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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나더씽킹 Nov 29. 2023

엄마가 되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서른넷에 결혼을 했다. 

요즘의 만혼 추세에 비하면 다소 빠르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빠른 결혼이 결코 아니었다. 그래도 서른 넘겨 하는 결혼이 보편적인 흐름이긴 해서 스스로 그렇게 늦다는 생각은 안 했다. 특히나 내 주위에는 결혼 생각조차 없는 친구들도 많아서 거기 비하면 상대적으로 이른 편이기까지 했다. 


나와 한 두 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결혼한 친구들 중에는 '좀 더 일찍 했더라면 좋았을 걸'이라고 뒤늦은 후회를 하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는 일찍 결혼한 친구들이 아이를 다 키워놓고 남들보다 먼저 육아에서 해방되는 것을 보면서 하는 말들이다. 나는 전혀 동감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들은 성장했으나 그렇다고 (자의든 타의든) 육아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해방된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싱글일 때만 가능한 자유로운 삶을 비교적 길게 충분히 누렸다는 측면에서도 나의 결혼 시점은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친한 선배의 열 살 어린 아내가 '친구들 다 놀 때 못 놀아서 억울하다'며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보상받고 싶다'며 아이들을 맡겨놓고 수시로 싱글인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것 때문에 적잖은 갈등을 겪는 것을 보면서 시쳇말로 '놀만큼 놀고' 결혼하는 게 정말 다행이란 생각까지 했던 것 같다. 


물론 부모님이 생각하신 '혼기'는 좀 달랐다. 

내 나이 서른을 넘기면서 슬슬 걱정을 내비치던 부모님은 서른한 살에 남편과 연애를 시작한 후로 은근히 결혼에 대한 압박이 세졌다. 하필이면 그 시기 나보다 몇 살이나 어린 사촌 동생이 이른 결혼을 하고 내 절친 두 명이 모두 결혼하면서 더욱 조바심을 부추기는 '시추에이션'이 형성되었는데, 스토리는 주로 이렇게 흘러갔다. 


"네 친구들은 다 결혼하는데 너는 뭘 하는 거냐"(두 명인데 '다'로 표현하는 건 심한 과장 아닌가), 

"지금 당장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빠른 거 아니다"(아이 낳으려고 결혼하나), 

"엄마 친구 딸은 너랑 나이가 비슷한데 벌써 아이가 둘이라더라"(엄친딸은 다 장점만 있지), 

"빨리 낳아서 빨리 키워야 편한데 나이 들어서 언제까지 자식 키울 거냐"(나이 들면 못 노는데, 젊어서 놀아야 하는데) 등등. 


그랬다. 부모님이 생각하는 결혼의 시기라는 것은 딸의 인생 계획에 맞춘 주기가 아니라 '출산과 육아'에 맞춰져 있었다. 결혼하면 언제 아이 낳을 거냐 하고 첫 애를 낳으면 언제 둘째 낳을 거냐고들 한다더니 이건 뭐 본격 결혼 계획이 있기도 전부터 자녀를 낳아 기르는 문제가 일생일대의 과업이 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혼하자마자 자연스레 관심사는 '아기'가 되었다. 

물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보편적 스토리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었다. 4인 가족의 프레임을 은연중에 주입받은 탓인지 막연히 아이는 둘을 낳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것도 아들 하나, 딸 하나로 균형감 있게. 그러나 역계산을 해가며 '지금 애를 낳아도 50대 중반까지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타임라인까지 제시하는 부모님과 달리 정작 나는 '출산은 좀 더 나중에'라고 미뤄뒀다. 인생은 다 때가 있으니 아무리 긴 연애 끝에 하는 결혼이라 해도 신혼 시기에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만끽하고 싶었다랄까. 

아니 어쩌면 그보다 출산과 육아가 여전히 너무 남의 일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실제로 결혼 생활에 적응하는 것과 육아의 세계로 접어드는 것은 책의 챕터를 넘어가는 것처럼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는 차원의 변화는 아니지 않나. '준비가 됐을 때'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러나 예상과 달리 준비가 전혀 안 된 채로 엄마가 되었다.  


©어나더씽킹 via Dalle3


결혼 후 몇 개월 만에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당연히 우리 부부보다 더 기뻐한 분들은 부모님들이었다. 

대놓고 채근한 친정 부모님은 물론이고, 2녀 1남의 막내이자 일찍 결혼해 벌써 초등생 자녀들을 둔 누나들과 달리 늦게 결혼한 아들이 드디어 아빠가 된다는 소식을 접한 시부모님들도 큰 시름을 덜어낸 듯했다. 

어쩌면 아들 걱정이 아니라 나이 많은 며느리 걱정이었을 것이다. 혹 며느리에게 부담 줄까 자녀 계획 얘기는 입 밖에도 꺼내지 않던 분들이었지만 세상 경험 할 만큼 한 나는 그리 무딘 사람이 아니었다. 보편적 정서를 지닌 어른들이 가질 '후대' 걱정을 지레짐작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요, 결혼하고 5개월쯤 지났을 무렵, 추위 타는 며느리 보약을 지어주신다며 한의원에 데려가셨을 때는 짐작에 쐐기를 박았다. '감기 예방 한약'이라 쓰고 '임신을 위한 보약'이라 읽히는 상황이었지만 그러나 나는 알고도 모른 척하며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부모님 마음을 읽었노라고 티를 내는 순간부터 부담스러운 마음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편은 시아버님에 이어 2대 독자가 아니던가. 철저히 '아들 중심' 문화를 고수하던 집안은 절대로 아니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대를 잇는' 어쩌고 저쩌고 하는 식의 고리타분한 사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아들 많은 집 큰 며느리인 친구가 첫 딸을 낳고 둘째 아들을 낳은 후에야 비로소 시댁에 가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던 말조차 흘려들을 수 없었다. 


