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파견 준비 8편 #
2025년 올해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중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한국 영화 <좀비딸>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관람객 수는 11월 29일 기준 560만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체인소맨: 레제편>도 호평을 받으며 330만명으로 6위를 기록 중에 있습니다. 두편 모두 굉장히 재밌게 본 영화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영화 <국보>가 나왔고 이전에 봤던 일본 영화는 제 기억에서 지워졌습니다. 원래 요번주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영화를 몇편 보려고 했지만, 계획을 바꿔 <국보>를 한번 더 보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가부키라는 일본 전통 연극을 주제로 작품적으로 굉장히 아름답고, 사유할 만한 요소가 많아서 꼭! 영화관에서 감상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예술이라는 악마와 계약한 한 남자의 인생극, 나락으로 떨어져야만 마주할수 있는 극한의 집중력 그리고 이상일 감독 스스로 말하는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 범인이 보기에는 '왜 저렇게까지 할까'라는 시선을 받으면서도, 어떤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고통을 감내하는 인생도 나쁘지만은 않겠다는 의지가 들기도 했습니다. 감독이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에 하나는 바로 "주인공은 과연 행복했을까?"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 소설 원작 <국보>의 모티브가 된 영화 <국보>
본디 어느정도 작품성이 인정된 작품이 영화로 제작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만, <국보>는 좀 특이합니다. 이상일 감독이 먼저 가부키의 '온나가타(女形)'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소설가 요시다 슈이치에게 공유했고 자료와 배경에 대한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와중에,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연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소설 원작과 영화가 상호작용으로 태어난 점, 영화가 먼저 원작 소설에 대한 소재를 제안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 가부키에서 여성의 출연을 금하는 규율로 인해 생겨난 여성의 역할을 하는 남성 배우
* 참고 : <국보> 공식사이트 감독 인터뷰 (링크)
● 재일한국인 3세가 만들어낸 80년만의 '가부키(歌舞伎)' 대작 영화
이상일 감독에 따르면 영화 <국보>는 미조구치 겐지의 <마지막 국화 이야기> 이후 80년만의 가부키를 소재로한 영화입니다. 영화 제작 기간도 6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그만큼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이 있었을 만큼 가부키 영화에 대한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화 <국보>는 보란듯이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이상일 감독은 재일한국인 3세로 니가타와 요코하마의 조선학교에서 초중고를 나왔다고 합니다. 조선학교는 일반적으로 북한계열이라고 알고 있는데, 얼마전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스스로가 "한국인의 루트"가 있다고 발언한 것 때문에 양국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역시나 국뽕에 차오르는 반응, 일본 웹사이트 댓글에서는 약간의 아니꼬운 시선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왜 하필 일본 전통 가부키 붐을 재일한국인이 일으켰는가. 아무래도 정통의 피를 가지지 못한 외부 사람이 극한의 노력을 통해 최고의 경지에 오르는 것. 이상일 감독이 일본인보다도 기쿠오에 더 공감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 참고 : 日本で大ヒット中「国宝」李相日監督、韓国愛を告白「私の根は韓国」
● 영화 <국보>에 나오는 여성에 관하여
주인공인 기쿠오의 옛 연인으로 세 명의 여자가 나옵니다. <국보>에서의 여성은 단순히 기쿠오를 조력하는 존재이며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기쿠오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성 조력자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게 사라집니다. 주인공은 한마디로 쓰레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만, 기쿠오 자체가 예술에 영혼을 팔아버린 불쌍한 존재라는 점을 감안하면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모리 나나 주연의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이라는 드라마를 3번 정주행 했을만큼 좋아하는데, 마찬가지로 꿈과 길에 대한 내용입니다. 모리 나나는 마이코의 길을 포기하고 마카나이(요리사)의 길로 나아가는데, 이 아이가 커서 자신만의 예술을 찾아 끝까지 나아가는 기쿠오에게 반해 헌신하는 느낌으로 이어져서 개인적으로 재미있었습니다.
영화 <국보>는 종종 한국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와 천카이거의 '패왕별희'와 비교되곤 하는데, 이상일 감독도 이런 평가에 대해 충분히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을 보면서 참 대인배라고 느꼈습니다. 자신만의 길을 향해 그 어떤 희생도 감내하는 그 삶은 어떨까 되짚어보게되는 영화입니다. 한국에도 이런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3회차 관람을 해야하나 고민중이고, 내년에 도쿄에서 가부키 공연을 관람할 행복한 상상을 하면 이번 후기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