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에다 히로카즈 영화, '기적(奇跡)' 성지순례

가고시마 한달살기#10

by 최씨의 N차 도쿄

'괴물', '어느 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등 한국에서도 유명한 영화 감독 고로에다 히로카즈, 저도 참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고시마를 배경으로 한 '진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옛날 관람한 기억으로는 항상 뾰루퉁한 표정의 형과, 철부지 동생의 천진난만함이 이미지로 남아있습니다. 가고시마 사쿠라지마가 분화하면 가족이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웃픈 희망.. 그리고 어떻게 된 운명인지, 한달간 가고시마에 살게되면서 U-NEXT를 구독하고 영화 '기적'을 다시 한번 시청했습니다. 한국어 자막이 없어서 안 들리는 부분 때문에 좀 시간이 걸렸지만, 개인적으로 고로에다 히로카즈의 1픽 영화로 등극하였습니다.


형 코우키와 동생 류노스케, 동생 표정만 봐도 애틋한 감정이 든다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신기하게도 정말 많은 등장 인물들의 스토리가 기억납니다. 형과 동생, 할아버지와 할머니, 엄마와 아빠, 그리고 친구들의 스토리까지, 애틋한 감정이 남고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게 하는 흡입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묘미는 이 모든 스토리들과 고민들을 결론내지 않고 진행형으로 그대로 두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가고시마라는 지역은 영화의 주인공인 코우키가 떠나고 싶은 지긋지긋한 대상입니다. 허구헌날 날리는 화산재와 멀어져버린 가족이 다시 뭉치기 위해서는 그냥 폭발해서 없어져 버렸으면 하는 대상이지만, 영화를 다시보니 가고시마의 중앙역부터 덴몬칸, 사쿠라지마와 여러 소소한 장소까지 등장시키면서, 고로에다 감독 자체는 가고시마에 대한 상당한 애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 곳곳에서 내가 지금 생활하고 있는 장소가 나오니 반가움이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한달간 시간날때마다 조금씩 방문해본 '기적' 성지순례 기록을 남겨봅니다. ((스포주의))


첫번째로는 사쿠라지마 입니다. 영화에서는 �이시바시기념공원 (石橋記念公園)에서 다리를 두고 사쿠라지마가 등장합니다. 주인공인 코우키는 떨어진 가족이 다시 뭉치기 위해서는 사쿠라지마가 대분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관련이 있겠나싶냐마는 그 정도 위험한 상황이 닥쳐야,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가족이 모일것이라는 상상이 틀리지많은 않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코우키는 어떤 계기에서인지 마지막에 소원을 빌때 기적을 바라기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입니다. 일종의 현타가 온 것인지, 동생인 류노스케에게 아빠를 잘 부탁한다며 말하는 모습이 개인적으로 놀라웠습니다. 가족이 떨어져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대신 성숙함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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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장소는 주인공이 처음으로 기차에서 기적을 맛본 (할머니가 사라진) 기차역입니다. 이곳을 찾으러 왔다는 것 자체가 제 스스로도 어이가 없습니다. 이런데까지 찾아내다니, 스스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최대한 구도를 똑같이 찍어보았습니다.


세번째 장소는 엄마가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고, 쓸쓸하게 돌아서던 �덴몬칸 거리입니다. 오른편에 보이는 동상(時標⑤)을 찍고 가면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떠들썩한 모임이 끝난 이후 무한한 공허함을 느끼고, 후쿠오카에 있는 둘째 아들과 통화하면서 우는 장면이 인상깊습니다. 류노스케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을 보고싶지 않을 것 같다고 말을 하는데 그럴리가 없었습니다.


세번째 장소는 코우키 일행이 돈을 모으기 위해 방문한 가게 입니다. �가챠폰당 (ガチャポン堂) 이라는 장소인데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퇴근하고 저녁에 갔는데 다행히 열려있었고, 드래곤볼, 건담, 울트라맨과 같이 정말 오래된 장난감들이 많아서 볼만합니다. 실제로 장난감 산다는 안내 문구가 곳곳에 많이 붙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잡지랑 여러가지 장난감을 구매했습니다. 장난감까지 팔아가면서 빌고 싶은 소원. 장난감을 많이 갖고 싶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 예쁜 선생님과 결혼하고 싶다 등 아이들이 빌만한 소원을 얘기하는 가운데, 가족이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특히 가슴이 아픕니다.


다음 장소는 �아카시야 본점 (明石屋 本店) 입니다. 이번엔 할아버지의 스토리인데 가고시마 전통 간식인 가루칸을 판매하는 과자점입니다. 할아버지는 예전에 가루칸을 만들다가 그만두었는데 무슨 계기인지 아카시야 본점에서 가루칸을 사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고서 다시 한번 가루칸을 만들겠다는 승부욕에 불타지만, 이내 식었는지 어떤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정답을 찾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흔들리는 것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중간에 나온 가고시마중앙역 전경입니다. �이온 가고시마 중앙점 (イオン鹿児島中央店)의 6층에 가보니 유사한 구도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학교인 �사카모토다이 초등학교도 있는데 아무래도 시내와 좀 거리가 있어서 방문하기가 어려워서 스킵했습니다.


주변 등장인물들도 기억이 남습니다. 동생 류노스케의 친구인 메구미는 꿈이 여배우인데 같은반에 정말 연예인처럼 예쁜 친구때문에 항상 열등감과 초조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술집을 운영하는 엄마가 배우를 그만둔 이유가 자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의 친구인 유는 학교의 예쁜 선생님과 결혼하는 것이 꿈이지만, 마지막에 소원을 빌때에는 아빠가 빠칭코를 그만두는 것을 말합니다.


진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러나 영화에서 어떠한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인 코우키같은 경우에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스스로 정답을 찾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어떠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스스로 정답을 찾든 노력을 하든 그대로 살아갈 수 밖에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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