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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Jul 21. 2022

자작나무. 하얀 아름다움과 기억

여행 정보 없는 여행 책 4

모든 걸 다 주고 떠나는 명태의 또 다른 형태인 황태로 만든 강원도 토속음식 황태 구이를 맛나게 먹고 몸의 에너지를 가득 채웠다. 몸을 채웠으니 이제는 마음을 채울 차례렷다. 짝꿍과 나는 타박타박 한 걸음씩 인제 자작나무 숲을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왜 이렇게 설레는지. 같이 손을 잡고 걷는 짝꿍 때문인지, 보고 싶던 자작나무를 찾아가고 있기 때문인지, 그곳에서 만나야 할 누군가가 나 몰래 기다리고 있는 건지. 아마도 나의 내면에 있던 무언가가 또다시 기억 저편 무의식의 틀 속에 갇혀 있다가 기지개를 켜며 '나 여기 있어. 나 기억나지? 잘 지냈지?'라고 말하며 툭 튀어나오려나 보다.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 튀어나올까 봐 내심 걱정도 된다. 기억의 마지막에 '그래. 반가워. 오랜만이네. 나 괜찮지?'라고 해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설렘과 걱정과 기대를 쿵쾅거리는 심장이 아니라 나를 자작나무 숲으로 인도해줄 내 두 다리에 꽉 묶었다.  


자작나무를 처음 본 건 일요일 아침마다 나를 깨워 텔레비전 앞에 앉혔던 앤 셜리가 주인공인 '빨간 머리 앤' 애니메이션에서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 머리 앤, 수다쟁이 앤, 엉뚱한 앤, 만날 혼나면서도 금세 밝아지는 앤. 그리고 앤은 다이애나의 절친이고, 자작나무 숲을 좋아하고, 글 쓰기를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앤을 떠올리면 내가 앤을 좋아했을 거라고 다들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때 난 앤 보다 다이애나를 더 좋아했다. 좋아했다는 말보다는 동경했다는 말이 더 맞는 듯하다. 


다이애나는 앤과 달랐다. 통통한 볼과 까만 머리, 귀엽게 양쪽으로 땋은 머리를 둥글게 말아 커다란 빨간 리본으로 장식을 하고, 하얀 앞치마가 달리고 어깨가 볼록한 노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부드럽고 상냥한 말투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이애나와 앤이 숲 속에서 예쁜 초콜릿을 먹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 그 초콜릿은 내 눈에 반짝반짝 보석같이 보였다. 그 반짝이는 보석 같은 이미지가 내가 느낀 다이애나였다. 예쁜 외모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좋아하고 보는 순간 웃음이 번지는, 사랑받고 자란 아이의 안정된 이미지. 내가 동경했던 다이애나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 어른이 된 후 다시 보기를 통해 봤던 빨간 머리 앤에서는 다이애나 어머니의 이미지도 조금 다르게 느껴지긴 하였으나 그 당시에는 다이애나를 늘 부드럽고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 너무나 좋아보였고 부러웠고 동경했었다. 나도 저렇게 교양있는 말투로 대화하고 저렇게 사랑스런 눈빛을 받으며 자랐으면, 진짜 다이애나 어머니가 내 어머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였다. 앤이 다이애나를 부러워하듯 나도 다이애나를 부러워했다. 앤이 다이애나처럼 살길 바랬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자라고 싶었다.


나는 처음 빨간 머리 앤에서 자작나무를 봤을 때 믿지 않았다. 그냥 사람들이 상상하며 그려 놓은 예쁜 나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차장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속에 하얀색 나무가 보였다. 듬성듬성 서 있던 나무라서 하얀색 나무는 금세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우습게도 처음에 난 자작나무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 산 나무들이 단체로 전염병이라도 걸렸나? 왜 다들 하얀 거지?'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텔레비전에서 자작나무를 만나게 된 건 김희애와 최수종 주연의 종말이라는 인기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홍도야 우지 마라~'라는 옛 노래를 다시 유행하게 만든 백일섭이 나오는 '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에서였다. 


