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할 것 없는, 평일 어느 날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아니, 최근의 표현을 빌리자면 '쇼양(예능화 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이르는 말)' 프로그램을 만드는 신입 PD로서 느껴온 것들을 조금은 편하게 기록해보고 싶었다.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생각과 고민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해서!
흔히 일반 방송계에서 시사나 교양 프로그램을 떠올리면 드라마와 예능의 영역을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을 뜻한다. 이 말은 거꾸로 생각해본다면, 그 둘의 영역이 담당하는 콘텐츠가 아닌 모든 정보, 토크, 분야를 총망라하고 있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모든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은 정체성 혼란의 문제에 빠지기 쉽다. 저마다 고유한 분야들이 교집합 된 다양한 포맷이 등장하며 '저 프로그램은 OO 분야 프로그램이구나!'하고 단정 지을 수 없게 되었다.
어제와 오늘의 내가 몸 담고 있는 프로그램 또한 마찬가지다. 정보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의 핵심 기획 의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시청자가 지루해하지 않는 연출을 위해 매 순간 치열한 고민에 빠져든다. 그것은 흔하디 흔한 예능식 게임이나 출연자들의 애드리브, 흥미로운 VCR 영상 등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필연적인 의문이 떠오른다.
'누군가에 의해 정의된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느냐, 아니면 여러 장치가 결합된 포맷으로 가느냐. '하는 질문.
물론, 답은 방송국 회의실이나 편집실에 있지 않다. 모든 TV 앞 시청자들의 공기와 반응, 지하철 위의 스마트폰으로 수없이 흘러가는 눈길들에 비추어지고 있을 테니.
어느 쪽을 선택하고 집중하느냐는 제작진의 가치관과 역량임에는 틀림없다. 시청률과 그 자리에 항상 서있지 않는 '트렌드'와 '문화'를 따라가기 위해 매 순간 우리는 고민하고 결정하며 반응을 기다릴 뿐이다.
늦게까지 이어진 촬영과 편집을 마친 어느 저녁. 조촐하게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선배 PD님이 이런 말을 건네 왔다.
'어떤 이들의 문화를 공감할 수 없다면, 그들의 문화를 만드는 일을 할 수 없다.'
순간, 멍했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맞는 말이다. 한국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평생을 타지에서 살아온 외국인 PD를 뽑을 수 없고, 2G 폰을 쓰는 이에게 신규 모바일 앱 기획을 맡길 수 없을뿐더러, 빼빼로데이를 처음 들어보는 이에게 빼빼로 마케팅 전략 기획서를 받을 수는 없으니까.
굳이 PD가 아니더라도 유튜브 콘텐츠, 광고, 마케팅 전략, 세일즈, 프로모션 기획 등 모든 분야의 회의실에 들려도 좋은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우리가 오늘 누리는 문화는 무엇에 울고 웃는지, 무엇에 느낌표와 물음표가 떠오르는지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우리이기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는 꼭 성공해야지!'
'이번 기획서는 꼭 통과해야지!'
'이번 콘텐츠는 꼭 대박 쳐야지!'
그렇다면, 사실 모든 기획자들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며 대답을 들으려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마다 다른 회사의 사무실과 상이한 기획서를 들었다 놨다 머리를 맞대지만 말이다.
모든 기획자들에게 한없이 소중한 시청자, 구독자, 클라이언트들이 같은 곳에서 같은 이야기를 떠들고 웃으며 그 자체로 문화가 되어간다. 가끔은 지금의 '나'를 다른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으로 치환하여 떠올리고 무엇이든 좋으니 적어보면 좋을 것 같다.
그 유명한 시처럼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뜨거운 가슴과 고민에서 잠시 내려올 때 발견할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