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워진 공기, 딱 이 정도 변화로도 충분해

'생존'을 위한 들숨날숨 말고

by 김명진

아침에 머리를 감고 샴푸 향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채 욕실을 나서는 공기가 꽤나 서늘해졌다. 가을이 오고 있음이다. 누군가는 계절의 변화를 가로수 나뭇잎의 단풍으로, 누군가는 늦게 찾아오는 아침과 빨리 깊어지는 밤으로 느끼곤 한다. 하지만 내게는 머리를 감고 나오며 느끼는 온기의 변화, 딱 그 정도의 작은 바뀜이 계절의 알림인 셈이다.


이처럼 비슷해지고 크게 다를 것 없는 일상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길 때가 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우주에 커다란 바람이 불어오는 것과 같다. 이 거대한 폭풍은 때로 너무나 강력해서 스스로가 전혀 다른 세계 속의, 전혀 다른 존재가 된 것만 같은 생경함을 온몸으로 느끼게도 한다. 이 시간 즈음이라면 반드시 그 공간에 있어야 하는 한 사람이 처음 걷는 어느 길거리 위에 서 있을 수도 있으며, 익숙하지 않은 공기를 나누며 낯선 이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자신에게 어색함과 낯선 감정을 한껏 느낄 때쯤이면 그는 충분히 익숙한 시간과 공간으로 반드시 돌아가게 되어있다. 그것이 집이든, 회사든, 학교든. 반드시 회귀하게 되어 있음에도 잠시나마 새로웠던 찰나의 순간들은 그에게 숨 쉴 틈을 선사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매일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우리는 끝없이 '생존'을 위한 호흡을 성공적으로 이어가고 있지만 때로는 그러한 낯선 '숨'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치열한 일상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거나, 여행을 떠나려는 것 등의 행동과 강력한 의지들이 납득이 간다. 반대로 매일이 불규칙한 이들이 익숙한 패턴의 삶을 갈구하는 것 또한 저마다의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 위함이리라.


이러한 논리라면, 오늘 아침도 나는 새로운 숨을 내쉬었다. 새로 바꾼 샴푸로 머리를 감았으며 그 향기가 사라지기도 전에 쌀쌀해진 욕실 앞 공기를 마주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정도의 새로움과 변화가 충분히 좋은 날도 얼마나 행복한가.


여유를 갖고 우연히 마주했던 책의 한 구절로 짧은 글을 갈무리해본다.




매일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다 보니

백지 위에 백지를 쌓아온 셈이었다.


- 책 <자기 앞의 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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