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입맛이 이렇게나 다른 거였군요
캐나다 스타벅스에 와서 처음 일하면서 가장 놀랐던 건 캐나다 사람들의 음료 취향이었다. 한국과는 주문의 형태도 너무 달랐고, 특히 개개인의 커스터마이징 범위가 정말 넓고 다양했다. 어떻게 자신의 커피 취향을 이렇게나 잘 알까, 신기하기도 했다.
놀라기도 했지만, 일할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도 이런 사람들의 취향과 관련한 것이었다. 아메리카노나 카페 라떼 같은 것은 같은 영어기 때문에 주문을 알아듣기 어렵지 않았는데, 가끔씩 듣도 보도 못한 주문이 들어왔다. 그런데 이제 나 빼고 다 아는..!
미스토(Misto)
그런 메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미스토(Misto)'라고 불리는 것이다. 미스토는 커피와 우유를 1:1 정도로 섞어서 만드는 메뉴다.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가득 채우는 카페라떼보다 물의 비율이 더 높아서 색깔도 라테만큼 연하지 않고 좀 더 묽고 진하다.
드립 커피에 우유를 넣으면 '커피 미스토'가 되고, 에스프레소를 미스토로 만들면 '아메리카노 미스토'가 된다.
처음에는 이 밍밍한 걸 왜 먹지?라고 생각했다. 무지방 우유처럼 묽은, 아메리카노처럼 팍 쓰지도 않고 라떼처럼 고소하지도 않은 이걸 왜들 그리 많이 시키는 건지 의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나도 미스토를 종종 마시게 되었는데, 아얘 물을 베이스로 만든 커피는 안 먹고 싶은데 우유 음료를 마시기엔 너무 배부를 때 가볍게 마시기 좋았다.
브루잉 커피(Brewing Coffee)
캐나다 스타벅스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음료를 꼽자면 브루잉 커피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오늘의 커피'라는 이름으로 드립 커피를 판매하고 있긴 하지만 아는 사람만 찾는, 잘 나가지 않는 메뉴 중 하나다. 미리 브루잉해놨다가 폐기하기 일쑤라서 한국 스타벅스에서는 최소한의 배치만을 브루잉 해놓거나, 주문이 들어올 때 내리기 시작하곤 한다.
그런데 캐나다 사람들은 열에 셋 이상, 혹은 그보다 더 많은 경우로 드립 커피를 주문한다.
그 이유를 여러 가지 생각해봤는데, 그중 하나는 아무래도 캐나다 스타벅스에 방문하는 손님의 범위가 더 넓어서인 것도 있을 것이다. 톨 사이즈 드립 커피가 세금 포함해서 투니(Toonie, 캐나다 2달러 동전을 부르는 말) 하나로 해결되기 때문에, 근처를 배회하는 홈리스(노숙자)가 와서 동전 하나 내고 사가는 경우도 있었다.
또 다른 이유는 캐나다가 우리나라보다 가정에서 커피를 내려 먹는 경우가 많아서인 것 같다. 집에서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쓰는 사람보다 프렌치프레스나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서, 스타벅스에서도 자신이 평소 마시는 것과 비슷한 걸 주문하는 게 아닐까 싶은.
무슨 이유이든 간에 사람들이 드립 커피를 굉장히 많이 찾기 때문에, 캐나다 스타벅스는 드립 커피도 세 종류가 있다. 다크 로스트, 미디엄 로스트, 블론드 로스트. 그런데 한국에서도 산미 높은 원두가 호불호가 갈리 듯이 캐나다에서도 다크와 미디엄 로스트가 가장 잘 나간다. 블론드는 엄청 피크 타임에도 하프 배치* 이상으로 내려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배치 브루잉을 할 때 내리는 원두의 양. 일반적으로 풀 배치, 하프 배치(1/2), 쿼터 배치(1/4)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킨 음료를 대부분 주는 그대로 먹는다. 그런데 캐나다 사람들, 그중에서도 드립 커피를 시키는 사람들의 8할은 설탕과 우유로 자신만의 취향에 맞는 음료를 만들어 마신다.
캐나다는 셀프바에도 굉장히 다양한 옵션이 있는데, 일단 우유 종류가 여러 가지다. 일반 우유와 두유를 비치해놓고 수시로 모자라지 않은지 체크해서 바꿔준다. 파트너에게 따로 요구하면 저지방이나 무지방 우유도 제공한다.
