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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리 피디 Jun 11. 2024

특별시 특례시

다 특별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특별한 대우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비슷할 겁니다. 남들과 똑같이 대접받는 건, 글쎄요, 그다지 진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특별해지고 싶은 게 우리 모두의 속내 아닐까요. 사는 곳도 예외는 아닙니다.


서울특별시, 제주특별자치도, 세종특별자치시, 강원특별자치도, 전북특별자치도, 창원특례시, 수원특례시, 고양특례시, 용인특례시...

'특'자 돌림 이름을 갖고 있는 지역들입니다. 얼마 전에는 경기도를 분도 하면서 북쪽을 평화누리특별자치도로 하자는 주장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듣자 하다른 웬만한 도와 광역시 역시 ''자를 붙이려고 애쓰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다가는 모든 지역이 전부 특별한 곳이 될 것 같네요.


특과 평, 특출과 독특


特은 특별함을 뜻하는데 반대말은 平입니다. 평범, 평상시, 평탄, 평안, 평화, 평소, 평정심, 평지 등 지형이나 상황 따위가 무난한 상태를 말합니다. 반대로 특은 뭔가 역동적입니다. 돌출이 있거나 궤도에서 벗어나 눈에 띄는 상태죠.


영어에서 평범한 건 ordinary, 비범(非凡)하고 특출(特出)난 건 extraordinary라고 합니다. outstanding이라고도 하죠.  뭔가가 더 있거나(extra) 튀어나와 돋보이는(out) 겁니다. 평이하고 무난한 건 이 특별함에 묻혀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한편, 독특(獨特)한 건 unique라고 번역합니다. 그런데 특출난 것과 독특한 것은 어감 차이가 있어요. 특출, 비범, 특별은 서열이 전제된 말 같고, 독특한 것은 평가의 영역 바깥에 있는 느낌이에요. 가령, 콩쿠르에서 1등을 수상한 연주자(특출)와 경연에는 안 나가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맘껏 즐기는 연주자(독특)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도시들이 추구하는 특은 어떤 걸까요? 다른 고장보다 우월한 특출인가요,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유니크함일까요?


특별과 평이 사이에서


관종(관심종자)은 특을 유난히 좋아합니다. 평은 못 참죠. 도드라져야 기분이 좋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글쓰기에 있어서는 관종일 가능성이 큽니다(물론 저도 그렇고요). 글에 개성이 없고 평범하다는 , 글을 못 쓴다는 것만큼 뼈 때리는 평가죠.


반면, 튀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두 부류인데 스스로 무난하길 바라는 경우와 다른 사람이 특별한 걸 못 참는 유형입니다. 전자는 소심함과 수줍음쯤으로, 후자는 '모난 돌에 정 때리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어요.


아무리 조용해도 영원히, 아무도 알아주지 않길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때로는 군중심리에 의존해 묻히기도, 자신의 특별함을 과시하고 싶기도 합니다. 누구나 특별하기를 바라면서 또 한편으로는 무난하길 기대하는 거죠. 동전의 양면처럼요.


그럼 어떨 때 특별을 추구하고, 어떨 때 무난하기를 원할까요? 어쩌면 욕망은 개인보다 집단일 때 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듯합니다. 그룹에 속해 있을 때 더 용감해지는 것이죠. 집단행동이 쉽게 과격해지는 이유입니다.


특별시도의 욕망학


동네 이름도 그래요. 이름이 어떻든 그냥 잘 살면 그만이라는 사람이 다수여도 그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으므로 쉬이 묻힙니다. 구조상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은 없어요.


반면, 특별 대우를 해달라는 주장은 도드라지죠. 그들의 목소리는 과대반영됩니다.  정부교부금을 많이 받든, 의사결정의 자율성을 보장 받든 이들의 요구는 욕망과 연계돼 있습니다. 그 욕망이 더 크고 더 절박해 보이는 착시현상입니다. 특을 외치는 사람들은 주로 정치인들이죠. 이런 주장을 펴고 떠들면서 이익을 챙깁니다.


모든 지역이 특이면 어쩌자는 건지 답답합니다. 모든 학생이 '수'를 받으면 성적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죠. 서열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평이한 게 이상해지는 사태가 우려되는 거예요. 최고 시속 100km  구간에서 모든 차가 120을 밟는다면 100은 거추장스러워집니다. 선행학습이 횡행해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한글을 몰라 손가락질받는 사태도 비슷하죠.


또 하나. 특별이라고 이름 붙이다고 특별해지는 건 아닙니다. 그건 바람이지, 현상은 아닙니다. 나 사는 곳이 특별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명명한다고 특별해지는 건 아니죠. 오히려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도 있어요.


짜증 나는 네이밍 중 으뜸은 정당 이름이에요. 걸핏하면 바꾸는데 지긋지긋합니다. 그것도 그럴싸한 용어는 다 갖다 붙이면서 정작 하는 작태는 반대예요. 정당 이름 변경 금지법이라도 만들고 싶어요. 알맹이가 없을수록 껍데기를 수시로 바꾸는 모지리들입니다.


미래라고 부른다고 미래지향적인 것도 아니고, 민주가 들어간다고 늘 민주적인 건 아니죠. 국민을 운운해도 국민을 도외시하는 일도 다반사고요.


그냥 살게 두자


사회가 성숙할수록 얄팍한 허울이 걷힌다고 생각해요. 그냥 서울시, 세종시, 제주도, 강원도,라고 불러도 다 알아듣습니다. 자부심 느낄 사람은 다 느끼고요. 도민, 시민을 우습게 보지 마세요. 특별을 넣어 우리 동네가 나아질 거라 믿는다면 이런 맛집 이름을 한 번 곱씹어 보세요.


어떤 방송에도 소개되지 않은 순수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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