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얼우다라는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얼우다는 짝을 짓다,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다를 뜻하는 고어입니다. 헛소문과 기정사실화로 원하는 바를 이루는 전략의 효시인 서동요에도 이 낱말이 등장합니다.
시집도 안간 선화공주가 몰래 서동과 얼운다
요즘 같으면 허위 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감이죠. 서동은 이 헛소문으로 선화 공주를 차지하고 권력도 잡습니다(그는 나중에 백제 무왕이 되는데 가짜뉴스를 퍼뜨려도 권력자가 될 수 있는 건 동서고금이 비슷한 모양입니다. 동고東古에 서동이, 서금西今에는 트럼프가 있군요)
얼우다에 명사형 접사 ㄴ이 붙은 얼운이 변해 어른이 되었는데 짝을 지은 사람, 성행위를 한 사람이 됩니다.
성장 중?성장 완료?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죠. 옛 선조들은 사람의 자립이나 독립을 어떤 기준으로 인정했을까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편차도 큽니다. 키나 몸무게 역시 그렇고요. 결국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생식이 가능한 때에 이르면 독립개체로 본다'.이 기준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동일합니다.
어른은 영어로 adult이고 불어로는 adulte인데 어원이 라틴어 adolesco랍니다. 성장하다는 뜻의 동사인데 이것의 현재분사는 adolescens로 '자라고 있는'을 의미하죠. 과거분사는 adultus, 즉 '다 자란'입니다. 이 말들이 각각 청소년과 어른이 됩니다.개발도상국이 developping이고 선진국은 developped country인 것과 같죠.
우리말은 성교라는 행위 여부가 어른의 기준인데 서양말은 성장의 정도가 어른 여부를 규정합니다. 그렇다고 성적인 면이 없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면adultery(佛 adulterie)는 간통입니다. 성장 끝난 어른됨이 혼외정사로 의미 확장된 것이죠. 어쨌든 동서를 막론하고 아이/어른은 성교와 밀접합니다.
점점 늦춰지는 어른 되기
생물학적으로는 십 대 중반이면 '얼우기'가 가능합니다. 임신도그렇죠. 하지만 자립과 독립은 점점 더늦춰집니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기 때문일까요? 사회학적으로 저출생과 헬리콥터맘은 일리가 있대요. 기대 수명이 길어지면 적게 낳고 오래 품는다는 겁니다. 늦게 독립시키는 게 유리하단 거죠.
전쟁 직후에 출산율이 높아지는 건 다 아시죠? 베이비가 붐을 이루죠. 지옥을 경험하고도 애를 많이 낳습니다. 사회적으로 죽을 확률이 높을 때 아이는 많이 태어납니다. 생존 확률이 매우 높은 지금, 그러나 행복 확률이 몹시낮은 지금, 출생률이 최저인 건 어쩌면 당연합니다(그렇다고 출생률을 높이자고 살인이나 전쟁을 일으켜선 안 되겠죠).
출생률이 걱정이긴 하지만 내 애가 애를 낳는 건 또 싫은 것 같습니다. 커리어가 더 중하거든요(고딩 둘이 애늙은이를 낳은 '두근두근 내 인생'은 나중에 품평할게요). 손주 돌봄이 조부모의 몫으로 돌아옵니다. 헬리콥터 그랜맘이 되는 것이죠.아이고 두야~.
평화기의 아이들은 전쟁 통에 자란다
평화기에 아이들은 어떻게 클까요? 전쟁이 없으니 부모는 맘 놓고 키울까요? 아닙니다. 전쟁통보다 더 애지중지합니다. 아이러니예요. 잃을 가능성은 작은데 잃지 않으려는 노력은 심해집니다. 이때, 국가나 민족 간이 아니라 부모 자식 간에 전쟁이 벌어집니다. 독립하려는 아이와 독립을 늦추려는 부모 사이에서 말이죠.
보험으로 비유해 볼까요? 누구나 사고를 당하는 세상에서는 보험이 안 팔립니다. 사고는 일상이거든요. 종종 운이 안 좋고 가끔 재수가 없어야 사고가 납니다. 이러면 보험이 활개 치죠. 아예 아무 사고도 없는 세상이라면 보험은 사라집니다. 잔인한 말이지만 적당히 죽는 환경이라야 애를 많이 낳는 법입니다.
우리가 정말 조심할 것
악플이나 정치 팬덤도 평화기에만 있는 현상입니다. 진짜 전쟁이 벌어지면 입으로 싸울 정신이 있을까요? 저는 악플에서 평화를 봅니다. 논쟁 속에서 민주주의를 보고요. 숨이 막히는 독재 속에서는 욕설도 안 나오는 법이고 진짜 전쟁 통엔 생명을 주장하기 힘들죠.
글쎄요. 웃긴 얘기라고 해도 할 수 없어요. 지껄일 자유가 보장되면 아이도 많이 낳는다고, 저는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저출생의 원인은 소수정예이기 때문입니다. 다수대충이 해법일 텐데 그러려면 자유롭게 놔두어야 합니다.
어른 대접
어른은 섹스를 하는 인간입니다. 또한, 어른은 책임지는 인간입니다. 생식과 피임도 그렇고요. 지금 스무 살 청년을 어떻게 보세요? "아이고 아직 애기구나"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그렇게 키웠기 때문에 그런 수준입니다. 그들은 이미 생식능력을 가지고 있고, 여차하면 파업을 할 수도(하고 있는) 있는 어른입니다. 그러니 어른 대접을 해야 합니다. 선택권을 주는 게 아니라 이미 선택권을 가진 존재라고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독립개체예요.
저연령세대를 품평할 기운과 시간이 있다면 스스로 진짜 어른인지 돌아봅시다. 생물학적 어른 말고 사회학적 어른 말입니다. 본보기가 되고 길을 밝혀주고 진심의 응원을 보내줄 수 있는 사람요.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주제곡을 들으면서 저부터 반성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