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정부과제 책임자라고요?
환골탈태
환골탈태[換骨奪胎] 뼈대를 고쳐서 행태를 바꾼다는 뜻으로 문장의 형식을 이전과 다르게 해서 개선한다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제안서의 구성과 내용을 모두 바꾸었다. 제안서는 일기가 아니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하는 내용이 아닌 심사위원을 설득하는 문서이다. 심사위원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여줘야 한다. 심사위원의 심금을 울리수 있는 소설을 쓴다고 생각해도 좋다. 하나의 핵심 주제와 문장을 만들고 그 주제를 뒤받침 하는 소주제로 내용을 구성하면 된다. 소주제도 핵심 주제와 연관이 되어야 한다. 제안서를 다 읽고 나면 핵심 주제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게 한다. 이와 관련해서 나중에 또 설명하겠다.
연습생
제안서는 통과되었다. 충실하게 제안서의 내용을 채우면 서류 정형에서 탈락하지 않는다. 탈락한다면 지원하는 업체의 자격이 문제일 경우가 있다. 원하는 과제를 지원하기 전에 자격 조건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시간 낭비를 안 하는 필수 확인 사항이다. 회사의 나이, 연구소 보유 유무, 재무 상태를 꼭 확인하자. 발표자료를 만들고 발표 연습을 매일 2번 이상했다. 다행히 참여 연구소의 연구원은 과제 수행 경험도 많고 발표의 달인이었다. 특훈을 받았다. 파워포인트를 고치고, 또 고치고 발표 연습, 연습을 반복, 또 반복했다. 1년 정도 연습해서 제대로 된 무대에 오르는 초보 정부과제 연습생이었다.
발표장에 서다
발표날이 밝았다. 전날에 푹 잤다. 눈을 감고도 발표 자료의 모든 내용을 외울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남 앞에 서는걸 정말 싫어한다. 무대 공포증도 있고 얼굴도 쉽게 붉어진다. 떨리는 감정을 최대한 숨기고 무대에 나갔다. 외롭고 힘든 순간이었다. 발표와 질문을 대부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대다수의 심사위원은 제안 내용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들을 이해시켜야 한다. 전략은 반복, 설득이다. 이 바닥은 심하게 좁다. 이름 있는 연구소, 기업과 과제를 함께 지원하면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다. 심사위원 중에 적군도 있고 우군도 있다. 특히 적군을 공략해야 한다. 무대의 분위기를 장악해야 한다. 심사위원 한 명씩 눈을 마주치고 그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야 한다. 정말 빠르게 시간이 지났다. 발표 시간을 순간순간 확인해야 한다. 연습 때 보다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발표가 끝나고 얼굴은 붉게 상기되었고 목소리는 떨렸지만 박수를 받았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결과 통보 이메일을 받다
과제 지원 결과를 확인하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정부과제 당락 여부는 과제 관리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하다. 발표하는 그 순간 5분 정도 지나고 결과를 알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 순간 확신 같은 게 갑자기 나타났다. "정부과제 지원 대상입니다". 이 말을 듣기 위해 보낸 시간과 노력을 보상받기는 커녕 또 다른 난관이 펼쳐졌다. 안 가본 길을 가야 했다. 나도 이번 생은 정부과제 책임자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