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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호 Sep 07. 2022

<종의 기원>

Charles Robert Darwin

<종의 기원> 찰스 다윈 지음, 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나는 진화론을 어느 과학 만화에서 처음 접했다. 그리고 당시의 나는 진화론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느꼈다. 아마 종교적 신념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생물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된 이후에도 진화론에 대해서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진화론이 결론적으로는 거짓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화론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에서도 생물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나는 진화론과 마주해야만 했다. 여전히 진화론 자체에 대한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생물학 교수님께서 기말고사 직전에 해주신 이야기 때문에 진화론에 대한 인식이 조금 달라지게 되었다. 교수님께서는 진화론은 현대 생물학의 근간을 이루는 이론이고, 과학적으로 명백한 참이라고 하셨다. 나는 진화론이 왜 과학적으로 참인지에 대한 근거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론이 현대 생물학의 근간을 이룬다 보기에는 내가 배운 생물학의 전체 내용에서 다루어지는 비중이 너무 작았고, 다른 이론들처럼 정교하고 체계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단순할 정도로 쉬운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 이론이 왜 생물학의 근간을 이루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전, 신기관이라는 책을 읽음으로써 베이컨의 귀납법과 사고방식이 생물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종의 기원에서 그것이 어떻게 드러났는지도 궁금하였다.
  다윈이 살고 있던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는, 수많은 동식물들을 매우 독특한 형태나 기능을 가지도록 변화시키는 게 유행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지질학자와 박물학자들은 종들이 제각기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했다. 나는 다윈이 이 두 사실이 가지는 모순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도입부에 인간의 의한 동식물의 형질 변화 과정을 넣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즉, 다윈은 인간이 기르는 동식물들의 형질이 변화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데, 왜 종들은 자연선택의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 이후 다윈은 자연선택과 그에 따른 생물 계통의 변화, 현대에는 진화론이라 불리는 이론을 제시한다. 이때 자연선택 이론을 비롯한 다윈의 여러 이론들은 일반생물학을 공부해보았거나, 아니면 고등학교에서 생물학을 집중적으로 배웠다면 대부분 이미 익숙한 이론들이다. 하지만  다윈은 이 간단한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서 수많은 학자들로부터 전해받은 정보를 인용하고, 자신이 직접 수행한 수많은 실험들을 제시한다. 독자는 다윈이 왜 앞서 충분히 설명된 이론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주장을 되풀이하며 여러 근거들을 제시하고, 반복해나가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다윈은 반드시 자신의 이론이 옳다는 근거들을 수없이 제시해야만 했다. 다윈이 책의 말미에서 말하길, 당시 대다수의 지질학자, 박물학자들은 자연선택이론을 거부하였고, 창조론에 따른 독립적 종의 탄생을 지지하였다. 그리고 그 생각은 당시 학계의 주류였다. 다윈의 이론은 비주류 학문이었기 때문에, 자연선택이 맞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근거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심지어 다윈은 책을 쓸 당시에 런던이 아닌, 영국의 시골에서 생활하였다. 이는 학문을 전개해나가는데 필요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뿐 아니라, 학계에서 자신의 위치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간단한 내용이다. 그리고 다윈은 수많은 근거들을 반복하여 제시하지만, 동시에 유려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간다. 예를 들면, 변종과 종의 차이가 왜 학계에서 제대로 설명되기 어려운지에 대해서 한 장의 절반 가까이 설명을 하고, 그 이후 앞서 제시한 문제점들을 일으킨 원인을 통해서 자신이 주장하는 자연선택 이론이 필연적으로 맞다는 것을 유기적으로 설명한다.
  다윈은 6장부터 자신의 자연선택 이론에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점과 그에 대한 반박들을 이야기한다. 6장 이후부터는 사실상 이 내용이 책의 주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도 될 정도다. 이 부분에는 현대인들마저 진화론에 대한 반박 근거라고 오해하고 있는 내용들이 제시된다. 그것들은 과거 지질 시대에서 나타나는 종들 사이의 불연속성, 본능과 잡종에 대한 문제, 너무나 정교한 기관과 이와 정 반대인 흔적 기관의 문제 등이다. 내가 볼 때 다윈은 이 문제들에 대해서 굉장히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반박했다고 생각한다.
  각 문제들에 대해서 엄청나게 자세한 설명과 예시들이 책에 담겨 있지만, 그중 하나에 대해서 간단하게 요약하여 제시해 보고자 한다. 지질 시대에서 나타나는 종들 사이의 불연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다윈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지질 시대 기록의 불완전성을 제시한다. 그런데 주목할만한 점은 바로 다윈이 불완전성의 근거를 어떻게 제시하느냐다. 다윈은 분명 조사 기술이 제대로 발전하지 않아서, 혹은 현재 조사한 지질 영역이 너무나 작아서 등을 불완전성의 근거들로 제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근거로 삼기에 조금 꺼림칙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근거들은 막연히 미래 기술의 진보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래에 기술이 어떻게든 진보하면 연속적인 종의 변화를 나타내는 화석들이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을 내포하고 있고, 이 주장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결국 기술이 충분히 진보했을 때에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윈은 이런 기술적인 문제점들을 언급하기는 하나, 다윈이 더욱 강조한 것은 ‘당대’에 조사된 화석 기록들만으로도 지질학적 조사는 불완전하고, 미래에도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가 보인 근거 중 하나는, 종들이 변종 상태로 나아갈 때 그 변종들은 상당히 제한된 지역에 서식하다가 충분히 변화된 이후 확산되어 새로운 종으로 분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들의 연속적인 변화는 쉽게 관찰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또한, 실질적으로 화석이 생성되는 때는 지각이 침강할 때이므로, 그는 화석이 생성되는 시기 자체가 불연속적이기에, 지질학적 기록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다윈은 이 외에도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반박을 잘 해냈다. 