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마지막(2)
당신의 죽음은 내게 아픔이고 슬픔이었다.
여보세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빠는 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내게 말했다.
" 엄마가 이제 얼마 안 남았대. 아빠 어떡하니. 엄마가 죽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와서 제발 인사라도 하렴. "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 특히 엄마가 암 환자가 되고 나서 엄마가 아빠의 빚을 모두 떠안고 개인회생 및 파산처리를 하고 아빠와 이혼을 했을 때, 가정법원에서 아빠가 웃고 있었노라는 엄마의 말을 떠올리면서 나는 아빠가 없는 천애고아로 살기로 결심했었다. 내 연락처를 어디서 어떻게 얻었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경찰서에서 아이 엄마가 암에 걸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제발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 달라며 경찰관에게 울고불고 사정을 했다고 한다. 주민센터를 돌아다니며 내 등본을 떼서 내가 어디에 사는지 확인하려고 애를 썼지만, 주민등록 열람제한 신청이 되어 있어서 공무원들은 내 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고 강짜를 놓아서 모두 퇴짜를 맞았다고 했다. 아빠의 눈물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던 모양이다. 나는 아빠 울음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그리고 침착하게 엄마의 상태를 물었다.
아빠는 흐느끼면서 엄마가 새로운 항암제를 맞았는데 그게 잘못된 것 같다고, 이젠 손 쓸 도리가 없어서 호스피스를 전전한다고 했다. 상태가 나빠져서 병원에 입원한 상태인데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병원 이름과 호실을 묻고 나는 옷을 입고 아무렇게나 집을 뛰쳐나갔다.
택시를 타고 한 시간 넘는 도로를 달리면서, 나는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언젠가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마음과 두려움이 앞섰다. 엄마를 떠올리면 나는 항상 무서웠다. 집을 나가기 전 엄마 말은 내 세상의 규칙이었고 기준이었고 법이었다. 암에 걸린 불쌍한 엄마를 버리고 집을 나가 버린 나는 패륜아이며 벌을 받아 마땅한 자식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여겼다. 그래서 엄마를 만나러 가면서도 잔뜩 긴장하고 겁을 먹은 상태였다.
대학병원 암환자센터 건물에 내려 떨리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해서 엄마가 입원해 있는 층의 버튼을 눌렀다.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덜덜 떨렸다. 나는 엄마에게 폭언을 듣고 매 맞던 아홉 살 어린아이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혼이 날까 봐, 또다시 폭언을 듣고 내가 상처를 받을까 봐 겁이 났다. 그래도 만나야 한다. 더는 외면하지 않고 엄마와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을 곱씹으며 천천히 엄마가 입원한 병실의 문을 밀었다.
작고 마르고 왜소한 여자가 앉아있었다. 우리 엄마였다. 내 기억에는 항상 크고 무섭고 대단해 보였던 엄마가, 곧 사라질 것처럼 빼빼 마르고 힘없는 모습으로 혼자 병실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매일 밤 내 꿈에 나와 칼과 가위를 들고 나를 죽이겠다고 쫓아오며 나를 괴롭혔던 엄마가 아니라 너무 작고 약한 모습의 한 중년의 여자가 앉아있었다. 허탈하고 허망해서 눈물이 나왔다. 엄마도 그 순간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우리는 한참을 마주 보고 서있었다.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으면서 내가 겨우 먼저 말을 꺼냈다.
"엄마, 왜 여기에 있어? 왜 이러고 있어, 왜..."
말을 잇지 못하고 나는 엉엉 울었다. 엄마도 목이 멘 채로 어떻게 알고 여기에 왔냐고 물었다. 아빠에게 전화를 받고 왔다는 대답을 하고 한참을 우리는 말이 없었다. 엄마는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훑어봤다. 나를 혼내려고, 잘못한 게 있는지 질책하는 눈빛이 아니라 내가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는지,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살펴봤다. 나는 부러 과장하며 이야기했다.
"엄마, 나 정말 잘 지내고 있어. 정말로 잘 지냈어. 취직도 하고 서울에 살아. 결혼할 사람도 있어. 되게 잘해줘. 좋은 사람이야. 아픈데도 없고 정말 정말 잘 지내고 있어."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 코앞에 다가온 엄마 죽음을 모르는 척 일주일 전 만났던 가족처럼 노력하며 어색하게 말을 이어갔다. 엄마는 내 소식을 잠자코 듣다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런데 왜 엄마를 안 찾아왔어?"
