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의 자그마한 카페가 하나 있다. 사람 몇 명 들어가기도 어려운 이 작은 커피집은, 자리가 없어 다른 곳을 찾아 아쉽게 돌아서게 했던 적이 없다. 테이블도 많지 않고 의자도 한눈에 몇 개인지 세어볼 수 있을 정도인데도 만석이었던 풍경을 마주했던 기억이 없다. 그래서 글을 쓰거나 혼자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기 위해 언제든지 편히 갈 수 있는 첫 번째 선택지였다.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과거에는 돈이 없어 가격이 저렴한 카페에서 한잔을 시켜두고 하루 종일 글을 썼다는 사연. 1,000원짜리 커피 한잔을 시켜두고 몇 시간이던지 글을 쓴다고 하면 그 글의 가격 또한 1,000원만큼이라 할 수 있을까. 글에도 가격을 매길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이 작은 카페의 가장 싼 커피의 가격이 딱 1,000원이다. 아메리카노 한잔에 5,000원이 훌쩍 넘어가는 곳이 허다한 요즘을 생각하면 정말 놀랍고 신기한 커피값이다(사람이 없고 한적해서 이 곳을 자주 찾기는 하지만 사실 가격도 한 몫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회사에 가지 않는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도 여유가 생기면 이 작은 카페를 어김없이 찾아왔다. 쓰고 싶은 글감이나 기록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1,000원짜리 커피 한잔과 함께 자리를 잡고 펜을 쥐거나 노트북을 펼쳐내면 무언가 기적처럼 떠오르는, 내게는 생각과 고민이 샘솟는 마법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훌륭하고도 멋진 글을 쓰는 수많은 브런치 작가분들의 글을 보면서 소중한 영감을 얻기도 했지만 이 작은 공간 또한 내게는 생각의 틈을 발견하게 해주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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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길었던 이번 주도 무사히 흘러갔고, 어느 때보다도 반갑게 맞이한 주말. 점심에 친한 선배의 결혼식도 있었고 오후에는 '내 마음대로' 쓰고 싶은 글이 아닌 업무로서 해야 하는 일들도 적당히 마무리하며 또 한 번의 바쁜 토요일을 보냈다(사실 정말 여유롭고 싶었건만..!). 그리고 늦은 저녁 다시 작은 카페를 찾았다. 그런데 항상 내게 새로움을 선사했던 이 공간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펜을 들었건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카페에서 나는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무엇보다 소중한 1,000원만큼의 시간을 샀고 딱 그만큼의 글을 쓰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고민이 들었다. 글을 쓰고자 하는 까닭은 무언가 생각이 떠올라 그것을 기록의 형태로 남겨두기 위함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보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고자 함에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철저히 자신의 시간과 기억을 남겨두고 싶은 이들도 꽤나 많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내 브런치 계정에 올리는 글들은 그 종류가 꽤나 단순했다. 6년째 매일 써오는 하루하루의 일기를 조금씩 다듬어서 올리거나, 유명한 전문가의 리뷰처럼은 아니지만 영화, 드라마, 음악을 마주하고 떠오르는 생각의 '틈'을 누군가와 공유하기 위한 가벼운 글들 뿐이었다. 어떤 글은 메인에 걸려 조회수가 몇 만이 되었지만 어떤 글들은 10명도 채 읽어주지 않았던 글들도 있다. 모두 같은 사람, 나라는 한 사람이 생각하고 기록한 것들이지만 이 모든 글들은 어떠한 잣대에 의해 철저하게 줄을 세울 수 있었다.
나 또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인지라,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인기 있는 글들에 더 눈길이 갔다. 열 손가락이 모두 소중한 존재였지만 어떤 손가락만큼은 아프지 말고 더 예쁘길 바랐다. 그러다 보니 제목 한 줄이라도 조금 더 멋지게 쓰고 싶었고 인기 있는 글들은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하는 고민이 먼저 떠오르곤 했다. 가격으로 따지자면 1,000원짜리 글이 아니라 몇십만 원, 몇백만 원짜리 글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같은 맥락으로 회사에서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내 커리어를 보다 값어치 있게 해 줄 멋진 기획서, 아이디어만을 쫓다 보니 내 발걸음 이전에 찍혔던 그것들만을 맹목적으로 따라 하려 했다. 이건 얼마짜리 기획서, 저건 더 비싼 기획서처럼 글뿐만 아니라 생각에도 가격을 매기고 줄을 세우려 했다. 확실한 우선순위가 생긴다는 것은 업무에 있어 이로운 방향성이지만 한 사람의 생각과 그 자유로움에 있어서는 지독히도 '해로운' 것이었다.
결국, 지금 쓰고 있는 글은 딱 1,000원만큼의 시간을 사서 적은 기록이다. 이전에 적었던 글처럼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의 명대사를 분석하고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런 '하이라이트'는 없다. 하지만 '생각'만큼은 정말 자유로운 글이다. 그냥 내가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자유롭게 말하는 그런 글. 몇백만 원짜리 글을 쓰려다 보니 지금 옆에 놓여있는 1,000원짜리 커피만도 못한 글이 쓰였었는데 이 글은 딱 1,000원만큼의 글이다. 누군가 많이 읽어주지 않아도, 메인에 걸리지 않아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라는 말을 듣지 못해도 이 짧은 1,000원짜리 글이 내게는 정말 소중한 손가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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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올려보면, 이 글의 첫 문장은 이러했다.
"1,000원만큼의 시간을 사고, 딱 그만큼의 글을 쓰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글을 갈무리하는 지금, 이 생각에서 조금은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만 같다. 얼마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글을 쓰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도 이것 또한 내 생각이고 나만의 글로서 충분히 멋지고 훌륭할 테니. 앞으로는 딱 1,000원짜리 글들이 더 자주 쓰였으면 좋겠다. 생각이 자유로운 어느 작은 공간에서 펼쳐질 글들과 멋진 고민들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보이지 않는 충만함으로 꽉 찬 가을밤이 깊어간다.
2019.10.26 짧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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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보게 날씨가 쌀쌀해졌다. 정말 가을이 오고 있었고, 매일 아침 나서는 집 앞 공기는 작년에도 똑같이 찾아왔던 그것과 같이 서늘했다. 찬바람이 조금씩 불어오고 나뭇잎이 저마다의 색깔을 바꿔갈 무렵이면 쓰이는 글 또한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