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 Jul 30. 2022

불안한 당신께 전하는 식물 이야기

8.불안한 사람의 피서, 출렁이는 파도 옆 소나무길 걷기

8.불안한 사람의 피서, 출렁이는 파도 옆 소나무길 걷기


어린이때 부터 피서를 가지 않았다. 여름이면 늘 도심 한가운데 집에 박혀 더위를 조금이라도 덜어보겠다고 노력했다. 그 덕에 수박은 내 소울메이트였으며 이쯤 나오는 말랑한 복숭아는 복날이면 먹는 귀한 과일이었다. 그런 나에게는 피서라는게 무언가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움직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운데 왜 바깥을 돌아다니지?’ ‘가만히 집에 있는게 가장 시원한 것 아닌가?’ 라고 말이다.


그때는 여름에 집에 있는게 너무나 당연해, 내가 너무도 영리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조금만 지나면 가을의 바람이 불텐데, 여행은 그때 가야 사람도 없고 값도 싸고, 움직이기도 쉽다고, 그렇게만 생각했다. 더운 여름, 너무 답답해서 자연을 벗삼아 이렇게 저렇게 추억을 쌓아보는 피서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올 해는 달랐다. 독립 이후 수 년을 함께 가을 피서를 함께 했던 동거인이 이번에는 부서를 옮기며 여름 휴가를 내버린 것 이다. 어찌해야 할지 몰랐지만, ‘집에 있겠지.’하는 생각이 마음 한 켠에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여름도 여름이고, 불안증 때문에 땀이 남들보다 더 나기 때문에 어딘가로 움직이는 것이 부담스러운데, ‘설마 피서가자고 하겠어?’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주말을 껴서 열흘이나 되는 휴가 기간이 너무도 지루했던 동거인은 망설이지도 않고 내게 물었다.


“양양이나 강릉 다녀올래?”


올 것이 왔구나…!, 피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강아지를 키우기 때문에 1박을 하려면 일이 복잡해 진다. 아마 당일치기 여행을 하자는 뜻일 것이다.


“그… 그래.”


사실 강릉방향, (정확히는 속초)는 내게 특별한 공간이다. 어디 먼 곳을 혼자 나가는 것을 불편해하는 내가, 울화통이 터질 것 만 같아서, 아무에게도 말 하지 않고 전화기를 꺼놓고 속초행 고속버스를 탔다. 버스는 달리고 달려 속초에 도착할 때 쯤이 되니 창가에 빗줄기가 후두둑 떨어졌다. 우산이 없었던 나는 참으로 당황스러웠는데, 마침 터미널 바로 옆에 편의점이 있어서 우산을 샀다. 그렇게 바로 근처에 바닷가가 있는 속초를 걸어가니 금새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착한 해변에 난감하게도 여자분이 한 분 계셨다. 바다를 보며 소리 없이 주륵주륵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그제야 나도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소리 없이 주르륵. 훌쩍이는 소리조차 없이 그냥 눈물만 주르륵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렇게 거세게 비가 흩나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한참을 울다가, 먼저 와있던 여성분이 먼저 길을 떠나고, 홀로의 시간을 보내다가 카페를 찾아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전화를 켰다. 그리고 중요한 사람들의 메시지에 차분히 답을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날씨를 검색하니 서울은 여전히 비가 오지 않아서 터미널 손잡이에 우산을 걸어 놓고 돌아왔다. 누군가에게 용이하길 바라며….


속초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나는 매우 고단한 사람처럼 푹 잠을 잤다. 부산스러워 잠시 깨어보니 휴게소였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시 잠을 깨어보니 서울에 도착해 있었다.


나에게 이 청승맞은 기억은 나의 감정을 오롯이 쓰다듬어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어딘가 떠나고 싶을 때 이 기억을 떠올리면 나는 어디든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용기가 나곤 한다.


이번에도 아주 좋은 기억이 남았는데, ‘해파랑길’을 걸은 추억이다. 해파랑길은 사실 엄청나게 긴 동해(경상도 해변길)안 트래킹 길이다. 이번 기회로 알게 됐는데, 작게 나부끼는 리본이 존재를 알려줬다. 넘실거리는 파도가 울렁이는 마음을 만들어줬다면, 그 옆에 소나무들이 빼곡히(지나치게) 심겨져 있어 그 폭신거리는 길을 걷고 또 걸으며 바다도 보고 나무도 보고 내 발걸음도 지켜보았다. 나무들은 해변가에 심겨져 있어서인지 이리 휘고 저리 휘었는데, 그 자유로움이 어째 나쁘지 않아보였다. 해풍을 맞아 그 나름대로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이 멋있어 보였다.


동거인은 나만의 시간을 주겠다며 차로 미리 도착지점에 가있고, 나는 홀로 그 긴 길을 걸을 수 있었는데, 잡스러운 생각들, 걷고 있는 지금 나에 대한 생각, 요즘 나에 대한 평가, 등등을 하며 이것을 글로 쓰면 정리가 좀 되겠다는 생각까지…, 참 다양한 마음을 가졌다. 물론 이 나무 저 나무 참견하며 만지고 쓰다듬는 일도 빠트리지 않았다.


이 다음 코스로 마지막, “뮤지엄 산”이라는 곳을 갔는데, 무려 1인당 35,000원이라는 입장료를 내고 명상코스를 선택해서 들어갔다. 뮤지엄을 열심히 구경하다가, 정해진 시간을 예약해서 명상을 할 수 있는 코스였는데, 정말 기억에 깊게 남는 몰입이 깊게 가능한 공간(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돔 형태의 건축물)에서 40~45분 가량의 명상을 진행했다. 15분쯤? 20분쯤 지났을까? 싶었는데, 명상이 모두 끝났다고 해서 많이 놀랐다. 그동안 이런 명상은 겪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나’에 대하여 깊은 관찰을 하는 것이 명상이라면 나는 처음 제대로 된 명상을 해본 경험이다.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피서라면 열번이라도 떠나겠다. 나를 바라보고, 걷고, 뒤돌아보고, 명상하고. 군데군데에서 때에 맞춰 약을 먹어서 차에서 이동할 때마다 잠에 들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중간중간 피로가 쌓이지 않도록 그때마다 피로를 풀어줬다. 새로운 공간을 갈 때마다 불안증이 도져, 눈동자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곤 했는데, 그때마다 동거인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피서라면 열번이라도 떠날 수 있겠다. 특히 파도소리와 솔잎이 쌓인 길을 밟는 내 발걸음 소리만이 가득했던 해파랑길의 평화로움은 당분간 잊지 못할 것 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한 당신께 전하는 식물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