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유튜브 영상을 보며 하루 종일 그리웠던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러다 문득, 옆에서 날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졌다. 분명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타이밍을 엿보다 슬쩍 옆을 돌아보니 50대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나를, 아니 내 귀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지하철 같은 칸에서 우연히 마주한 아저씨는 내게 수줍게 말을 건네 왔다.
"저기요, 혹시 귀에 꽂고 있는 그거 뭔지 물어봐도 돼요?"
"아, 이거요? 에어팟이라고 하는데, 무선 이어폰이에요."
"에어 판이요?"
내 발음이 문제였을 수도 있겠으나, 분명 이 아저씨는 '에어팟'이 무엇인지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에. 어. 팟이라고 부르는데, 요즘 많이들 쓰는 무선 이어폰이에요. 선 없이도 스마트폰이랑 연결해서 통화도 하고 음악도 듣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그렇군요... 아니, 우리 딸이 올해 15살 중학생인데 이번 생일 선물로 이걸 사달라고 조르고 있어서요."
"요즘 중고등학생 친구들도 많이 쓸 거예요."
지하철 위에서 뜬금없이 마주한 '에어팟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갔다. 그의 불안한 눈빛을 보니, 그는 에어팟이라는 것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것이 있는 듯했다.
"그럼 혹시... 에어팟? 그거 가격이 얼마나 해요?"
그가 내게 묻고 싶은 핵심이었다. 그렇게 많이들 꽂고 다니는 이 콩나물 줄기와도 같은, 이것의 가격.
"저는 인터넷으로 구매했는데, 에어팟 2세대 기준으로 17~21만 원 정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18만 원에 샀어요."
가격대를 말하자, 그가 듣고자 했던 답은 아니었나 보다. 한눈에 봐도 너무 비싸다는 표정. 그는 약간 부끄럽고 상기된 얼굴로 감정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백화점 어느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어떤 옷을 둘러보다 가격표를 마주하고 아쉽게 돌아서는 듯한 그런 표정.
"따님이 이 에어팟을 선물로 갖고 싶어 한다고 하셨죠?"
"네. 생일 선물로 꼭 사주고 싶었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너무 비싸네요. 충전하는 방식이 선 없이도 하는 것도 있다고 하던데, 그건 조금 저렴할까요?"
아마, 같은 에어팟 중에서도 무선과 유선 충전 방식 모델에 대해 중학생 딸에게 들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쩌나. 둘 다 결국 비싼 에어팟이고, 그저 충전 방식의 차이뿐인 것을. 선이 없어서 가격이 조금 더 합리적일지도 모른다는 그의 예측은 아쉽게도 빗나갔다.
"충전하는 방식의 차이지, 결국 이 에어팟의 가격은 못해도 15만 원 이상 줘야 할 겁니다."
"15만 원이면 차라리 따뜻한 겨울 옷 한 벌을 사주고 싶은데, 딸내미가 친구들도 다 있는데 자기만 없다고 그래서 걱정이네요. 옷도 한 벌 사줘야 하는데 지금 에어.. 이거 사주면 조금 부담이어서요."
그의 말투와 눈빛에서 내게 다른 선택지가 없느냐는 물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애플이라는 브랜드 제품이라 에어팟이라는 것을 훨씬 더 싸게 사는 건 어려울 거예요. 무선 이어폰은 에어팟이 아니더라도, 가성비 좋은 다른 제품도 충분히 있을 거예요. 근데 중학생 친구이면... 친구들이 다 쓰는 그런 브랜드를 한창 신경 쓸 나이라 따님이 좋아하실지는 모르겠네요."
"그렇군요... 무튼 자세하게 알려줘서 고마워요. 조금 비싸도 에어팟을 선물로 사야 할 것 같네요."
정말 아쉬운 표정과 인삿말을 남기고 그는 다음 역에서 내렸다. 그의 힘없는 뒷모습이 열차 출발과 함께 멀어졌다.
겉모습을 보고 누군가의 직업과 환경을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일이지만,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무언가 충분히 추리해낼 수 있었다. 신발은 평범한 운동화나 구두가 아닌, 진흙이 잔뜩 묻어있는 작업화였고 몸에서는 오늘 하루 종일 고생한 듯한 땀내가 희미하게 풍겨왔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점잖은 중저음의 신사와 같았고, 눈빛은 조금 피곤해 보였을지라도 또렷하게 맑았다. 딸의 이야기를 내게 꺼낼 때에는 주름진 눈가 사이로 '사랑'이라는 것이 묻어 나오는 듯했다.
누구보다 고된 하루를 보냈을 그였겠지만, 아저씨는 뿌듯하게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을 터. 딸의 15번째 생일 선물로 에어팟을 사주지 못해 스스로를 자책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부모의 감정을 온전히 모른다. 여자 친구의 생일에 좋은 선물을 사주지 못하는 혹은 부모님의 생일에 용돈을 두둑이 드리지 못하는 자식의 감정과는 또 다른 깊이의 것이겠지. 그럼에도 지하철 위에서 내게 에어팟 가격을 물어왔던 그에게서 부모의 감정, 그 향기를 옅게나마 맡았다. 그리고 내가 느낀 감정들은 그것보다 훨씬 진했다.
날씨가 몰라보게 추워졌다. 11월 겨울의 어느 날에 생일을 맞이하게 될 아저씨의 따님 손에는 어떤 선물이 들려있을까. 에어팟일까, 아니면 따스한 겨울 옷과 함께 얹혀있는 아저씨의 미안함일까.
누군가 기분 좋게 받게 될 선물에는, 당사자가 모르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