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벅 잠이 들었다 깼다. 졸았다고 해야 맞겠다. 지금은 새벽 2시 아무래도 날밤을 새고 공항으로 가야 할 듯하다. 아까 노팅힐에서 돌아오면서 햄버거를 사왔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식사였다. 방에서 짐을 정리하며 먹는데 순간 머리를 강타하는 깨달음이 왔다. 새벽 4시에 전철이 다닌다고? 내 이륙시각은 6시 55분. 공항까지 늦어도 5시에는 가야 한다. 구씨에게 물어보니 바로 앞 전철역에서 타면 1시간도 안 걸린다기에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새벽이라는 조건을 달지 않은 거였다. 여행 책자를 뒤져보니 전철은 5시부터 운행. X 될 뻔했다.
영국의 버거킹이 곧 떠날 내 위장을 위로해줬다. 버킹엄의 찰스킹이 아니다
갑자기 마음이 분주해졌다. 자칫 잘못하다간 비행기를 못 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데스크에 내려갔더니 역시 말을 붙이는데도 줄을 서야 했다. 어떤 키 큰 서양 남자가 STAFF라는 글씨가 써진 흰 티를 입고 지나가길래 잡았다. 마음이 급하다.
"너 여기 직원이니?"
"아닌데. 손님인데.."
"어라? 등에 스태프 글씨는..."
"아, 우연의 일치(What a coincidence)!"
알고 보니 이 녀석도 욕실을 못 찾겠어서 직원에게 물으려는 참이었다. 루브르도 아닌데 우리는 나란히 줄을 섰다.
"너 영국 사니?"
"아니, 전에 살았지. 잘 알긴 해."
"야. 그럼 뭐 하나 묻자. 내 비행이 아침 일찍인데 힌드로 공항을 어떻게 가야 될지 모르겠어."
키가 190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녀석이 내 폰을 내려다 보며 설명을 해준다. 구씨 말고 시티맵을 깔란다. 친절하게도 타이핑까지 해준다.
"이게 구글맵보다 정확해. 근데 너 어디서 왔어?"
"한국"
"난 일본에서 살아."
"고뤠? 일본 어디?"
"나가사키"
거기에 왜 사는지, 짬뽕은 먹어 봤는지, 핵폭탄 떨어진 곳인지는 아는지 물어볼 참에 녀석의 차례가 되었다. 욕실 위치를 설명 듣고 떠나는 멀대, 고맙다! 넌 내게 친절했던 거의 유일한 영국인으로 기억될 거야.
런던에는 모든 버스가 2층인데 윗층 맨앞자리에 앉으면 내가 운전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택시는 마차처럼 크래시컬한 검은색이다
30분 후에는 무거운 눈꺼풀을 참으며 어떻게든 공항으로 가야 한다. 이후엔 또 열 몇 시간의 장거리 비행이 기다리겠지. 이것이 내 수학여행의 마지막 관건이리라. 구씨와 시씨(시티맵)의 조언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20분 쯤 걸으면 버스 정류장이 나오는데 나이트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면 된다. 새벽 같이 뭔 청승이랴..
이런 귀여운 차를 대절할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아무튼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무사 귀환을 기원해 주세요. 다음 편은 비행기 모드로 작성해서 중간 기착지인 뮌헨에서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