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나더씽킹 Jun 20. 2023

아빠의 '시끄러운' 귀가에 행복한 아이

'귀가 송(song)'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저녁 시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남편의 노래가 시작됩니다. 

가사라고는 아이 이름을 연달아 부르는 게 전부지만 단조롭기는 해도 나름 '멜로디'가 있는 노래 형식입니다. 이 노래는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이를 만나 허그를 할 때까지 이어지는데, 이러한 '만남의 의식'이 우리 집에서는 (아이가 잠든 뒤 귀가하는 날을 빼고) 매일같이 벌어집니다. 누가 보면 며칠 만에 만나는 사이인 줄 알 정도로 격한 반가움의 표현입니다.


요즘은 귀가 때마다 벌어지는 풍경이 조금 더 '시끄러워' 졌습니다. 최근 세 식구가 열광적으로 시청했던 '팬텀 싱어 4'의 영향인데요, 남편의 이른바 '귀가 송(song)'이 테너 버전부터 베이스, 바리톤, 심지어 콘트랄토와 카운트테너 버전까지 다양하게 변주되는 까닭입니다. 아들은 "아빠, 그만해. 시끄러워~"라고 하면서도 표정은 웃고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시끄러운' 버전의 귀가 송에 대해 남편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내가 오늘 지하철에서 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얼마나 기분 좋았는지 몰라!"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 부부는 비슷한 데가 참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어떻게 하면 아이를 더 웃게 할 수 있을까, 항상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편이거든요.



'내 노래'를 보유한 아이의 자부심


남편의 노래는 '귀가 송'만 있는 게 아닙니다. '잠자리 송(song)'도 있는데요, 한 두 곡이 아닌 대여섯 곡쯤 되는 데다 그 역사(?)도 6년 이상 됐습니다. 귀가 송 멜로디는 그래도 순수 창작인데 잠자리 송은 기존 동요나 가요, 심지어 군가는 물론이고 개그 유행어 멜로디에 가사만 아이 중심적으로 바꾼 것들입니다. 이걸 참 뭐라 설명하기가 어려운데요, 그렇다고 여기에 예시를 들어 보이자니 그 또한 너무 말이 되지 않아 민망한 수준입니다.


그래도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보면, 

'둥글게 둥글게'의 동요에 아이 이름을 갖다 붙이고 도무지 연관되지 않은 단어들을 조합해 '웃긴' 가사를 만들어 낸다거나, '사나이로 태어나서~'로 시작하는 군가에 역시 아이 이름으로 바꿔 내용을 코믹하게 바꾼 버전 등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던 어떤 아재 개그맨의 옛날 유행어는 아이가 태어나서 감사하다는 내용으로 바꿔 부르고요,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으로 시작하는 가요를 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부르는 식입니다.

(들어보면 정말 어이없고 웃깁니다!)


노래를 듣는 동안 아이는 행복한 미소를 내내 짓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같이 부르기도 했습니다. 가사가 틀리면 지적하기도 하고요, 한 곡이라도 빠지면 해 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자장가'가 아닌 '잠자리 송'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짐작되시죠? 잠들기 위해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잠자리에서 부르는 순전히 아빠의 사랑 표현에 집중한 노래인 거죠. 아이가 '내 노래'라고 부르는 이 곡들이 아이를 더 행복하게 잠들게 했을 것이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다 커서 매일 잠자리 송을 불러주지는 않지만, 어쩌다 한 번씩 '이벤트처럼' 아이 침대에서 노래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내 노래'가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아이는 그만하라고 하거나 싫어하는 법이 없어요. 


어디선가 읽었는데요, 아이들은 어떤 특별한 날을 위한 퍼포먼스, 멀리 떠났던 여행처럼 부모가 맘 잡고 기획한 이벤트보다는 매일 부모가 해주었던 말, 습관적 행동과 태도, 감정 표현 등 일상적인 것들을 더 많이 기억하고 영향을 받는다고 해요. 나중에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런 장면들을 떠올리곤 얼마나 행복해할까, 그리워할까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남편의 노래들이 더없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 이 글은 필자가 운영하는 토론교육 웹사이트 <어나더씽킹랩>에 실린 <"아빠, 힘내세요! 아이가 보고 있어요!"-아빠 역할론에 대해> 글의 도입부입니다. 본격적인 아빠 역할론에 대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웹사이트를 방문해 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도 토론, 그러니까 토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