다만, 다윈 자신이 털어놓았듯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 논리적으로 합당한 설명을 하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11장과 12장에서 나온 생물의 지질학적 분포에 대한 설명은 현대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 참이 아님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윈은 당대 학자들의 생각처럼 지각과 해양의 분포가 불변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윈이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도 제시한 논증 대부분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며, 이에 대한 충분한 근거들도 보였다. 물론 다윈은 이 장들에서도 자연선택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장의 말미에 다윈은 대륙이 움직였다는 가능성을 한두 문장 정도로 살짝 제시하였는데, 이는 내가 책을 읽으면서 다윈의 통찰력에 놀란 여러 부분 중 하나이다. 실제로 판 구조론이 학계의 주류가 되어 제대로 정립되었던 시기가 20세기임을 생각해 보면 논리적 사고가 과학적 추론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에서 다윈의 창조론에 대한 시각을 볼 수 있었다. 다윈은 케임브리지 신학교를 졸업하였음에도, 창조론에 따른 종들의 기원에 대한 이론을 극도로 거부했다. 이 생각은 책의 많은 부분에서 드러나는데 특히 마지막 장에서는 거의 2쪽을 넘기는 도중에 1번 꼴로 창조론의 설명을 거부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다윈은 책의 말미에 최초의 생명체가 창조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언급함으로써 창조론이 설 자리를 조금 남겨두었다. 그러나, 다윈이 최초의 생명체는 창조되었을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한 것 까지는 아니다. 다윈은 종들이 독립적으로 창조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왔다는 시각을 명백히 거부하였다. 다만, 신학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종들이 독립적으로 창조된 것보다 최초의 생명체가 창조되어 그것이 현대에 수많은 종으로 분화되어 온 모습이 신학적으로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다윈은 왜 최초의 생명체가 창조되었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 원인이 다윈이 최초에 생명체에 대해 설명할 자료가 부족해서였는지, 아니면 이미 창조론과 신을 마음속으로는 거부하였지만 시대상 때문에 창조론에 대해 일부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다윈이 끝내 신앙을 잃은 모습을 보면,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놀랍게도 최초의 생명체의 기원은 아직까지도 미스터리이다. 비록 원시 지구의 모습을 재연한 실험을 통해 최초의 생명체가 어떤 형태였을 것이라는 추정은 하였지만, 최초의 생명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탄생되었는지는 현대과학마저도 정확히 알아낼 수 없었고, 앞으로도 알아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왜 진화론이 현대 생물학의 근간인지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진화론은 생물학 내의 다소 단순하고 쉬운 이론이 아니라, 수많은 근거와 예시들에 의해 뒷받침되는 타당한 이론이다. 그리고 진화론은 동시에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들이 어떻게 탄생하였고, 변화해왔는지를 합리적으로 설명한다. 게다가 진화론을 통해서는 앞으로 생물계가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도 예측할 수 있다. 즉, 진화론은 모든 생물들의 과거, 현재, 미래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다. 따라서 진화론은 현대 생물학의 근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다윈이 수많은 예시들을 수집하여 비교, 분석하는 과정은 베이컨이 <신기관>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모습과 매우 닮아 있었다. 다윈은 귀납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책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다윈이 수많은 자료들을 수집해 타당한 명제를 보이는 과정을 통해 그가 베이컨의 귀납법을 사용하면서 탐구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또한 다윈이 베이컨이 이야기한 우상들에서 탈피해서 탐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베이컨의 탐구 방법론이 생물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체감하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들이 두 가지 중 하나는 반드시 챙겨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진화론에 대한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긴 문장도 술술 읽을 수 있는 독해력이다. 이 책은 원전 번역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다윈의 길고 장황한 문장들이 대부분 그대로 번역되어 있다. 이런 문장들을 읽다 보면 지금 내가 어떤 주제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는지 쉽게 놓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어도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생물학의 진화론 정도만 알고 있어도, 다윈이 결국 자연선택 이론의 어떤 부분을 설명하려 하는가, 혹은 자연선택 이론에 제기된 여러 반박들 중 어떤 걸 다루려 하는가 정도는 머릿속으로 되뇌며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러면 잠시 문장 속에서 길을 잃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또는 긴 문장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이해력을 가졌다면,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매우 흥미로운 생물학 책이 될 것이다. 다윈은 비록 문장들을 길게 늘여 써놓았으나, 그가 주장하는 이론들과 근거의 관계는 합리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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