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는 약속

by 김명진

방송 PD를 꿈꾸며 ‘언론 고시’ 공부에만 전념하던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 우연한 기회에 한 교양 프로그램의 계약직 조연출 기회가 생겼었다. 당시 면접관이었던 메인 PD님은 나의 답변이 그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고 했다. ‘오늘 면접 떨어져도 계속 PD 지원할 건가요?’라는 마지막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PD의 꿈을 계속 꿔도 되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에 답을 찾고자 왔습니다. 떨어지면 오늘의 제가 부족했던 탓이고, 합격한다면 그것에 대한 답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덕분에 면접에 합격했고 곧바로 제작에 투입되었다.

처음에 편집이 손에 익지 않아 30초 분량의 예고편을 만드는데 3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같은 장면을 10번씩 돌려보며 자막을 쓰는 것에는 그것의 배가 걸리는 노력과 시간을 쏟아야 했다. 촬영 전날에는 카메라, 음향, 조명을 비롯한 모든 스태프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프로그램 하나를 위해 움직이는 제작진 수십 명의 5분 대기조가 되어 휴대폰은 24시간 밤낮없이 울려댔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PD님의 호된 질책과 꾸지람이었다.


과거 그와 함께 일했던 여자 조연출이 삼겹살집에서 마늘을 구웠다는 이유로 혼이 나 눈물을 쏟았다는 일화는 유명했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유쾌하고 따스했지만, 일할 때만큼은 한없이 예민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나 또한 방송 직전 시사를 받는 자리에서 지켜보던 이들의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큰 소리를 듣기도 했다. ‘방송 일은 처음이어서, 서툴러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그에게 효율적인 변명이 되지 못했다.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에 임박하고 있음을 느낄 무렵, 그와 단둘이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어느 저녁이었다. ‘배고픈데, 소주나 한잔 할래?’ 배가 고픈데 밥이 아닌 술을 하자던 그의 말에 조용히 따라나섰다.

그는 별다른 서론 없이 자신의 조연출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스무 살 때, 당장 돈을 벌어야 했기에 계약직 조연출을 시작했다던 그는 당시의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공채 출신 PD가 아니었기에 스튜디오에는 들어가지도 못했고 지극히 사적인 심부름마저 허다했단다. 기분 나쁘게 왜 말없이 쳐다보냐는 이유로 뺨을 맞기도 했다며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존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환경에서 바닥부터 지금까지 버텨온 그가, 자신도 모르게 이미 그에게 익숙해져 버린 방식으로 한없이 차가웠던 까닭이었다.


‘나도 그때 방송 일이 처음이었는데, 누구 하나 따뜻하게 가르쳐주지 않더라. 그래서 지금 너한테도 많이 미안하다.’


술자리는 짧았지만 집으로 돌아가던 밤은 길었다. 그날의 소주 한 잔과 함께 나는 쓰디쓴 조연출 생활을 끝까지 버텨냈다. 그토록 고대하던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회사를 나서던 날, 늘 그랬던 것처럼 그는 무심한 듯 끝인사를 건넸다.


‘정말 고생했다. 또 보자.’



시간은 누군가 애써 밀어내지 않아도 조금씩 자연스레 흘러갔고 소주 한 잔과 함께 기어코 그 시간을 악착같이 버텨냈던 청년에게, 이제는 진짜 PD라는 명함과 직책이 생겼다. 추억이라 부르기엔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은 기억들이지만 기꺼이 그 시간들을 잊지 않고 멋지게 남겨두고 싶다. 부족하고 어리숙하기만 했던 그 시절보다 한 걸음 더 좋은 사람, 함께 고민하고 일하기에 꽤 괜찮은 PD가 되어 다시 그를 마주하고 싶다. 그때의 소주 한 잔은 쓰지 않고 지나치게 달았으면 좋겠고.


그렇게 혼이 나고 눈물 나게 미웠는데, 가끔 그가 그리워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삶이란 이처럼 참 묘하고 신기한 감정들로 가득 차 있는 것만 같다.



계약직 근무가 종료되고 회사를 떠나던 날, 어쩌면 그는 내가 PD의 꿈을 계속 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기약 없이 어디선가 또 보자던 그의 한 마디는, 내게 날짜가 정해지지 않은 소중한 약속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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