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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실 Jun 05. 2020

01. 스페인에 도착하다

제2부. 스페인에서의 271일을 회상하다


축구의 나라

플라멩코의 나라

스페인에 도착하다



10월 17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바라하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드디어 축구의 나라, 플라멩코의 나라 스페인에 발을 디딘 것이다. 지하철로 탑승 후 40분. 마드리드 스페인 광장 앞에 위치한 어학원이 보인다. 어학원 건물과 초록색 철제문 안의 목조 엘리베이터가 고풍스럽다. 족히 한 세기는 넘어 보이는 붉은 벽돌 건물이다. 스산한 건물 내 2층까지 어학원이 있었고 내가 머물 기숙사 건물은 4층에 위치해 있다. 70년대 무성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목조 엘리베이터에 내려 길게 드리워진 초인종 줄을 당기니 금발의 고수머리 아주머니가 나를 반긴다. 러시아 아주머니다.     


“Cecilia(세실리아)?”

“네. 안녕하세요?”

“등록하신 한국인 맞죠?”

“네. 한국, 사우스 코리아, 남한이요.”

“반가워요. 물론 남한이겠죠. 북한 친구는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난 이곳의 모든 살림을 맡아서 하는 출퇴근 도

우미예요. 아침과 저녁을 차려줄 거고요. 점심은 밖에서 세실리아가 해결해야 해요. 음, 그리고 이쪽으로 와 봐요. 볕이 잘 드는 방이 지금은 없네요. 조금 춥겠지만 그래도 넓으니까 이 방을 줄게요.”


음습한 방이다. 스탠드 하나가 저리 반갑기는 처음이다. 삐거덕 거리는 두 칸짜리 장롱, 얇은 흰색 시트가 깔린 1인용 침대, 스탠드만 덜렁 놓인 나무 책상. 그것이 그녀가 내어 준 방의 전부다. 도착한 날이 토요일이라 주말을 세고 월요일이나 되어야 어학원을 간다. 방을 배정 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한국에서 실어 온 사랑스러운 먹거리를 장롱 가득 챙겨 놓는 일이었다. 된장, 고추장, 김, 선식, 라면까지 완벽하다. 혹시 유럽엔 염색약이 없을까 봐 준비해 온 염색약. 정보가 부족했다. 바리바리 싸 온 염색약이 이곳에서 더 쌀 줄이야.


긴장을 잠시 내려놓으니 커피가 그리워진다. 주방에서 커피를 만들었다. 자, 한국의 유명 바리스타 납셨다. 자격증은 없어도 나의 수제 바닐라 까페라떼에 열광하던 희은이가 문득 떠오른다. ‘어디 한번 만들어볼까?’. 어디에서나 간단히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제 바닐라 카페라떼의 진정한 맛은 믹스커피에 달려 있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우유를 팔팔 끓이다 바닐라 시럽 또는 설탕 그리고 믹스커피를 섞어 달달하게 만든 후 거품이 훅 올라왔다 꺼질 때 불을 끄면 유명 바리스타의 바닐라 라떼에 뒤지지 않는 수제 라떼가 탄생한다. 부족한 대로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넣어 2분간 덥힌 후 커피를 두 스푼 넣어 저으니 나름 괜찮은 까페라떼가 만들어졌다. 우유에서 나는 약간의 젖비린내만 제외한다면.


머그잔을 스탠드 뒤로 쭈욱 밀어 놓고는 한국에서 가져온 다이어리를 꺼내 첫 일기를 써 내려갔다. 방은 어둡고 건조했다. 그래서일까 마음에도 음지가 가득하다. 스페인어를 처음 시작했던 그때를 떠올렸다. 스페인어 시범고등학교로 선정된 덕분에 열일곱 살 처음으로 ‘스페인어’ 란 녀석을 접했다. 발음도 이상하고 문법도 독특한 이 녀석은 마치 사랑을 구애하듯 아주 달콤한 언어였다. 그 분위기에 매료되어 직장을 다니면서도 스페인어의 끈을 놓지 않은 덕분이었을까.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지점으로 발령이 났으면 하는 꿈도 꾸어봤더랬다.

하지만 직장 내에서 모 고등학교에 모 대학으로 닿은 연줄이 가득한 인싸, 즉 골드 클래스가 아니었던 나는 차라리 스페인 어학연수를 꿈꾸는 것이 더 현실적이었다. 스무 살 때부터 꾸었던 그 꿈을 이제야 이루게 되었다. 직장생활을 한참이나 하고 나서야 쟁취한 나의 버킷리스트,


세실리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꿈을 펼치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고즈넉한 건물들이 놓인 거리를 한층 운치 있게 만든다. 썩 잘하지 못하는 스페인어로 어학원에 등록을 하고 레벨테스트를 거친 후 같은 반의 친구들과 수업을 시작했다. 80kg은 족히 되어 뵈는 카리스마 있는 어조의 육중한 아주머니 한 분이 오시더니 원장 ‘마리아’ 란다. 같은 반 중국인과 내게는 눈길을 열지 않고 연신 프랑스 아이와 스웨덴 아이에게만 눈을 맞춘다. 내 느낌일까. 차별당하는 이 느낌은. 여하튼 그렇게 나의 스페인어 도전기는 시작되었다.


잠들기 전 달력을 쳐다보니 어느새 이곳에 온 지 이 주가 흘렀다. 이제 슬슬 내 집처럼 편안해지는 기숙사를 떠나야만 한다. 한국 유학원에서 소개받은 어학원의 기숙사는 어디랄 것 없이 비싸다. 두 끼의 식사를 제공하고 수강생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조건 치고 한 달에 210만 원이란 돈은 너무 과하다. 그래서 새집을 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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