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파견 준비 7편
도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어떤 것들이 있으신가요? 저는 어렸을 때 신주쿠역에서 길을 해맸던 기억이 인상에 깊히 남아있습니다. 사람이 많은 것을 떠나서 각종 지하철역이 얽혀 있어서 내가 어디있는지 설명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신주쿠에 갈때마다 출구 번호를 한국처럼 1번부터 순서대로 붙이면 안될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거리와 도로가 한국보다 넓어서 사람들이 많을 때 어지러운 느낌이 훨씬 강한 것 같습니다.
내년 도쿄 생활을 앞두고 직관적으로 이름에 도쿄가 들어간 영화 다섯편을 시청하였습니다. 일본인들은 도쿄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을지. 진학과 취업을 도쿄로 하면서 가족과 멀어지는 경험, 집을 구하고 가정을 유지해야하는 삶속에서 각박하고 황량함이 있었습니다. 살기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우리가 '서울'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와 비슷해서 공감이 되는 면도 많고, 무엇보다 5편 모두 좋았어서 하나씩 정리해보았습니다.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도쿄 소나타> (2008)
대기업에서 총무부장으로 일하던 사사키는 어느날 갑자기 직업을 잃게됩니디. 회사에 장기간 헌신한 것 외에 별다른 능력도 없는 사사키는 실직한 사실을 집에 알리지 않고 양복을 입은채로 무료 급식소를 전전합니다. 압박감에 놓인 사사키는 집에서는 자꾸 악수를 둡니다. 아내와 아들들에게는 더욱 엄격하고 권위적으로 대하다보니 가족 간 비밀은 쌓여갑니다. 이런 악수들은 스노우볼처럼 굴러 파국을 맞게 되지만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고 돌아오면서 화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사람들의 모습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해피엔딩으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이 가족도 자칫하면 비극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또 다른 명작인 영화 <큐어> 주연의 야쿠쇼 쇼지가 튀어나와서 갑자기 코믹한 연기를 하길래 뜬금이 없으면서도 정말 반가웠습니다.
# 중간에 충격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여자 아이 배우가 나오는데 트라우마가 남아 있진 않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도쿄 오아시스> (2011)
필름 카메라 필터를 껴놓은 듯한 색감이 영화 전체를 몽환적으로 이끕니다. 기승전결이 명확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굴러갑니다. 등장 인물들이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고, 그렇다고 섣부르게 상대를 위로하지 않습니다. 그저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스스로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에 대학 진학을 실패하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20대 여성이 나오는데 매표소 아르바이트 하나 구하는데도 각박한 삶이 답답하긴 했습니다만. 영화에서 주는 메세지는 결국 도망쳐도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자조적인 느낌도 들었습니다. 주인공을 통해 잠시 현실에서 일탈을 한 느낌입니다.
# 주연의 고바야시 사토미 라는 배우는 눈빛이 호불호가 좀 갈릴 것 같습니다. 매력적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수 없습니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쿄타워> (2007)
삶은 대체적으로 고통의 연속이고, 행복한 시절은 스치듯 지나갑니다. 자신도 모르게 지나가는 행복한 기억은 본인과 부모가 건강하고, 우정과 사랑이 있을 때이고 그렇게 지나간 기억으로 나머지 삶의 고통을 견디는게 아닌런지요. 어머니의 청춘은 가족 뒷바라지를 위해 보내고, 노년은 암투병으로 고생합니다. 괴로움에 몸부림 치는 모습이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괴롭습니다. 그렇게 헌신했음에도 병상에서 보내는 삶은 가족이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합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는 원고 마감을 재촉하는 전화를 받습니다. 주인공은 짜증내면서 전화를 끊지만, 젊은 엄마가 나타나 일을 하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살아나가라는 듯이.
# 행복할때도 괴로울 때고 그 곳에 있는 도쿄타워. 내 감정에 따라 도쿄타워의 모습과 감정도 시시각각 바뀌는 것이 신기합니다.
# 상경하여 소소한 성공을 이루고 주인공은 "마이너스가 제로가 되었을 뿐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에 대해 친구가 말합니다. "마이너스를 안은 채로 끝나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아니, 도쿄에서"
<동경 이야기> (1953)
네 자식 중 첫째와 둘째는 도쿄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셋째는 전쟁에서 죽었지만 며느리가 도쿄에 살고 있습니다. 부모는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도쿄에 왔지만, 삶에 치여 신경을 쓰지 못하고 되려 귀찮아 죽겠습니다.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엄마는 자식들이 잘 지내는 것을 확인했고 이제 미련이 없다는 듯이 생을 마감합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지금과 다르지 않고 공감이 간다는 점이 소름돋습니다. 특히 둘째 딸이 마지막까지 밉상이어서 얄미워 죽겠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나이가 들면 다 자기의 삶이 가장 중요해지고, 그렇게 각박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해달라고 직접 말을 건네는 것 같아서 신기했습니다.
# 2013년에 <동경가족>이라는 제목으로 현대판 리메이크 되었습니다. 영화사는 <동경 이야기>와 같은 쇼치쿠입니다. 의사인 첫째 아들이 아버지와 동년배처럼 나오길래 몰입이 안되길래 바로 껐습니다. 영화 자체 평은 좋아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도전해보겠습니다.
<도쿄!> (2008)
한국 영화감독 봉준호, <이터널 선샤인>의 미셸 공드리 등 3편의 작품이 들어간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각각의 시선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특히 봉준호 영화는 카가와 테루유키와 아오이 유우가 나와서 좋았습니다.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린 남자와 모든 사람들이 집 안에 틀여박혀 일은 로봇들이 하는 세상. 주인공은 사람을 찾아 밖으로 나왔지만 그 사람이 인간인지조차 의심됩니다. 결국 다시 집밖으로 나온 주인공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미셸 공드리의 영화도 좋았습니다. 도쿄에서의 삶은 낭만으로 버티기에는 너무나도 각박했습니다. 살 곳하나 찾기 힘든 곳에서, 자신의 쓸모를 찾기 위해 차라리 의자가 되어버린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다섯 편 모두 도쿄에서의 삶을 각박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도쿄의 장소와 거리들을 롱테이크로 보여주는 등 오히려 도쿄를 좋아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봐도 충분한 공감을 할 수가 있어서 추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