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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Oct 22. 2019

큰 테이블이 있는 집

로망의 취향#1. 시간과 추억으로 길들인 공간은 우리들의 아지트가 된다.




 지난날 나의 직업은 ‘문화센터 요리강사’였다. 그때 기획했던 수업의 이름은 <직장인 한 끼 해결 Easy Recipe>였다. 요리를 어려워하는 직장인들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손쉽게 따라할 수 있는 요리를 배우는 컨셉이었다.


 주요 수강 타겟 층은 혼밥족 직장인들로 저녁 한 끼 해결하기가 보고서 결제 받기보다 어렵고 까다롭게 느껴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충 밥을 사먹거나 배달시켜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제 그것 마져도 질려서 혹은 건강을 생각해서 직접 요리를 해서 저녁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커리큘럼 속 요리들은 불 조절쯤은 좀 한다는 사람들이 본다면 코웃음 칠지도 모를 된장찌개부터 시작해서 1년여를 지나면서 점점 난이도를 높여 재철 식재료를 활용한 음식 혹은 손님 접대를 위한 요리로 까지 이어졌다.

 수업 중간에는 시연을 마치고 완성된 음식을 시식해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수강생들로부터 “쌤. 완전 맛있어요. 어떻게 이런 맛이 나요?”라는 말만큼이나 자주 들었던 소리는 “선생님은 나중에 결혼하시면 남편분이 참 좋아하시겠어요.”라는 말이었다. 칭찬을 의도하진 않았지만, 수업을 하는 동안 미래의 내 남편은 자주 부러움을 샀다.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되겠지만 그때에도 과연 수업시간에 요리를 했던 것처럼 여유롭게 웃으면서 칼질을 하게 될지. 분노한 상태로 적군의 멱살 잡고 싸우듯이 팬을 볶아댈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다.






 결혼을 한다면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꾸리고 싶은 집에 대한 로망이 있다. 집에 대한 나의 로망은 ‘큰 테이블이 있는 집’이다. 한강 뷰의 브랜드 아파트, 멋진 정원이 있는 전원주택도 아니다. 집이 작더라도, 큰 테이블을 두고 가족 모두의 공간으로 지내는 것이다.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이 생긴다면 모두가 둘러앉고도 남을 큰 테이블을 거실이나 다이닝룸의 경계에 두고, 그 테이블에 온 가족이 모이는 것이다. 함께 혹은 각자 놀거나 무언가를 하는 풍경이 내가 꿈꿔온 가정의 모습이다. 즉, 큰 테이블을집 한 구석에 두고 온 가족이 아지트처럼 쓰는 풍경이다.






 큰 테이블 위에서 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조리대가 좁을 때는 요리도 할 것이다. 수강생들의 많은 부러움을 샀던 내 남편은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게임을 할지도 모른다. 세상일에 지칠 때면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편안하게 소주한잔 들이키는 공간이 되기도 할 것이다. 친구들이 놀러오면 수다를 곁들인 티타임을, 신랑의 친구들이 놀러오면 테이블 가득 맛있는 식사와 술상을 차려 신랑의 기를 살려주고 싶다.




 


조카 삐약이 찬조출연

 아이가 생긴다면 큰 테이블 위에서 나와 남편은 번갈아가며 색칠놀이를 하거나 숙제를 도와줄지도 모른다. 또 아이들이 서로의 자리를 두고 싸울지도 모르니 가끔은 자리를 바꿔줘야 될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권한으로 말썽꾸러기는 내 옆자리에, 엄마바라기는 남편 옆에 앉혀 집안의 평화를 도모할 것이다. 테이블과 가까운 흰 벽에는 빔 프로젝터를 설치해 함께 영화를 보기도 할 것이다. 한 달에 한번쯤은 온 가족이 모여 테이블 바닥에 밀가루를 흘리면서 수제비나 빵 반죽을 주물러도 재밌겠지. 팀으로 나눠 밀가루를 더 많이 흘린 팀이 청소를 책임질 것이다.




 욕심을 부린다면 매끈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차가운 대리석 테이블보다는 최고급 원목으로 만든 따뜻한 테이블이면 좋겠다. 처음에는 거칠기만 하던 원목테이블이 세월에 따라 손길을 타면서 길들여지면 더 멋질 것이다. 테이블에 생긴 얼룩 하나 하나가 추억이 되는 건 정말 기대되는 일이다.

 시간과 추억으로 길들인 테이블은 우리 가족의 아지트 같은 공간이 될 것이다.

집을 생각하면 그 곳이 떠오르고 편안하고 포근한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익숙한 테이블에 앉는 것만으로도 나의 가족이 안도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남편에게는 시원한 맥주를 건네고, 콜라를 찾는 아이들에게는 얼음이 동동 뜬 레모네이드나 미숫가루를 타주고 싶다. 겨울에는 함께 귤을 까먹고, 인덕션을 이용해 나란히 둘러앉아 샤브샤브를 해먹을 것이다.





 로망인 ‘큰 테이블이 아지트처럼 사용되는 집’은 다른 말로 ‘가족들이 한 곳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집’이다. 서로 방해하거나 받지 않고 ‘따로 또 같이’ 자발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방안에서 혼자만의 소중한 시간과 즐거움을 만끽해도 좋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협동과 단합을 강요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집을 생각하면 익숙함, 편안함, 함께 라는 것이 느껴지는 집이 내가 꿈꾸는 집이다.


 이런 꿈이 실현되는 집이라면, 요리 수업을 할 때처럼 큰 테이블에 앉은 가족들과 시선을 마주치며 조곤조곤 수다를 떨면서 즐겁게 요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집의 경제적 가치보다 얼마만큼의 쓰임 가치가 있는지가 더 중요한 사람이다. 경제적 가치마저 높게 측정된다면 좋겠지만 모든 걸 만족시키기 어렵다. 그렇기에 쓰임가치가 큰 집, 좀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집을 스스로 만들고 그 집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부디 착하고 지혜로운 남편을 만나서 이 바람이 이뤄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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