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이 끝났습니다. 폐막식에서 배우 톰 크루즈가 다음 개최지인LA로깃발을 들고갔어요. 그는 파리 스타디움 옥상에서 낙하해 올림픽기를 전달받은 뒤 오토바이를 타고 홀연히 떠났습니다. 파리 시내를 가로질러 전용기를 탄 뒤 대서양을 넘어 캘리포니아 상공에서 또 낙하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할리우드 간판에 깃발을 꽂는 것으로 마무리.
주몽과 이순신의 후예들
우리나라는 공을 좋아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번 올림픽에서 구기종목에 나가지 못해 자존심을 구기었어요. 그러니 선수단 규모도 작아지고 (남녀 농구 배구 축구 야구가 갔더라면 100명은 더 갔을 터) 기대도 작아졌습니다. 역대급 성적이라는데 역대급 무관심이기도 했죠.
어쨌든 13개의 금메달 중에 활로 5개, 총으로 2개, 칼로 3개 등 10개를 땄는데 가히 전쟁의 민족이라 할만합니다(나머지는태권도와배드민턴). 애국가의 가사에 양궁 선전의 비결이 있다는 우스개도 돕니다. 하느님이 보우 bow 하사 우리나라만 쎄
비인기 스포츠가 효자효녀 종목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어요. 그러나 본디 스포츠는 전쟁의 대용물로서 활, 칼, 총이야말로 그 취지에 가장 부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공놀이를 즐기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 안팎. 500년 전 이순신이나 2000년 전 고주몽에 한참 못 미칩니다.
무기 네이밍의 비밀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명저 <총, 균, 쇠>를 패러디한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나라의 강세 종목은 모두 무기류입니다. 총, 칼(검), 활 모두 한 음절인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목숨을 놓고 촌각을 다투면서 이름이 길다고 생각해 보세요. '3소대는 세팍타크로를 쏴라, 지금 트라이애슬론을 준비하도록!' 이런 식이면 곤란하겠죠. 간결해야 민첩해집니다.
발명 순서부터 볼까요? 칼(刀)이 압도적으로 오랜 역사를 지닐 겁니다. 구석기시대에 단백질 사냥과 비타민 채집에 사용됐고, 신석기에 들어와서는 농경의 필수품이었죠. 크고 작은 전쟁에서도 위협과 살상용으로 사용됐습니다. 전쟁과 칼은 역사가 비슷해요.
내가 죽지 않고 적을 죽이려고 칼의 길이를 늘였는데 그게 검(劍)입니다.이후 단도와 장검에 맞선 신식 무기가 활(弓)이었을 겁니다. 이전의 전투는 거의 근접 백병전이었습니다. 활은 먼 거리에서 적을 죽이거나 불을 지를 수 있어 전략이라는 게 생겼습니다. 이전까지는 수와 체력이 관건이었죠.
올림픽 종목에는 없지만 포(砲)도 중요한 무기였습니다. 이걸 개인화한 것이 총(銃)입니다. 초기의 포와 총은 모두 불을 붙여 사용했다고 합니다. 총은 활에 비해 물리력(힘)이 덜 드는, 일종의 디지털화입니다.
무기의 끝판왕, 핵
칼, 활, 포, 총에 이어 핵이 등장합니다. 20세기 전반부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시기입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8천만 명 이상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해와 이념이 너무 큰 비극을 불렀네요.
아이러니하게도 핵무기가 개발되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한국이나 베트남, 중동 등에서 국지전은 있었어도 모든 걸 다 걸고 하는 패싸움은 사라졌습니다.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하는 냉전이 20세기 후반부를 차지했죠. 핵 버튼은 다 죽자는 의미인 걸 서로 알았습니다. 핵 역시 한 음절의 무기네요.
무서운 집중력
한국인은 아무래도 포커싱(focusing) 능력이 뛰어난 듯합니다. 타게팅이라고 해도 되겠죠.놀라운 집중력입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절박함과 관련이 있습니다. 반면에 여러 요소를 두루 살피는 넓은 시야는 갖지 못했죠.
모르겠습니다. 어떤 게 좋은지. 그러나 전쟁보다는 스포츠가 낫다는 건 모두가 압니다. 차라리 전쟁으로 한판 뜨자는 사람은 그 비극을 모르는 사람일 거예요. 메달은 많이 못 따도 평화로운 나라에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