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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리 피디 Sep 10. 2024

어리다 어리석다

의미분화가 이뤄지는 순간


어릿광대를 보면 이상했어요. 분명히 어른인데 어리다고 하는 것 같았거든요.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어릿은 어리다가 아니라 어리석다는 뜻이라는 걸.. 하는 짓이 어리숙하고 바보 같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답니다.


어린 백성, 무시당하다

나랏말싸미 듕국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쌔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저 홀베이셔도 마침내 제 뜨들~~

훈민정음 서문의 이 어린 백성은 어리석다는 뜻입니다. 어리다가 이해력이나 표현력이 떨어지는 stupid의 뜻을 지녔던 겁니다. young은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그것 역시 어리다입니다.


짐작해 보면 우리 조상들은 멍청하다와 어리다를 하나의 개념으로 이해했던 겁니다. 어리면 어리석고 어리석으면 어린 것이죠. 늙으면서 멍청하거나 어린데도 총명한 경우는 아예 생각하지 않았거나 고려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예외적이었을 겁니다.


어린이라는 말도 비교적 최근에 생겼다고 해요. 어린이날의 창시자로 알려진 방정환 선생이 1921년에 처음 썼다니 고작 100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현대 이전의 어린이는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때려야 잘 큰다'는 논리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곳에서조차요. 어떤 나라에서는 여전히 어린이들이 노동 현장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아동이 현명한(?) 어른에게 지배당하는 것이죠.


다의어의 분가


잠깐 동음이의어와 다의어의 차이를 보겠습니다. 동음이의어는 음이 같은데 의미가 완전히 다른 낱말을 뜻합니다. 반면 다의어는 뜻끼리 서로 관련이 있습니다. 맥락이 같은 것이죠. 하나의 기표(signifiant)가 둘 이상의 기의(signifié)를 담습니다.


가령, 은 곤충 벌과 혼나면 받게 되는 벌이 있는데 둘 사이에는 아무 상관 관계가 없으므로 동음이의어입니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죠. 반면 다의어는 어원이 같습니다. 여우는 동물을 가리키면서 약싹 빠른 사람을 뜻하기도 하는데 행동방식이 비슷해서 파생된 쓰임입니다.


옛말 '어리다' 역시 stupid와 young이 같은 맥락이므로 다의어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바뀝니다. 한 낱말을 쓰던 두 개념이 결별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어리다'라는 형용사의 뜻 중 stupid가 분가하여 '어리석다' 혹은 '어리숙하다'라는 다른 살림을 차린 셈입니다.


아마 이러지 않았을까요? 아이가 늘 어리석은 게 아닌데 어리다고 표현하는 게 맞냐고 따지기 시작한 것.. 똘똘한 아이 혹은 멍청한 어른의 수가 유의미한 수준에 이르러 의미가 쪼개진 것.. 더는 못 참게 된 분화(分化)입니다.


언어마다 다른 함의


모든 언어는 재료가 부족합니다. 개념은 많은데 발음, 철자가 충분치 않아요. 그래서 모든 언어에 다의어와 동음이의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언어마다 담는 뜻이 묘하게 달라요.


가령, '묻다'라는 동사를 봅시다. 영어로는 ask, 일본어는

きく, 프랑스어로는 demander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ask는 부탁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 ask는 궁금해서 묻는다기보다는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려는 물음에 가깝습니다. 뉘앙스가 그렇다는 겁니다.


일본어 きく에는 '듣다'는 뜻도 있어요(問과 聞이 한집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준으로는 묻는 행동과 듣는 행동은 엄연히 다른데 일본 사람에겐 같은 겁니다. 물었으니 들어야 되는 거죠. 물어봐 놓고 안 듣는 행동은 상상할 수 없는 문화라 그런가 봅니다.


프랑스어 demander는 짐작하듯이 요구에 가깝습니다. 영어로는 demand죠. 이것도 단순 호기심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처지가 전제된 물음입니다. 이렇듯 각 나라의 언어는 특유의 문화가 반영돼 어감을 형성하고 또 다의어를 만들어냅니다.


분가시켜야 할 다의어


말은 의식을 반영하고 다시 의식은 말의 조종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변해요. 한두 사람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집단선택에 의해서요. 그러니 이런 뜻은 다른 말로 씁시다,라고 주장한들 별로 반향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가급적이면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변해가면 좋겠네요. 어리석다를 떼어낸 뒤 어린이들의 인권이 존중받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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