감미료도 종류가 무려 네 가지가 있다. 로우 슈가, 흰 설탕, 스플렌다(설탕 대체제), sweet n low(사카린으로 만든 인공 감미료)가 셀프바에 비치돼있고, 꿀도 준비돼있다. 음료 위에 뿌리는 파우더 종류도 우리나라보다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취향을 고려한 옵션을 보면서 이것이 스타벅스가 진정 추구하는 가치라고 생각했다. 비건이나 유당불내증인 사람들을 고려한 옵션, 단 건 먹고 싶지만 당이 없는 감미료를 찾는 사람 등.
내가 스타벅스에서 일하고 싶던 가장 큰 이유도 이렇게 '개인의 취향'을 잘 맞춰줄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스타벅스 캐나다는 정말 그 가치를 실현하고 있었다.
차이 티 라떼(Chai Tea Latte)
차이 티 라떼는 우리나라 스타벅스에도 있는 메뉴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인들에게 호불호가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시럽을 뜯어놓고 한 잔도 팔지 못한 채 폐기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맛을 묘사하자면 치과 맛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데 은근 매력이 있다. 공감을 받기는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캐나다 사람들에게 차이 티 라떼는 꽤나 인기 메뉴다. 그리고 그걸 주문하는 사람들의 취향도 제각각이다. 차이 티 라떼의 원래 레시피는 미스토 같이 차이 시럽에 뜨거운 물을 반 붓고, 스팀 우유를 반 채우는 방식이다. 그런데 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No water(물 빼고)로 시키기도 하고, 우유를 non-fat(무지방)이나 soy(두유)로 바꾸기도 한다.
기억나는 손님 중 스테파니라는 사람이 있는데 처음에 이 분을 마주했을 때 너무 차갑고, '내 주문을 또 새로 인식시켜줘야 해? 하 귀찮아.' 하는 느낌이 강해서 한 번에 제대로 알아듣기 위해 애썼던 기억이 있다.
이 분은 항상 출근과 점심시간에 와서 Grande Non-fat No water No foam Chai Tea Latte를 시켰다.
해석하자면 그란데 사이즈, 무지방 우유, 물 없이 (스팀우유에) 폼 없는 차이 티 라떼다. 이런 식으로 자신만의 복잡한 단골 메뉴가 있는 손님들이 많았다.
한가한 해피아워
요즘은 모르겠지만, 내가 대학교 다닐 땐 스타벅스에서 일 년에 한두 번씩 해피아워 이벤트를 했다. 일정 기간 동안 하루 두 시간 프라푸치노를 반 값에 파는 행사였는데, 매장 바깥까지 길게 줄이 늘어졌던 기억이 난다.
캐나다 스타벅스도 해피아워 행사를 한다. 그런데 시간이 2시에서 7시까지 5시간으로 굉장히 길다! 처음 해피아워 행사를 한다고 했을 때 한국 스타벅스를 생각하며 '아, 이 날 죽었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행사를 하는데 딱히 손님 수에 변화가 없었다. 간혹 청소년 손님들이 와서 프라푸치노를 사 가긴 했지만 평소보다 살짝 더 바쁜 정도였다. 한국인 손님들이 가장 발 빠르게 와서 프라푸치노를 사 갔다.
그만큼 캐나다 사람들이 프라푸치노를 시키는 빈도가 낮다. 그리고 시키더라도 휘핑크림을 빼고 시키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 캐나다에 갔을 당시 나는 프라푸치노 같이 얼음 갈린 음료를 좋아했다. 아이스 음료는 얼음 빼면 한입거리라 감질나고, 얼음과 같이 갈린 음료를 씹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아주 가득 단 맛이 좋기도 했고 말이다.
우리나라는 휘핑크림도 더 많이, 진짜 많이 주세요! 하고 탑처럼 쌓인 휘핑크림을 보며 파트너에게 고백받았다고 하는데, 여기는 휘핑크림을 light(살짝)하게 달라고 하거나 No whip(휘핑 빼고)이 굉장히 많아서 정말 다름을 많이 느꼈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몸으로 직접 차이를 느끼며 자주 놀랐던 것 같다.
반대로 내가 파트너 음료로 주문하는 것들을 보며 내 동료들이 놀라기도 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먹냐며.
프라푸치노를 많이 시키지 않듯이 캐나다에서는 여름에도 찬 음료를 시키는 비율이 굉장히 낮았다. 우리나라의 얼죽아와 반대로 더죽뜨(더워 죽어도 뜨거운 음료)인 사람들이 훨씬 많았던 듯하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뜨거운 드립 커피는 항상 가장 잘 나가는 음료다.
고작 바다 하나 건너왔다고 사람들 입맛이 이렇게나 다른 게 너무 흥미로웠다. 그리고 나도 캐나다에서 사람들이 많이 시키는 음료를 따라서 시켜보다 보니 입맛이 조금씩 바뀌기도 했다.
이런 걸 보면 취향은 학습되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