온다. ‘성숙해지는 것은 나이가 듦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 하는 것이라고. 2024년 1월 1일은 무엇을 그만하거나 시작하는 어떤 좋은 계기가 될 수는 있겠지만 예정된 성장의 날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나 인 것으로, 부담을 줄이고 나를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잡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작은 계획들이 있지만, 인생은 대부분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그때 꼭 이루어 내야 한다는 구체적인 일정을 잡지도 않았다. 그저 최선을 다 해 볼 뿐. 답은 그때에 가봐야 알 수 있다.
한 해의 마지막, 이로써 2023년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 여러 기억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혼자가 된 후의 내가 허우적 거렸던 모습이 아주 기억에 남는다. 한 해를 거의 가득 허우적거리며 그때그때 버텨가며 살아남았다. 홀로 남은 나에게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고,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응원이 필요했다. 내가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마다, 연락처에 있는 응원해 줄만 한 사람들에게 연락할 용기도 줄어만 갔다. ‘나만 힘들 리가, 내 하소연을 왜 들어야겠어.’
그렇게 모두에게로 부터 멀어져갔다. 괜찮지 않은 얼굴을 하고 괜찮은 척 말하기가 가식이고, 기만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라리 나약하게 기대는 편이 나았을까. 한 해가 지나고 사방이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로 반짝이며 빛이 날 때, 그 옆에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는 검은 패딩의 나 같은 사람은 저대로 어우러지지 못할 때, 빈 말이라도 ‘정말 예쁘다’, ‘연말 분위기 난다’라고 가뿐한 마음을 나눠 갖는 사람이 되었다면, 지금 내 마음은 많이 달랐을까. 그렇지 못했던 나는 지금도 반짝이는 모든 빛이 지금을 위해 빛나든 온갖 연말 분위기를 낼 때, 정작 그것들의 그림자 처럼 어둑하고 느릿하게 홀로 강아지 두 마리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하며 쓸쓸해 한다. 쓸쓸하지나 않았으면 고민도 없었을 것을, 나는 지금 이렇게 사는게 맞는지에 대하여 자주 생각하고 고민한다.
내가 혼자라 느끼는 이유는 물리적인 ‘혼자’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가족들과 함께 살 때도 나는 철저히 혼자라고 느꼈다. 내 안에 채워지지 않는 어떤 감정은 텅 비어서 마르지도 채워지지도 않고 그런대로 그렇게 비어 있기만 하다. 어쩌다 영화를 보다가, 어떤 장면에서 기가 막히게도 대사와 장면이 마음에 꼭 들 때, 콘서트에서 노래 가사와 멜로디가 내 마음을 강하게 내리칠 때, 우연히 보게 된 한 단락의 글이 한 권의 책만큼이나 무게 있게 자리잡을 때. 겨울의 일몰이 다가오며 비친 해가 마지막 강한 그림자를 만들어낼 때, 한 겨울 곰의 겨울잠처럼 버텨 주기만 해도 좋은데, 용기 있게 새 싹을 내어줄 때 그것을 보았을 때. 나는 장담한다. 나에게는 위와 같은 순간들이 쌓이고 쌓이면 내 안의 쌀통 같은 그 통이 조금씩 채워져 간다는 것을.
그 통이 비고, 물리적으로 혼자가 되고, 차갑고 쓸쓸한 집에 들어서면, 나는 완전한 혼자가 된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새 해 첫 날이 되면, 나는 그렇다고 성장하지 않았겠지만 새로운 자세로 달라진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기에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그 날을 위해, 홀로 인 것에 괜찮은 사람이 되길. 단단한 마음과 내 안을 가득 채우려는 욕심이 나길. 나를 기대해 본다.
2023년 12월 마지막 날.
심경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