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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리 피디 May 21. 2024

띄어쓰기 띄어살기

의존과 독립의 적당선에 대해


우리글의 어려움이라면 단연코 띄어쓰기입니다. 브런치 글 발행 전 맞춤법 검사를 할 때 그 난해함을 느끼실 겁니다. 가령, 띄어쓰기는 붙이는데 띄어 쓰다는 띄어야 하는가? 차라리 일본어나 중국어처럼 다 붙이거나 서양말처럼 처음부터 오해의 여지가 없다면 좋았을 것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의존명사인데 왜 의존하지 않고 띄우는가


내로라하는 맞춤법 고수나 사회적 영향이 큰 언론도 종종 띄어쓰기를 틀립니다. 그중에는 한 음절 의존명사가 꽤 됩니다. 바, 데, 것, 줄, 수, 뿐, 리 따위인데 앞말인 관형어와 띄어야 합니다. 


짧은 글짓기 하나 해볼게요.

네가 원하는 를 이루는  꼭 필요한 을 내가 줄 수 있다면 주저할  있겠냐만 할  아는 거라곤 이것뿐이라 안타깝구나.


이것도 어려운데 오버도 문제입니다. 는 어떤 일이 벌어진 이후까지의 시간을 뜻합니다. 의존명사라 띄어야 합니다. 널 만난도 벌써 십 년은 틀리고 널 만난 지도라고 띄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강박이 해서 의존명사가 아닌 것에도 띄우는 경우가 생깁니다.  지 결정하다, 했는 지 잊다, 무얼 먹을 지 생각해 등은 틀린 겁니다.


기자들이 쓴 기사와 심지어 헤드라인에서도 자주 틀립니다. 드물게는, 를 띄우는 경우도 있어요. 의존명사 데를 띄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밥 먹었는 데, 보고를 했는 데, 짜증이 나는 데 따위로 틀립니다. 이런 실수는 한심하다기보다는 좀 안타깝습니다.


우리글의 숙명적인 어려움, 띄어쓰기


세종 임금이 개발할 때 한글에는 띄어쓰기가 없었습니다. 한자를 쓰듯 그냥 붙여 썼지요. 그러다가 문제가 생겼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한 글자가 하나의 뜻에 대응하는 한자와는 달리, 한글의 한 음절은 뜻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혼동이 발생하죠. 대전시장애인복지관이 대전시에 사는 장애인을 위한 복지관인지, 대전시장의 애인이 운영하는 복지관인지 헷갈립니다.


그렇다면 왜 철자 메커니즘이 비슷한 일본어는 다 붙여 쓰는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일본 글자도 의미 혼동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한자까지 섞어 쓰므로 혼란이 덜할 것으로 짐작합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에서 가방을 한자로 쓰면 조사의 쓰임과는 변별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음운과 단어의 결합에서 오는 혼동을 최소화하는 겁니다.


우리 민족의 성향도 띄어쓰기를 하게 된 데 반영됐을 겁니다. 한글은 엘리트 군주의 계몽의식에서 비롯됐지만 오랫동안 천한 민중의 활자였습니다. 민족성 회복이 절실해진 일제강점기까지 말입니다. 우리 말글을 다시 찾는 과정에서 세종의 과학정신과 실용주의가 다시 발휘되었을 겁니다. 띄어쓰기는 혼란을 막고 소통을 제대로 하기 위한 제2의 발명인 셈이죠(그 여파로 지금 어려움을 겪긴 하지만..)


띄어 살기도 어렵다


떨어져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이야 자유로워졌지만 코로나 시절의 미덕은 사회적 거리두기였어요.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인간이 거리를 두고 살아야 했는데 참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바이러스 운반체가 아닐지 서로 의심하고 경계하는 일은 '도대체 인간은 뭔가' 싶은 실존적 물음까지 갖게 했죠.


제가 존경하는 고 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가장 어려운 숙제, 적당한 거리


감옥이든 돌림병이든 내 의지를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일은 불행입니다. 가까이 지내고 싶지만 떨어져야 하고 떨어지고 싶지만 붙어 있어야 하는 삶은 괴롭죠. 이런 특수상황이 아닌 일상에서어려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내가 붙어 있고 싶은 사람이 나와 띄워 살고 싶다거나 나는 귀찮은데 저 인간이 자꾸 거리를 좁혀오면 부담과 짜증이 생깁니다. 헷갈리기도 하죠. 상대가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지, 가까이 지내고 싶어하는지 알아차리는 것, 적절한 방식으로 알려주는 것, 모두 어렵습니다.


우리글의 띄어쓰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띄워 살기만 할까요? 헷갈리긴 해도 국립국어원이 있어 정답을 알 수 있는 문법처럼 띄워 살기에도 정답이 있다면, 우리는 덜 힘들까요, 더 행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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