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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Feb 18. 2020

타인의 삶, 그의 소리 아니 소음.

생활과 삶의 소리, 왜 서로에게로 와서 소음이 되는 건지.



지금 살고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한건 대략 3년 전쯤,

아파트에 살게 된 20대 후반이 되기 전까지 난주택에 살았었다.


첫 아파트도 층간 소음이 있던 곳이 아니라, 층간소음은 내 일이 아니라고 방심했다.

이 아파트로 이사를 온 뒤에야, 층간소음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처음으로 층간소음에 시달리게 한 곳은 윗집 백수 아들의 쿵쾅거리는 발망치 소리가 유별났던 곳이다. 게다가 새벽 6시 오후 11시 30분, 다시 저녁 5시 30분 절구를 빻는 소리도 남달랐다. 저 집은 뭘 저렇게 빻을까? 대장금이라도 사나. ‘누가 미리 빻은 마늘을 써요? 요리 맛없게.’ 바로 빻은 마늘에 집착하는  누군가의 모습이 그려졌다.  층간소음 때문에 다시 바로 옆라인의 지금의 집으로 이사했다.


이사후 윗집이 조용하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했다. 우리가 이사를 왔을 때에는 옆집에 아이가 둘인 집이 살고 있었다. 두 아이가 중고등학생이다보니 야자가 끝나고 돌아와서 엄마에게 내지르는 딸의 고함소리와 슬리퍼 찍찍 끄는 소리만 빼면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3개월쯤 지난 어느 날, 누구도 찾아오지 않을 법한 저녁 시간에 벨소리가 울렸다.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누구냐 물었더니 옆집이란다. 목소리에서 술 냄새가 풍겼고, 아빠가 나갔다.


"무슨 일이시죠?"

"저 죄송하지만, 자가인가요? 전세인가요?"

"네? 갑자기 오셔서 왜 물어보시죠?"

"그냥 궁금해서요. 이 아파트는 시세가 어떻게 되죠?"

"대략 *억*천에서 *억 *천 정도 갈겁니다. 정확한건 부동산에 물어보세요."

"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사람들은 왜 알면서도, 죄송할 짓을 하는 걸까?

부동산 시세에 대해 시시한 스몰톡을 마친 한달 후, 옆집은 이사를 갔다.


그리고 난 옆집소음에서마저 해방됐다.

내방은 옆집의 사춘기 딸내미 방과 벽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가끔 그 아이가 두꺼운 참고서를 떨어트리거나 엄마에게 반항하거나 남동생과 싸울 때의 소리가 여과없이 들릴 정도였다. 그 소리에 피로했다.





단지 내가  소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들의 생활 소리는 내게 소음으로 와닿았다.


바닥이 울리게 신나게 뛰는 꼬꼬마 새 이웃이 이사를 온 지금, 이 사실은 더 명확하다.


꼬마 이웃의 등장과 더불어 새롭게 떠오른 빌런은 아랫집 아이들이다.

바로 아랫집에도 애가 셋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 두명, 고학년 여자아이 한명.

여자아이의 취미는 리코더 불기이고 남자 아이들의 취미생활은 고함지르며 싸우기 인것 같다. 세 아이 모두 서로 질세라 열심히 소음을 유발한다.



퇴근후 새벽 출근으로 부족한 잠을 채우려 침대에 누우면, 3시에서 3시 30분쯤 아랫집 초딩들이 하교후 집에 도착한다. 잠이 들랑말랑할 때면 서로 고함을 지르며 싸운다. 나는 어린 시절 언니와 싸워도 맞으면 맞았지, 대들지는 않는 편이었는데, 이 아이들은 서로 결코 지고싶지 않은가 보다. 엄청나다.



"아..또 시작이네. 아우 지겨워."

내가 두 아이들의 엄마가 된것도 아닌데, 벌써 지겹다. 지겹다는 소리가 저로 나올만큼 시달리고 있다. 옆집 꼬맹이는 쿵광거리며 침대를 울리게 만들고, 아랫집 아이들은 소리를 내지른다. 이와중에 베란다 샷시 너머, 놀이터 아이들의 즐거운 함성까지 귓가에 꽂힌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이야 저들이 해야할 의무를 다하고 있으니 뭐라 할수 없는 노릇이고, 아랫집 이 녀석들은 좀 진정시켜야만 내가 살 것 같았다.



