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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Jan 07. 2024

6화. 불안한 새벽5시를 보내는 이들을 위하여



내게 잠은 커다란 과제 같은 것이다. 삶을 통과하는 큰 주제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단잠을 잔 날이라고 하면, 소풍을 다녀왔거나, 초등학생 시절 태권도를 다녔는데 종종 2-3시간씩 운동하던 날, 너무 바빠서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지는 날, 등 사실상 ‘뻗는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 날들 이다. 하지만 사람이 매일 쓰러지듯 하루를 보낼 수는 없고, 다음 날 몸상태가 영 좋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다지 추천할 만한 방법도 아니다. 


병원을 다니면서 부터는 잠을 이룰 수 있도록 저녁마다 수 많은 약을 먹고 있고, 밤 루틴을 만들기도 했다. 잠들기 루틴이라는 게 별건 없지만 공유하자면, 우리집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식물들을 위해 ‘식물등’이 켜지게 설정해 뒀는데 저녁8시에 식물등이 꺼지면 침대 옆 살구색 등을 켜고 다른 불을 모두 끈다. 어두워 졌음을 머리에 인식시키는 행동이고, 나에게 ‘이제 자자’ 라고 말을 거는 것과도 같다. 이 이후로는 휴대폰 사용도 줄이고, 9시쯤엔 잠자기전 약을 먹는다. 아홉시 반쯤, 약기운이 돌 때 쯤 침대에 들어가 이불을 덮고 꼼지락 거리고 있자면, 약속한대로 잠이 찾아온다. 


루틴, 말 그대로 계속 반복되는 내 몸과 정신과의 꾸준한 약속 같은 것 이어서, 별 일이 없으면 이 상태로 쭉 잠을 자고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깬다. 하지만, 아직 약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과, 스트레스 받은 일이 생기면 이 루틴이 전혀 소용이 없어진다는 맹점을 안고있다. 




내게 잠은 지쳐 나가 떨어져 기절하 듯 드는 휴식. 무서운 악몽에서 깨어나 땀을 닦는 것, 스트레스를 받거나 간수치가 좋지 않으면 과수면으로 바로 이어지는, 컨디션의 바로미터 이다. ‘자기전’약은 나에게 황금 열쇠와 비슷한 존재다. 많은 날 나에게 편한 잠을 쥐어 준다. 황금 열쇠가 있음에도 큰 스트레스나 우울삽화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 그런 날 이면 9시 반 부터 준비한 잠이 12시, 1시반, 3시, 5시…, 까지 밀리면, 옅게 어둠이 밝아지면서 내 마음은 쿵, 하고 떨어진다. 


오늘 하루는 어떤 기운으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동시에 강한 불안함이 덮쳐온다. 내가 지금 양껏 일을 하고 있지도 않고 1/3쯤은 정신이 잠에 들어서 밀린 책읽기도 못하고, 가만히 멍하게 있는 새벽의 시간이 너무나 불안한 것이다. ‘오늘 일정이 뭐였지?’, ‘이 상태로 일정을 해낼 수 있을까?’, ‘지금 내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뭐지?’ 이런 걱정들과 그 무엇보다, 


‘지금 떠오르는 이 해를 맞이할 자격이 되는 걸 까?’ 


라는 생각이 압도적으로 나를 차지한다. 물론, 해는 자격을 따지고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저 나의 푸념이자 스스로를 닦달하는 마음인 것이다. 예전에는 뭐라도 해보자고 새벽 꽃시장을 찾아가곤 했다. 그 곳을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타고, 내려서 걷고, 시장을 훑어보고, 이 모든 것들 속에 삶을 매일 이 시간에 사는 사람들이 함께 한다. 나는 그저 어쩔 줄 모르는 애매한 태가 티나게 사람들을 쓱 살핀다.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 것이 왜 ‘죄스러운’지 모르겠지만, 소소하게 강요되는 이른 아침 사람들에 대한 존경은 기분이 퍽 나쁘지만은 않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세뇌 당한 걸까?


새벽 꽃시장에 도달하면 밤새 못 잔 몸은 젖은 코트를 입은 것 처럼 축 쳐지지만, 상인들의 적당한 긴장감으로 정신만은 또렷하다. 


우선 한 바퀴 슥 돌아보며 요즘 어떤 꽃들이 나왔나 구경한 후 본격적으로 같은 종의 식물이어도더 싱싱하거나 색이 예쁜 것들을 찾아 돌아다닌다. 한 품에 꽃을 안고 집에 돌아오면 잠이 와도 잘 수 없는 신세가 된다. 꽃을 다듬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유지하는 온도와 집의 온도는 다를 수 밖에 없고, 꽃이 확 펴 버리거나 푹 고개를 숙이기 전에 가시나 필요 없는 가지의 잎들을 정리한다. 정리가 끝나면 꽤나 어지럽혀진 테이블을 정리하고 잠시 낮잠을 잔다. 눈을 뜨면 정갈하게 꽂혀진 반가운 꽃을 볼 수 있다. 


어떤 때에는 꽃시장이 나를 안심시켜준다. 모두가 자는 새벽, 너를 받아줄 곳이 여기 있다고. 이전에는 드라이브를 즐기기도 했다. 시장까지 갈 기운이나 운전할 정신이 없는 요즘은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쓴다. 그런데 꽤 도움이 된다. 어제와 오늘을 구분해주는데 꽤 좋은 도구가 되어준다. 왜 잠을 못 자는지, 왜 정신이 뒤숭숭한 지 이유를 찾아내기도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을 하거나 걱정을 하고 있던 것이다. 있는 그대로 그래, 난 이런 사람이야. 하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쭈뼛대던 승모근을 풀어내리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뜬다. 


새벽내내 우주에 나 홀로 있는 것 같은 적막함을 이겨내고 견딘 나에게 칭찬을 한다. 별것 아닌 일로도 스스로 칭찬을 하는 것 같아 머쓱해 진다. 

홀로 여도, 그게 지독히 적막한 새벽 5시 여도 괜찮다. 당신은 최선을 다해 오늘로 달려왔다. 



2024년 1월

심경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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