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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Jan 14. 2024

7화. 가시돋친 당신을 위하여


(이 글을 읽기 전에, 우울증이 있으시다거나, 불안하시거나 혹은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시는 분들은 한 번 더 고려 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지자체별로 복지부 관할 1차 정신병원에 대한 지원이 있는 경우도 있으니 찾아 보시길 권해드리며, 109번으로 전화하시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괜찮다. 정말 괜찮다. 24시간, 365일을 푸근하고 다정한 마음일 수는 없는 일이니, 오히려 당연한 일 이다. 지금 돋친 가시는 그저 다치기 쉬운 그런 날, 보호하기 위해 돋아난 것 일 뿐이다. 열심히, 지금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셈이다.


지금 이후에 반성하고 돌이켜 후회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당신의 예민함 속에 숨어 ‘나’를 지켜내는 일 이다. 당신의 선택이 맞다. 그 곳이 가장 안전하다.


태어나길 예민하게 태어나 기질이 어느 만큼 까다로운 나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 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던하고, 두루두루 어우러져 지내는 성격의 친구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나 자신이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은 생각보다 긴 시간 이어졌다. 나의 예민함은 내 안의 가시를 아주 자주 불러냈다. 잠시 지나가면 그만인 악취 같은 것도 인상을 쓰고 숨을 참고 버티다 힘들어지면 편두통이 생겨 번지곤 했다. 이런 내가 피곤하고 때론 곤란했다. 감정이 넘실대는 연애시기에도 잘 웃고 잘 울었다. 분명 남들보다 더 자주, 더 많이.


이 모든 것들이 버겁고 고통스럽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나는 나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참고, 견뎌주기 싫었다.


내 마음이 끓고, 차게 식고, 얼어붙고, 다시 끓고를 반복하면서 나는 굉장히 힘들었지만, 그때가 나았다고 생각할 시간이 덮쳐올지는 상상도 못했다.


모든 마음이 모래알이 되어서, 촉촉히 내리는 비마저 모두 아래로 흘러내리고 모든 고통이 돌이 되어서 정작 새싹이 피어 오르는 봄이 되어도 내 안에서 씨앗 하나 품을 수 없어졌을 땐,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다. 내게 그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내가 나를 위해 하던 것은 울고, 잠드는 것 뿐이었다. 깨어있는 모든 시간은 죽음만이 느껴졌고, 향초의 불꽃이 후- 불면 꺼지듯 잠이 들고 나면 어둑한 잠의 기억은 죽음처럼 깊고 길었다. 그랬다. 내 마음과 몸과 정신과 그 밖의 모든 것들은 방향을 죽음으로 곧게 뻗어내고 있었다. 매우 위태로웠다. 황야의 다 말라버린 선인장 같았다. 그래, 당시 나는 선인장조차 견딜 수 없는, 극한의 마른 계절 같았다.


그런 나에게 불행한 일은 꾸준히 찾아왔다. 잠옷을 입은 채 가만 서서 노련한 격투기 선수에게 흠씬 맞는 기분이었다. 하루 씩의 고비가 지날 때 마다 나의 가시는 돋아나고 돋아나 내 온 주변을 빽빽하게 감싸고 돌았다. 나를 지켜주던 유일하고 단 하나인 것, 그것은 내가 가진 예민함 이었다.




나의 모든 기분과 지능과 생각이 나를 포기했을 때 까탈스럽고 예민하고 가시돋친 감각만이 나를 껴 안았다. 그리고 나에게 꽤나 솔깃한 말을 했다.


“죽는 건 ‘끝’이야. 끝은 내일 해도 늦지 않아. 딱 하루만 미뤄보자. 이 상태에서 떠나면 너의 고통을 아무도 모를 거야. 완벽하게, 마음에 들게 준비해보자.”


‘완벽한 죽음’을 위해 내일 아니 모레, 일주일 뒤에나 죽자니…, 그것은 미천한 미끼였지만 무엇에도 절박했던 내게 솔깃한 제안이기도 했다. 그 뒤, 죽고 싶으면 울었고, 울다 지치면 잠들었다.



삶은 화려한 무엇이 아니다. 내게 삶은 침대를 떠나 앉아있는 것. 해야 하는 일을 만들어내고, 느려도 하나씩 해보는 것. 슬퍼지면 여전히 울고, 힘들면 가시 돋치지만 그것이 계속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힘들고 우울하지만, 이토록 예민한 나를 전부 이해할 수는 없어도, 있는 대로 받아들이는 일.


내게 삶은 1분 1초의 연장, 그것을 위한 노력. 우리 모두가 가시 돋친 그 날, 그 날 밤 자신을 탓하느라 자신을 혐오하고 미워하느라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더 나은 죽음을 위해, 마지막은 꼭 오늘이 아니어도 되니까. 오늘 밤은 가시를 방패삼아 살아남아 보는 것은 어떨지, 수 년 전 내게 내게 그랬던 것 처럼, 오늘은 내가 당신께 손을 내밀어 본다.


2024년 1월

심경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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