극 중 귀남이가 좋아한 미연이라는 여자 친구가 있는데 이 미연이의 집 정원에 자작나무가 있었던 것이다. 미연이와 함께 살던 이모가 정원에서 연인을 그리워하는 애잔한 분위기로 자작나무를 태우며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내서 자작나무야.'라는 말을 하는데 그때 나는 그 하얀 나무가 실제로 있는 자작나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궁금한 것은 꼭 찾아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단숨에 자작나무에 대해 알아보았다.  자작나무는 참나무목 자작나무과의 식물로 세모에 가까운 끝이 뾰족한 나뭇잎이 있는데 이 잎은 겨울이 되면 진다고 한다. 자작나무의 껍질은 종이 같은 느낌이라서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껍질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썼다고 한다. 그리고 결혼식날 화촉을 밝힐 때에도 쓰였다고 한다. 연결해 보면 사랑하는 연인이 연서를 써 마음을 나누고 마침내 화촉을 밝히는 전 과정에 자작나무는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모습만큼이나 쓰임도 아름다운 나무라는 생각이 든다. 


자작나무 숲에 한 걸음씩 가까워질수록 잔잔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하얀 나무의 무리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뽀얀 안개가 낀 것처럼. 군무를 즐기는 통에 고운 흙이 살짝 날리는 것처럼. 더 가까이 가자 곧게 하늘로 자란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하얀 나무 기둥, 사람의 눈처럼 보이는 세모 무늬 사이로 쭉 뻗은 가지, 색종이처럼 팔랑이는 나뭇잎이 하나하나 눈에 박혔다. 그 황홀함에 시선을 둔 채 자작나무 숲 길 사이로 한 발 한 발 들어갔다. 마치 숲의 전령들의 파티에 뒤늦게 참석한 손님처럼 조심스럽게 그러나 아주 강렬한 기쁨을 가지고. 가만히 자작나무에 손을 올려보았다. 10월의 찬 바람 속에서도 살짝궁 따뜻함이 그리고 촉촉한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또한 그 단단함도 함께 손바닥을 거쳐 마음에 들어왔다. 자작나무 기둥에 올려진 내 손을 시작으로 시선을 위로 위로 올려보았다. 자작나무의 잎이 팔랑이며 색종이 꽃이 터졌다. 순간 나는 앤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보기를 통해 만난 앤은 분명 어린 시절 내가 일요일 아침마다 만나던 앤이 아니었다. 외롭고 불행한 시간들로 인해 무너질 것 같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상상 속 친구를 만들었고, 그 상상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프게 다가왔다. 앤은 나랑 참 많이 닮아있었다. 슬픔을 빨리 잊는 것만 빼고. 이런 앤에게 자작나무는 슬픔을 잊고 외로움도 접고 그저 다이애나와 같은 또래의 아이로 잠시 돌아가는 그런 시공간을 마련해 주는 진정한 숲이 전령이었다. 


그날 난 자작나무 숲에서 분명 어린 앤은 아니었다. 다 자라 주일학교 교사로 초록지붕 집으로 다시 돌아온 앤이었던 것 같다. 자작나무 숲의 말없는 따뜻한 위로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참 이상하다. 생각만 하던 곳, 처음으로 가 본 곳에서 마치 다시 돌아온 듯한 느낌을 가지다니 그리고 위로를 받다니. 기억은 너무나 주관적인 것이라 종잡을 수 없지만 나의 무의식은 실제 공간이 아닌 기억 속의 공간을 더 친숙하게 느낀다는 것이 곱씹어 생각해 보아도 희한한 일이다. 그만큼 과거의 실제 시공간으로는 아마도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이건 어린 시절 기억에 대한 슬픔일까? 아님 지금에 대한 행복일까?


자작나무들이 세모난 연둣빛 색종이 잎을 팔랑이며 나에게 인사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 여기 있어.  나 기억나지? 잘 지냈지?'


그리고 반갑게 내가 답했다.

'그래. 반가워. 오랜만이네.'

'나 다이애나는 못 됐어. 대신에 다이애나 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있는 중이야.'

'나 괜찮지?'



 


#인제 #강원도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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