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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아 Sep 20. 2024

엄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엄마의 죽음은 내게 해방이자 인생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죽음을 대하는 마음가짐 등 모든 것이 바뀌었다.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는 말이 진실인지는 내가 죽어서야 알겠지만 나는 엄마의 인생을 가장 속속들이 잘 아는 증인으로서 그녀의 인생을 되짚어 내 삶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첫째, 하고 싶은 말과 표현은 아끼지 않기로 했다. 엄마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엄마의 죽음을 7년이나 매일 염두에 두고 살았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했으나 나는 매일 무너졌다. 누군가의 죽음은 아무리 준비를 한다고 해도 고통과 슬픔은 희석되는 것이 아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타인은 내 마음을 모른다. 표현하지 않고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때문에 나는 순간순간, 그 감정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분노이든 행복이든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살기 위해 노력한다.



 고마움이라면 아끼지 않고 입을 열어 얘기하고, 서운함과 섭섭한 감정이 든다면 혹시 모를 오해를 풀기 위해, 그리고 내 속에 나쁜 감정을 쌓아두지 않기 위해 적극적이지만 상대의 언어의 온도에 맞추어 솔직하게 표현하려 노력한다. 아이에게도 물론이다.



"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널 정말 사랑해. 우리 OO이가 지렁이가 되어도 강아지똥이 되어도 콩벌레가 되어도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한단다." 고 장난치며 얘기한다.



아이는 이런 말을 들으면 부끄러워 몸을 배배 꼬면서도 "엄마 그럼 내가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어지면? 마녀가 되면?" 하고 이것저것 사랑의 조건을 내세우며 묻는다. 그래도 나는 그때마다 항상 똑같이 대답한다.


"응, 그래도 엄마는 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네가 무엇이 되어도, 어디에 있어도 사랑해.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 정말 많이 많이 사랑해."


 내일 당장 죽어도 후회가 없도록 나는 아이에게 매일 최선을 다해 사랑을 외친다. 사랑은 더 많이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후회 없이 사랑하다 죽고 싶다.





두 번째, 나 자신을 스스로 아끼고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음식, 색깔, 스타일을 찾아보고 다양하게 시도해보기도 한다. 가끔이지만 저렴하고 무난한 것이 아닌, 내가 꼭 가지고 싶었던 제품을 사본다. 아이를 위한 나들이에도 내가 먹고 싶었거나 가보고 싶었던 코스도 꼭 끼워 넣는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날이면 운동 후 샤워한 내 몸 구석구석 바디크림을 바르며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정말 잘하고 있다고 내 몸에게 인사한다. 너무 지치고 쉼이 필요한 날에는 남편이나 시부모님께 과감하게 아이를 맡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나는 스스로 알음알음 보험을 공부해서 내 앞으로 가입되었던 보험 이력을 싹 검토했다. 필요 없는 보험은 해제하고 보장이 부족한 내역을 꼼꼼히 확인하고 여러 보험회사를 비교해 부족한 부분을 가입했다. 매년 건강검진도 꼬박꼬박 받는다. 혹시 모를 미래를 대비하고 싶어 유전자 암 검사도 받아보았다. 다행히 암 유인자는 크게 발견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불편한 곳이 있으면 병원에 간다. 유명한 약사 유튜브와 책을 찾아 보고 내게 부족한 영양제를 구매해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얼마 전에는 우리 가족 모두 모발 중금속 미네랄 검사도 진행했다. 가족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몸에 더 필요한 영양소가 무엇인지 체크해서 부족한 영양제를 추가로 구매했다. 서른이 넘은 나는 비싼 가방은 하나도 없는데, 대신 매달 영양제는 비싸도 좋은 것으로 꼬박꼬박 구매한다. 건강에 필요한 운동시설 이용료나 PT비용, 그 외 건강에 관한 것들은 망설이지 않고 결제한다. 주 3회 이상 헬스장도 꾸준히 다니고 있다. 아끼지 않는 이 투자들은 내 아이와 함께하는 미래를 위한 시간을 늘리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늙으면 누구나 약해지고 병들겠지만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늙고 싶다. 무엇보다 내가 큰 병에 걸려 우리 아이가 전전긍긍하며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다 큰 아이에게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나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다. 백발 노인도 때때로 엄마를 그리워한다. 나는 내 아이의 옆에 되도록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 머물고 싶다.




셋째, 도움의 손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엄마를 닮아 나는 모든 걸 혼자 짊어지고 해치우려는 습성이 있는데, 사실 이 습성은 타인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완벽하게 뭐든 해내고자 하는 마음에서 기인한 것이 크다. 이런 성격은 스스로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에 나는 조금씩 내 마음의 짐을 분배해서 덜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최근에는 객관적으로 부모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보완하고 싶어 상담소를 찾아 부모양육태도검사와 육아스트레스검사, 아이 기질검사를 받기도 했다. 다행히 아이는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잘 자라나고 있는 아이와 반대로 나는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너무 "잘"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잘"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건 어떻게 해야 할까? 혼자 고민하다 답을 찾지 못해 요즘 다시 심리 상담도 받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세상이 좋아져서 화상으로도 멀리 있는 상담 선생님과 언제든 카운슬링이 가능하다. 새로 만난 상담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너무 잘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아이를 케어하며 행복감을 느끼는 시간을 충만하게 느껴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나에게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많이 줄 수 있는 거라고 알려주셨다. 아이를 키우고 사랑을 주며 스스로 어린 시절 상처들로부터 치유될 수 있다고도 말씀하셨다. 혼자서는 생각해 볼 수 없었던 시각이다.



본디 사람 인 자는 사람 둘이 만나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을 본떠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사람은 홀로 살아가지 못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내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서다.



삶이 항상 고달플 때마다 나는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 시를 되뇌곤 했다.



정호승 / 산산조각


룸비니에서 사 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엄마와 내가 쌓았던 일그러진 세상은 잘게 쪼개어져 산산조각이 났지만, 나는 산산조각 난 엄마와의 세상을 딛고 일어섰다. 깨어지고 부서지고 나서야 나는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통스럽고 슬펐지만 산산조각이 난 이후 비로소 오롯이 내 인생이 보였다. 엄마와 내가 이룬 수많은 산산조각들, 그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이 가득 찬 그릇에는 아무것도 담지 못한다. 인생도 그릇과 같다. 사실 우리 모두는 조각일지도 모른다. 조각이 되고 잘게 깨어져보아야 우리는 생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 나는 너무나도 작고 보잘것없는 조각이지만 그렇기에 무엇에도 담길 수 있다.



나는 산산조각으로 살아 보려 한다. 산산조각 난 조각들을 주워 붙이려고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 깨어진 나 자신대로 살아보려 한다. 구르고 구르며 이 세상 살다 모난 부분도 닳아지고 둥글둥글 동그래지면, 잘게 잘게 잘아져서 바닷가 모래알만큼 작아질 때까지 살아볼 것이다. 훗날 내 아이가 나를 밟아도 피나지 않고 다치지 않도록, 둥글고 둥근 작은 조각이 되어 나답게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라는 마침표를 찍고 싶다. 그리고 그 마침표 끝에 울지 않고 엄마와 인사할 것이다. 엄마, 이제는 정말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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