다행이었던 것은 양가 부모님 모두 '이제는 딸이 대세'라는 분위기에 편승해 있었다는 점이다. 

요즘은 오히려 아들, 딸 구분이 덜해진 것 같은데 그 당시만 해도 '딸 둘이면 금메달, 아들 둘이면 목 메달'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할 정도로 딸 둔 부모를 부러워하고 아들만 둔 부모를 안쓰러워하던 분위기가 강했다. 부모님들 모두 "딸이 최고"라고 하시고 남편 역시 "나는 꼭 딸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노래를 불렀으니 당시 법적인 이유로 출산이 임박할 때까지 태아 성별을 알 길이 없었던 나로서는 '아들이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임신 기간 내내 내려놓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임신 8개월을 넘긴 어느 날, 드디어 태아의 성별을 확인할 수 있는 진료일이 다가왔다. 딸인지 아들인지 알 수 없어 더 설렘이 있었던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면 세상에 나오는 그날까지 끝까지 몰라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궁금해졌다. 친정집에서 내가 다니던 병원까지는 무려 1시간 3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지만 엄마는 극구 동행하겠다고 고집했다. 존재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는 건 또 다른 긴장과 기쁨을 동반하는 일이고 그건 할머니가 될 엄마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날따라 병원 대기 시간은 왜 그렇게 늦게 가던지, 내 이름이 불리기 무섭게 엄마와 나는 발에 용수철 단 듯 튀어 나갔다. 우리 부부가 딸이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주치의는 밝은 표정이었다. 마치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엄마는 '어서 말씀해 주세요'라는 표현을 온몸으로 발산했고 드디어 선생님 입을 통해 존재가 공표되었다. 


©어나더씽킹 via Dalle3



"축하해요, 아들입니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뱃속의 태아가 아들이라는 성별의 꽃으로 다시 태어난 그 순간, 나는 내 감정이 어떤지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다. 옆에 앉은 엄마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선생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 있었던 탓이다. 뉘앙스로 보아 눈물은 감격의 표현인 듯했다. 그동안 내내 딸 예찬을 부르짖던 건 뭐였단 말인가! 황당해서 웃음이 났고 배신감마저 들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진료실을 나온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운 거야? 기뻐서? 딸이 좋다면서. 근데 왜?" 


엄마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이서방 독자잖아. 시부모님이 얼마나 아들 손자 기다리시겠어. 엄마는 진짜 딸이 좋아. 그런데 아들이어야 네가 앞으로 편할 거야. 이제 한 짐 덜었다고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더라고." 


그러니까 기쁨이나 감격의 눈물이 아니라 '안도'의 눈물이었다는 얘기. 우연히 시어머니의 진심(?)을 알게 돼 버렸던 그날의 기억까지 겹쳐지며  나는 기분이 묘했다. 


임신 중반을 넘긴 어느 날이었다. 큰 시누이의 늦둥이 둘째 딸은 우리 아이보다 23개월 먼저 태어났는데, 조카는 내가 시댁에 갈 때마다 내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매우 신기해했다. 그때 누군가 그런 질문을 했다. 

"외숙모 뱃속에 있는 동생이 여동생 같아, 남동생 같아?" 


아이는 뱃속 아이 성별을 기가 막히게 맞춘다더라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도 덧붙여졌다.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조카는 "여동생"이라고 답했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시어머니는 대답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런 소리 마라!"며 손사래를 치셨다. 부지불식간에 말을 뱉어 놓고 어머니는 당황해하셨지만 사실 당황스러운 쪽은 나였다. 그간 하시던 말씀과 달리 속으로는 아들 손주를 원하시는 건가, 2대 독자인 남편의 현실을 내가 너무 편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가, 마음이 복잡했었다. '아니 어머니, 그동안 하시던 말씀과 다르잖아요!'라고, 감히 묻지 못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라서 '감히' 묻지 못한 게 아니라 어떤 답을 듣게 될지 몰라서였다. 


엄마의 말과 시어머니의 은근한 속마음까지 되짚어 생각해 보면 결국 '아들'이라는 성별을 받아 든 순간 내가 느껴야 할 감정은 '안도'가 맞았다. 그 순간, 대한민국에서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정작 부모의 의지나 바람과는 별개로 아직도 여전히 특별히 '의미'를 부여받는 일인 것인가,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복잡했던 심경이 무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는 존재 자체로 반짝반짝했다. 

이 아이가 딸이냐 아들이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로 와 준 고맙고도 소중한 생명체에게 대해 품을 수 있는 감정은 그저 기쁨과 감사여아만 했다. 물론 마음에 걸리는 건 있었다. 주변에서 봐 온 보편적 아들 엄마들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과 '아들 키우기 간단치 않다'는 지인들의 걱정 어린 멘트들이 그 원인이었는데, 그조차 나는 호기롭게 정리해 버렸다. '나는 모두의 편견을 가뿐히 뛰어넘어 '우아한 아들 엄마'의 대표 격이 되어 보리라'는 다짐과 함께. 


문제는 그와 같은 다짐이 아이 육아에는 하등 쓸 데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들 엄마, 딸 엄마 구분이 무의미하게 세상의 모든 육아가 공통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는 건 진리다. 특히 집 안팎에서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고 싶었던 나 같은 성취형 인간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커버 이미지_©어나더씽킹 via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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