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과 다름없던 평범한 평일의 저녁 일상 중 어느 한순간, 육아전쟁터에서 아이와 실랑이를 하다 마침내 내 마음속 엄마를 이겼던 그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눈물과 감정에 벅차 이 느낌을 잊지 않으려고 순식간에 써 내려갔던 글을 용기 내어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께 보였습니다. 가장 적나라하고 솔직한 저의 모습을요.
<오늘 엄마를 이겼다>라는 첫 번째 글은, 사실 가장 이 에세이의 마지막에 보여드리고 싶었던 글입니다. 실제 시간의 순서로도 제일 마지막이기도 하지요.
사실, 이 에세이를 연재하며 모두에게 읽히기 위해 글을 올리고도 잠을 이루지 못한 날도 수없이 많았습니다.글을 읽고 어릴 적 생각에 눈물이 났다며 좋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아 벅차게 설레는 날도 있었지만 글을 쓰기 위해 오래전 마음에 묻어두었던 엄마의 흔적을 마음으로 더듬어 써 내려가는 일은 실로 고통이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엉엉 운 날도, 퇴고하며 저도 모르게 훌쩍인 날들도 더러 있었네요.
저는 이 글을 통해 엄마와 정말로 작별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아직 엄마를 못 잊었어요.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그리움은 잊히는 것이 아니라 묻혀두고 사는 것이라고요. 저와 엄마는 마지막엔 화해하고 사랑을 주고받았지만 몇십 년에 걸친 상처들은 그래도 마음에 아직도 응어리처럼 남아있더라고요. 이 상처를 평생 외면하고 살 것인지, 보듬어 안고 갈 것인지, 혹은 이 상처에 미래의 삶까지 영향받으며 살 것인지는 저에게 남은 평생의 숙제입니다. 저는엄마를 잊고 싶지 않아요. 엄마와 함께 했던 기억들도 제 일부이고, 그 상처를 내딛고 일어서는 게 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엄마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 글은 엄마를 기억하고 그리기 위해 쓰인 글이기도 합니다.
엄마에 대한 저의 감정은 한 가지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미움, 그리움, 원망, 사랑... 다들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계신 부모님의 존재는 저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며 때때로는 엄마를 미워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고, 용서하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면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로 정의하기엔 제 삶에서 너무 큰 존재였고 세상이었던 엄마를 어떻게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있을까요?
모순되지만 엄마 덕에 저는 살았습니다. 엄마 '덕분에' 저는 앞으로도 잘 살 겁니다. 엄마를 타산지석 삼아 배우고 깨달은 것들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엄마보다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어제의 저보다 더 나은 내일의 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가 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제 남편의 꿈이 '좋은 아빠'인것처럼, 제 꿈은 '좋은 엄마'입니다.세상에서 제일 되기 어려운 장래희망이네요. 그렇지만 저는 끝까지 노력할 거예요. 이 다짐과 노력의 흔적이 누군가에게도 따듯한 위로가 되기를 감히 바래봅니다.
그리고 감히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이 글을 읽고 계신 우리 모두가 엄마를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각기각색 다양한 어려움과 고민에 직면하신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그렇지만 고심하고 계신 그 모습에서, 이미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변화로의 발걸음을 내딛으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라요. 제가 용기 내어 블라인드에 글을 올리고. 3,000여분이 넘는 분들께 응원과 축복의 댓글을 받고 세상에 제 이야기를 하겠다고 결심했던 그 기적 같은 순간처럼요.
다행히도 저는 하루하루 엄마를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을 것 같은 순간을 견뎌내고 나니, 한 번은 어려웠지만 두 번 세 번은 점점 쉬워지고 있습니다. 화성에 생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뉴스만큼 제게는 엄마를 이기며 쌓아가는 순간들을 기적이라고 느낍니다. 그리고 이 평범한 삶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해바라기는 음지에 심어도 햇빛을 받기 위해 스스로 양지로 고개를 돌리고 움직이는 꽃이라고 하는데요, 해바라기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라고 합니다.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부모는 아이를, 아이는 부모를 사랑하겠죠. 태양을 따라 따스한 햇살을 기대하며 고개를 돌리는 해바라기처럼요. 저의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햇살이 되어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장미보다 해바라기를 좋아하던 엄마가 생전에 그리셨던 해바라기 그림을 올리며 이 글을 마칩니다. 모두 편안한 하루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