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일기장

by 김명진

아버지는 아주 오래된 습관처럼 일기를 쓰셨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께 일기 쓰는 것을 숙제로 받았던 내가 어렵지 않게 써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의 어깨너머로 늘 봐오던 모습을 나는 이유도 묻지 않은 채 매일 같이 따라 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내가 그에게 배운 가장 소중한 습관이었다.



아버지는 군 생활을 하시던 무렵, 당신의 하루를 조심스레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의 사소한 ‘습관’은 제대 후 어머니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나와 여동생이 태어나던 날들까지 소중히도 이어져 왔다. 아버지의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당신 스스로의 ‘약속’이었던 셈이다. 가족의 소중함과 흩어지는 하루하루를 마음속 깊이 기록하고자 했던 약속. 그는 행복하고 기쁜 순간에도, 혹은 살아내는 것이 조금은 힘에 부칠 때조차도 그 기록만큼은 굳건히 지키려 했다. 우직하고도 조금은 고집스러웠던, 그가 간직했던 습관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시간이 흘러 내가 지금 당신의 나이가 되면, 지난한 삶의 흔적들을 온전히 보여주며 함께 추억하고 싶어서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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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달로 최근의 젊은 부모들은 동영상과 화질이 뛰어난 카메라로 자신의 아이들이 자라는 일상을 기록하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들은 이미 오늘날의 보편적인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던 90년대 초반만 해도 지금의 모습과는 꽤 많이 달랐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의 모습을 담아내던 옛날 사진의 오른쪽 하단에는, 주황빛의 색이 바랜 날짜가 흐릿하게 새겨졌다. 그렇게 한 장씩 채워지는 필름들을 바라보며 많이도 흐뭇해하셨을 것이다. 물론 그 화질이 오늘날에 비해 썩 좋은 편에 속하지는 않았겠지만 부모의 마음은 그것보다 훨씬 뚜렷하고 색이 진했으리라.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나의 어린 시절이 새겨진 사진들은 아쉽게도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빛바랜 사진 몇 장을 지갑과 일기장으로 쓰던 익숙한 노트 속에 고이 간직해 오셨다. 아버지는 늘 같은 제품의 노트를 일기장으로 사용하셨는데, 매년 조금씩 달라지는 일기장의 디테일과 색상들이 시간이 흘러 쌓이다 보니 비교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했다. 거실에는 아버지의 책과 일기장들이 꽂혀있던 긴 책장이 서 있었는데, 바쁜 와중에도 그 안에 담겨있던 기록만큼은 가장 먼저 챙기던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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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낌없는 사랑과 관심 속에 나는 치열했던 대학 입시를 무사히 통과했고, 벚꽃 잎이 머리 위로 흩날리던 캠퍼스에 발을 내디뎠다. 아버지의 뒷짐 지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따라 하던 소년은 눈 깜짝할 새 여러 번의 훈련과 사격 또한 건강하게 마치고 군화를 벗었다. 그리고 소년은 특별할 것 없던 평범한 일상 속, 한 가지 슬픈 변화를 목격하게 되었다.


바로 아버지 스스로의 약속이었던 ‘당신의 일기장’. 가족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려 기록하던 그의 비망록(備忘錄)을 나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토록 아끼던 일기장을 언젠가부터 펼치지 않았다. 시리게 아려오던 그의 뒷모습을 소리 없이 목도(目睹) 했던 순간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가 일기를 멈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무엇 때문에 하나뿐인 아들이 당신의 나이가 되면 소중히도 전해주고자 했던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까.


군대에서 사회로 돌아왔다는 철없던 기쁨에 취해있던 어느 날. 집에 조금은 어려운 일이 생겼다는, 늦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너무나도 미안하고 멍한 마음에 한 마디 대꾸도 없이 나는 그 비밀을 아프게도 삼켜냈다. 아마도 아버지가 일기를 쓰지 않은 것 또한 그즈음이었으리라. 고난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아버지의 일기장은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했다. 한 마디의 예고조차 없었던 가족의 위기 속 아버지는 일상의 기록을 멈추고 오로지 그것을 이겨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에게 찾아온 슬픔과 형언(形言) 할 수 없는 고통들을 차마 글로서 남길 자신이 없었을 터였다. 20년 넘게 간직해오던 당신의 약속을, 그 감사한 노력들을 나는 무기력하게 지켜드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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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최근 화제가 되었던 어느 아나운서의 고백이 떠오른다. ‘저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바로 그것이다. 자신을 키워주었고 꿈을 향한 원동력이 되어 주었던 그녀의 아버지. ‘여유가 없던 부모의 인생에 나는 목숨을 걸고 생을 바쳐 키워낸 딸이었다.’라고 담담하게 그녀는 말했다. 나의 아버지 또한 그녀의 아버지와 분명 다르지 않았으리라. 삶에 어떠한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가족의 존재와 소중함을 온전히 기록하고자 했던 그의 약속. 그가 남긴 사랑의 흔적들은 한없이 여리고 부족했던 나를 단단하게 지탱했다. 어느새 많이도 커버린 소년은 아버지의 작아진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제는 자신이 기록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떠올리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서늘한 계절. 가을비가 오래된 손님처럼 창문을 두드린다. 꽤나 무겁게 찾아왔던 우리의 어려움은 서로 끈끈하게 의지하며 이제는 꽤나 가벼워졌다. 그리고, 이따금 돌아본 아버지의 얼굴에는 그간의 애씀과 숱한 걱정들이 깊은 주름 사이로 희미한 생채기를 내며 흐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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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가 될지 먼 훗날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6년째 매일 써오고 있는 나의 일기장을 온전히 보여드리고 싶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라는 존재와 가족의 위대함을 기록하는 약속을 지켜내겠다고. 늘 가족이 함께 하고 있음을 잊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내가 이어가겠다고 말이다.



그가 잠시 내려놓았던 펜을 다시금 손에 꼭 쥐고, 소년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아들의 일상을 웃으며 기록해 주기를 온 마음 다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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