그 말에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꿈에 엄마가 나왔어. 엄마가 꿈에서 가위랑 칼을 들고 나를 죽이려고 쫓아왔어. 무서워서 엄마를 보러 올 수가 없었어..."
내 말에 피골이 상접한 엄마의 얼굴이 충격을 받아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엄마는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엄마는 눈물을 참으면서 힘없이 겨우겨우 말을 뱉었다.
"엄마가 너한테 그렇게 무서운 존재였니? 엄마가 그렇게 무서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꼭꼭 담아두었던 응어리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또박또박 말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결국 울음이 섞여 나는 아이처럼 엉엉 울며 엄마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엄마가 항상 나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했잖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끔찍하다고 했잖아. 나를 낳은 걸 후회한다고 말했잖아. 항상 나보다 오빠가 먼저였잖아. 말도 안 되는 이유들로 항상 내게 상처를 줬잖아. 엄마, 나는 내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어... 내가 큰고모를 닮아서 끔찍하고 지긋지긋하다고 했잖아. 엄마,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엄마 딸이 되고 큰고모를 닮은 건, 그 모든 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 엄마,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잖아..."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가 시끄럽다고 타박하지 않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않으려고 주의를 집중해서 내 말을 경청해 주었다. 엄마가 숨이 벅찬 듯 거칠게 숨 쉬면서 내게 이야기했다. 내가 평생 듣고 싶었던 그 말을,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가 해주었던 순간이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정말로 너한테 잘못했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이 사과 한마디를 듣기 위해 나는 몇 년을 돌아왔던가. 몇십 년을 남보다도 못한 사이로 상처를 주고 서로를 원망하며 눈물을 흘리고 살았던가. 드디어 내가 듣고 싶던 이 말을 들었는데, 내 잘못이 아니라는 사과를 들었는데,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없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 원통하고 슬퍼서 엉엉 목놓아 울었다. 엄마는 힘이 없어서 아이처럼 엉엉 우는 다 큰 딸을 꼭 안아주지도 못했다.
엄마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내와 내게 사과를 깎아주었다. 사과에서는 짠맛이 났다. 사과를 깎는 일조차도 엄마에게 무리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으로 엄마 앞에서 아이가 되고 싶었다. 오직 나를 위해서만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가 내게 사과를 깎아 줬다. 나는 아홉 살 어린아이가 되어 죽음을 앞둔 엄마 앞에 앉아 어리광을 부렸다. 이 시간이 멈추었으면 했다. 한 시간도 채 앉아있지 못했는데 엄마는 힘들다며 내게 집에 돌아가라고 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를 배웅하면서 엄마는 휴대폰지갑 깊숙이 숨겨둔 꼬깃꼬깃한 오만 원짜리 지폐를 두어 장 꺼냈다. 용돈이라고 했다. 그동안 엄마가 주지 못한 용돈이라고 했다. 나는 또 울음을 참았다.
엄마에게 내 연락처를 알려주고 내일 다시 방문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쉬운 마음으로 일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엄마는 따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없는 힘을 끌어모아 나에게 외쳤다. 계속계속 외쳤다.
"OO아, 엄마가, 사랑해. 엄마가, 많이 많이 사랑해."
평생 내가 엄마에게 폭언 대신 듣고 싶었던 그 말을, 엄마는 간절함을 담아 내게 외쳤다. 엄마가 삶이 벅차고 힘들어서 어린 너한테 모진 말을 많이 했는데, 사실은 너를 사랑한단다. 엄마가 잘못했어. 미안해. 엄마의 사랑한다는 말에서 나는 이 모든 감정을 느꼈다. 죽음을 앞두고 엄마는 내게 용서를 빌고 사랑을 외쳤다. 나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행복하지만 너무 슬퍼서 가슴이 미어지는 꿈같았다.
문이 닫히고 난 엘리베이터 안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자려고 누운 침대 위에서 나는 엉엉 울었다. 엉엉 울음소리가 꺽꺽 소리로 변할 때까지 울었다. 그날은 악몽을 꾸지 않았다. 대신 내 마음속 외면하고 묻어두었던 시한폭탄이 째깍째깍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제 우리는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