첫 대응은 공식적이었다. 아랫집에 찾아갔었다.


"아이들이 조금 시끄러워서요."

"아, 오늘은 연말이고 해서 제가 아이들 좀 풀어놨어요. 그리고 이 아파트가 원래 좀 시끄러운 편인거 아시죠?(니가 이해해라 눈빛 발사) 가끔 댁에서도 시간 상관없이 청소기 돌리시던데..."


아, 이런 부모였구나. 단번에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대로 분노한 채 집으로 올라왔다.



그후 내가 찾은 방법은 2킬로 짜리 아령이었다.

아이들의 격한 사운드가 5분을 넘어서면, 10센치 정도의 높이에서 아령을 떨어트린다.  


쿵-


여전하다. 다시한번 쿵- 그리고 발끝으로 아령을 또르르르- 굴린다. 더불어 사뿐히 내딛던 발꿈치를 못을 박듯 쿵하고 내려 찧으며 걷는다. 치사하고 옹졸해도 어쩔수 없어. 너희가 시끄럽게 굴면 나도 시끄러워지겠어! 나도 내 생활을 지키고 싶단 말이야. 서서히 조용해진다. 이미 낮잠은 달아났다. 견딜 정도의 소음이 들리면, 그날의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켠다. 층간 소음 아파트의 서글픈 일상이다.  








때로는 층간소음이 나에게 웃을 일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아랫집 여자아이는 종종 리코더 연주곡을 바꿨는데, 늘 연주하는 곡은 <에델바이스>이고, 그때 그때 유행에 따라 알라딘ost<A whole new world>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루돌프 사슴코>를 가열차게 연습했다. 삑삑 거리는 소음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나다가도, 시즌제 선곡에 픽-하고 실소가 터지기도 한다. 왜 저부분을 자꾸 틀리지? 호흡이 딸리나? 계속해서 틀리는 부분에서는 글을 쓰다가 내 나름대로 원인 분석하기도 한다.


층간소음에 이미 시달려본 사람들은 윗집의 핸드폰 진동소리에 놀란 경험도 있을 것이다. 휴대폰 진동은 기분이라도 깔끔하지. 방귀소리의 푸드득- 거리는 지저분한 층간소음을 들으면 정말 당혹스럽다. 귀를 씻고싶어진다. 아니 이 아파트가 이정도 였어?하는 당황스러움과 방심하는 사이 기가 차서 터지는 웃음... 정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다. 냄새가 나지는 않지만, 왠지 냄새가 나는 듯한 착향(?) 효과까지 있다.



아랫집의 리코더 소리와 방귀소음을 들으면 잠시 그들의 일상이 궁금해진다. 똑같은 부분을 계속해서 틀리는 꼬마 여자애는 왜 리코더에만 집착하는지. (와중에 다행이라 느끼는 건 아랫집에 피아노가 없다는 사실!) 윗집의 푸드득- 진동음이 써라운드로 들리는 방귀소리에 침대 생활은 안하는 걸까? 잡곡밥에 보리가 포함 되어있는 걸까? 유산균은 안드시나? 라는 다양한 궁금증이 떠오르고, 또 상상하게 된다.



소음으로 날카로워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무디게 만들어주는 상상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왜 그들의 생활 소리는 나에게로 와서 소음이 되는 건지.

나 역시도 아랫집 사람들에게 듣기 싫은 소음유발자인거겠지.


타인의 생활과 삶이 녹아져 있는 소리가 서로에게로 와서는 소음이 되는 건지.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이상적으로 입장을 바꿔서 배려하면 돼. 라는 판에 박힌 결론은 내고싶지 않다.

아 이사가고 싶다. 옆집 꼬마는 왜 일찍 안자는 걸까? 9시가 넘었는데, 너 지금 안자면 키 안 커, 인마.

쿵쾅거리는 소음 속에서 오늘 밤도 들리지도 않을 조언을 혼자 되뇌인다.




+덧)

 

"엄마 난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시끄러운 아파트를 떠나 산속에 들어가서 집 짓고 살꺼야."

"제발 좀 그러셔. 근데 넌 산속에 들어가서도 아침 마다 새 지저귄다고 시끄럽다고 소리지를 껄?"

".......아!......(인정의 쭈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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