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리 피디 Aug 27. 2024

뒷담화

뒷다마 까지 말고 용기를 내요


말은 변합니다. 조금이 '좀'으로, 마구가 '막'으로 바뀌는 건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 비교)가 좋아지는 쪽인데 주로 말이 짧아지는 경우죠. 요샌 문자와 sns 때문에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꾸안꾸, 존버, 중꺽마, 알잘딱깔센, 이생망, 케바케 등... 정말 별다줄(별 걸 다 줄인다)입니다.


우리말만 그런 건 아닙니다. ASAP(as soos as possible-가능한 한 빨리), TMI(too much information-과한 정보), aka(as known as-~로 알려진), LOL(laugh out loud-크게 웃긴 농담), BRB(be right back-곧 돌아올게),  CUIMD(see you in my dream-꿈에서 만나) 등 영어에도 줄임말이 일상이 되고 있어요. 다른 언어는 잘 모르지만 거의 모든 에서 짧아지는 현상이 있을 겁니다.


탁한 말을 순수하게


계몽의 이유로, 즉 화시키기 위해 말을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효율이나 재미로 말을 바꾸는 건 자연발생에 가깝지만 교화, 순화는 국립국어원이나 우리말보존협회 같은 단체에서 작심하고 바꾸는 겁니다. 가만 두면 너무 질이 낮아지니까 이렇게 씁시다, 하고 가이드라인을 주는 셈이죠.


주로 무분별한 외래어를 바로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플러팅" 대신 쓸 우리말은? (세계일보)

드물지만 계몽주의가 대중의 속어에 굴복하는 경우도 있어요. 자장면뿐 아니라 짜장면도 인정하게 된 것처럼 말이죠. 어떤 이유에서든 이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신조어가 생겼다 사라집니다. 요새는 그냥 재미로 만들어 쓰는 것 같기도 합니다. 


뒷다마가 뒷담화로


아주 이례적인 것이 뒷담화입니다. 제 기억으로 이 말은 90년대에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뒷다마였고 뒷다마 깐다속되게 널리 쓰이는 관용 표현이었어요. 뒤통수 치다와 비슷하지만 의미는 살짝 다릅니다. 뒤통수는 배신을, 뒷다마는 험담을 죠.


다마는 일본어로 구슬이고 뒷다마는 뒷구슬입니다. 저 어렸을 때는 구슬치기가 남자아이들의 인기종목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아스팔트가 흙을 뒤덮고 있지만 예전엔 동네마다 흙 공터가 있었고 구멍을 파거나 선을 그어놓고 구슬 놀이를 즐겼습니다.


구슬이라는 도구는 하나인데 노는 방식은 여럿이었어요. 삼각형을 그려 그 안에 구슬을 모아놓고 순서를 정해 던져서 빼낸 만큼 차지하는 방식, 구멍 안에 만든 구슬집에 접근해 빼낸 구슬을 차지하는 방식 등입니다(뭐라 불렀는데 명칭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뒷다마는 아마도 예기치 못한 패배에서 비롯됐을 겁니다.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뒤쪽에 상대의 구슬이 있었던 것이죠. 이런 상황이 뒷다마를 깐다는 표현으로 굳어진 것 아닐까 짐작합니다.


뒷다마가 뒷담화(談話) 변하는 과정은 언어학적으로 매우 신박한 일입니다. 비슷한 발음 때문에 변하는 경우, 대부분은 비속어이고 소리 나는 대로 변하는 게 일반적이죠. 하지만 뒷다마가 뒷담화로 바뀌는 건 반대입니다. 덜 속되복잡해지는 방식입니다. 뒷다마는 거칠지만 뒷담화는 우아하죠. 일재의 잔재 용어가 흉해서 비슷한 발음의 '담화'를 끌어온 겁니다.


험담의 심리학, 뒷담화의 사회학


어떤 이를 두고 하는 뒷말은 재미있습니다. 받은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카타르시스도 느껴집니다.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동지의식도 생기죠. 혼자만 억울한 게 아니라는 안도감이 듭니다. 직장 상사, 군대 고참, 학교 선생님, 대통령 등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뒷담화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뒷담화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 대한 소심하고도 편리한 복수입니다. 대놓고 따지기는 부담입니다. 상대의 위치가 나보다 높거나 직설로 관계를 잃고 싶진 않거든요. 혼자 삭이는 것도 힘듭니다. 누군가 같이 욕을 해주그 순간만큼은 후련하죠(대나무숲은 험담받이로 요긴해요).


뒷담화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과하면 문제가 됩니다.  우선 들어주는 사람도 슬슬 짜증이 납니다. 듣다 지치면 그게 또 뒷담화의 소재가 됩니다. 누구는 맨날 험담만 늘어놓는다는 험담이 퍼집니다(태생적으로 입이 가벼운 사람도 있고요). 이러면 당사자의 귀에 들어갈 확률도 높아집니다. 발각되면 배신감이 생기죠. 최악의 경우가 되고 맙니다.


무엇보다 과한 뒷담화는 문제에서 도망간다는 점에서 좋지 않습니다. 순간은 좋아도 도파민 중독이 되는 셈이죠. 제삼자에게서 일시적인 위로는 받겠지만 스스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닙니다.


뒷담화를 못 참는 옹졸함도 문제입니다. 지위가 높아지면 그러려니 해야 합니다. 권위가 높거나 월급이 많다는 건 그 값입니다. 특히 관계강박이 있거나 완벽주의형 리더라면 발본색원, 색출, 일벌백계로 빠질 수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면전에서 이견을, 눈밖에서 옹호를


누구나 상대를 만나면 차이점보다 동질감을 느끼고 싶어 합니다. 특히 우리 문화는 더 그렇죠. 서양, 특히 프랑스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온갖 문제에 대해 이견을 꺼내놓고 격렬히 논쟁합니다. 같은 의견에서 편안함보다 심심함을 느끼고, 다른 의견에서는 호기심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가 살짝 배우면 어떨까요?


불편한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당장의 불편함을 면하려고 의견과 감정을 삭이는 건 해롭습니다. 스트레스를 풀자고 습관적으로 뒷담화를 하는 건 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갈등의 당사자끼리 솔직히 얘기하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견이, 다른 감정이 내 삶을 풍부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면 피차 너그러워지지 않을까요?


웃고 마는 위트와 해학으로


뒷담화를 다른 방식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노골적이지 않고 재치를 섞는다면 듣는 동조자도, 나중에 알게 된 당사자도 덜 짜증 날 거예요. 가령,

"그 인간 왜 맨날 말을 바꾸냐? 짜증나게..." 대신

"그분은 참 유연해. 유연성이 연체동물 같아." 


사실 많은 문학 작품들이 이런 식입니다. 권위를 비트는 뒷담화인 거죠. 비교하면 불행하고 비유하면 행복하다라는 말을 믿어요. 내 처지든, 네 원망이든 빗대면 여유가 생기거든요. 모두에게 나쁘지 않은 뒷담화의 여유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p.s. 충청도 사람의 의뭉스러운 위트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쓸게요. 직설 대신 비유로 뒷담화도 하고 신세한탄도 합니다. 듣다 보면 헛웃음이 나오죠.






이전 17화 총, 칼, 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