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과제 학원은 없나요?
정부과제를 엿보다
정부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회사로 이직했다. 정부과제는 과제의 책임을 지며 예산 분배와 개발을 주도하고 과제 책임자가 있는 주관기관, 함께 개발을 진행하는 참여기관으로 여러 회사, 연구소 학교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당시 회사는 참여기관이었다. 상당히 큰 규모의 예산으로 정부과제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 큰 규모의 정부과제 제안서를 처음 봤다. 방대한 분량과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다. 1시간이 넘게 발표할 정도의 내용이었다. 파워포인트를 이용해서 디자인한 도형, 그래프가 보였다. 내용보다 그 안에 있는 디자인 기법에 더 관심이 갔다.
첫 번째 정부과제 시도
회사에서 새로운 정부과제를 추진했다. 연구소가 주관을 하고 회사는 참여기관으로 정해졌다. 제안서와 발표자료는 주관기관에서 거의 다 작성했다. 회사 소개서와 보유 기술에 대해서 적기만 했다. 앞에서 보았던 제안서에 관한 내용을 참조해서 나만의 제안서를 작성할 기회는 없었다. 주제가 다르긴 하지만, 내가 봤던 과제가 선정된 제안서와 발표 문서를 보고 배운 지식을 전달할 기회 조차 없었다. 주관기관의 결정과 보안상의 이유로 완성된 제안서와 발표 문서는 볼 수도 없었다. 발표 당일 완성본을 처음 봤다. 주관기관에서 알려준 대본대로 답변을 했다. 발표가 끝나기도 전에 정부과제 초보인 내가 결과를 예상할 정도였다. 과제 책임자는 심사위원과 팀원을 설득하지 못했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심사위원이 듣고 싶은 얘기를 못했다. 그렇게 첫 번째 정부과제는 시작도 못하고 끝났다. 그때 다른 참여기관의 연구원이 기억에 남았다. 그 연구원이 과제 책임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년의 시도
본격적으로 정부과제를 시도하기로 방침이 정해졌다. 이제 우리가 주관이다. 1년 동안 사무실 구석에서 홀로 앉아 정부과제를 준비했다. 의논할 사람도 같이 제안서를 만들 사람도 없었다. 수백 장의 제안서와 PPT를 만들고 또 만들었다. 계속해서 탈락, 탈락, 탈락 그렇게 6번을 탈락했다. 브런치 팀 같았다. 너무 얄미웠다. 이유는 명확하게 알려 주지 않았다. 교과서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지원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7번째 시도를 했다. 제안서 작성은 쉬웠다. 쉽게 느껴졌다. 제안서 목차를 확인하고 목차별 작성할 소제목을 적고 키워드를 입력해서 내용을 불려 나갔다. 제안할 내용에 관한 관련 데이터는 여러 번 제안서를 작성하는 동안 관련 사이트를 북마크 해서 데이터는 쉽게 찾았고 반복을 통해서 편리하게 데이터를 반영한 그래프 만드는 법을 숙달했다. 계속 탈락하면서 제안서, PPT를 이쁘게 만드는데 공을 들였다. 열심히 이쁜 폰트를 찾아다녔다. 폰트와 당락은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7번째 탈락을 했다. 같은 말을 7번 들었다. 발표할 때 삿대질을 하는 심사위원도 있었다. 내가 왜 그를 그렇게 화가 나게 만들었을까? 나도 화가 났다. 정부 과제에 탈락하면 이의를 신청하는 제도가 있다. 처음으로 이의를 신청했다. 지원 제외 사유가 인정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학원을 다니고 싶었다. 운전학원, 코딩 학원은 있지만 정부과제 학원은 없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문제는 보물처럼 생각했던, 처음에 봤던 그 제안서 때문이었다. 그 제안서의 내용을 다른 언어로 번역한 거와 다름이 없었다. 몸에 맞지 않는 다른 사람의 옷을 입고 무대에서 모창을 한 거와 같았다. 내용은 달라진 게 없고 파워포인트만 이뻐지고 글자는 작아지고 많아졌다. 불안감에 더 많은 내용을 추가했다. 나의 생각과 철학은 부족했다. 1년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 회사에도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7전 8기
8번째 도전을 했다. 신입 직원이 들어왔다. 정부 과제를 의논할 팀원이 생겼다. 예산 부분은 다른 팀원이 적어줘서 제안할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전 시도에서 눈여겨봤던 연구원이 있던 연구소와 같이 과제를 준비했다. 제안서 작성은 이전 방식과 차이가 없었다. 200장 정도의 제안서 작성도 어렵지 않았다. 여러 번 과제를 준비하면서 기운은 빠졌지만 제안서 작성 훈련은 정말 잘했다. 분량으로 따지면 1000페이지가 넘었고 발표자료는 350장 정도 만들었다. 심사위원을 설득하는 법을 배우진 못했지만 빠르고 효과적으로 제안서를 작성하는 방법과 그럴싸하게 파워포인트를 치장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각자에게 달린 문제이긴 하지만 실패에서도 배우는 게 있다. 실패에서 좌절과 다음 시도를 위한 성장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건 당사자가 결정할 일이다. 나는 좌절을 선택했고 성장을 위한 방법도 몰랐지만 정부과제를 여러 번 시도하면서 노련함은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