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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Jul 26. 2022

솟대. 내 마음의 점선

여행 정보 없는 여행 책 5

기억 저편에 콕 박혀 있던, 그렇게 보고 싶던 자작나무를 만나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받고, 한결 기쁘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다시 자작나무 숲을 빠져나왔다. 자작나무 숲을 거꾸로 걸어 나와 입구에 있는 솟대를 마주했다. 사실 자작나무를 보러 가는 길에 솟대를 이미 만났었는데 자작나무를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급해 '조금 있다가 만나.'라고 짧은 인사를 하고 남겨두었던 녀석이다. 


나는 솟대를 참 좋아한다. 솟대가 풍년을 기원하거나 마을의 복을 빌거나 개인의 영달을 위한 여러 가지의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지만 나는 '신성불가침', 이 의미를 가장 좋아한다. 솟대는 삼한시대 때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 '소도'에서 제사를 지낼 때 세우던 높은 나무였다고 한다. 이 소도는 신성한 지역으로 국법의 힘이 미치지 못하였고 정치적 군장의 세력 또한 미치지 못하였으며 제사에 참석하는 자는 죄인이라 하더라도 처벌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소도도 사라지고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도 사라졌지만 솟대는 우리 곁에 남아 마을의 수호신이자 사람들의 소망을 하늘에 전달하는 전령이 되었다. '소도'란 말 자체가 솟대에서 비롯되었다는 썰이 있으며 그래서 솟대가 있는 지역은 신성불가침의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학교 근처에 '솟대 마실'이라는 술집이 있었다. 평소에도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듯 자주 들렀던 곳인데 시험 기간이면 또 얼마나 더 가고 싶던지. 시험기간에 솟대 마실을 갈 때면 늘 '여긴 신성불가침 한 공간이라고. 모든 것으로부터 난 자유롭고 또 보호받고 있다고.'를 외치며 시험 따위로부터 나를 분리하리라 굳게 다짐했던 곳이다. 마음이 조급해지던 시험공부로부터의 도피였을까. 아님 친구들과 다르게 텅 빈 나의 시험지의 결과에 대한 판단을 유예하고 싶었던 걸까. 뭐 아무튼 그때는 술맛을 아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어울려 다니며 솟대 마실을 찾고 술을 마셔댔다. 친구들과 함께. 아마 술맛은 잘 몰랐지만 친구들의 좋음은 알고 있었나 보다. 


솟대는 기다란 장대 위에 투박하게 생긴 새가 앉아 있다. 꼭 어린아이가 열심히 그러나 아무렇게나 그린 듯한 크레파스 그림 같은 느낌. 그래서 더 정감 있고 따뜻한 느낌. 솟대를 볼 때마다 나무와 새가 있구나라고 생각은 하지만 무심히 지나쳤었는데 얼마 전 그 새도 지역마다 목적에 따라 다른 새가 올라앉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통 오리, 기러기, 갈매기, 따오기, 왜가리, 까치, 까마귀, 문과 장원 기념 솟대는 학, 무과 장원 기원 솟대는 봉황을 조각하여 올린다고 한다. 뭐 다 의미가 이해가 되었는데 '오리'는 좀 의외였다. 내 기억 속에 오리라 하면 꽥꽥 울고 뒤뚱거리며 넙적한 부리에 도널드 덕이 떠오르는 어딘지 모르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상된다. 그런 오리가 솟대 위에 앉아 있다니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번뜩 스친다. 


그러나 예로부터 오리란 하늘, 땅, 물의 3계를 넘나드는 동물이라 종교적, 우주적 존재로 인식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리는 철새라서 계절에 따라 이동을 하는데 이동을 할 때마다 옛사람들은 이승과 저승을 오간다고 믿었기 때문에 영적인 존재로도 인식되었다고 한다. 특히 오리는 잠수가 가능한 물새로 홍수가 나도 살아남는 불사조로 생각하였으며 비와 천둥을 관장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농경사회였던 시대에는 단연코 영물로서의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음에 수긍이 되었다. 이런 오리를 몰라보고 솟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다니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낄 수 있다는 말이 맞음을 또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솟대를 처음 알게 된 건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기억이 흐릿하지만 어느 역사시간이었다. 그때 나에게 솟대는 '제사', '신성불가침'으로 기억에 남았다. 지겨운 수업 시간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그렇다면 죄인이 숨어든다면? 지금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과 같이 부당한 방탄조끼처럼 느껴져 문제가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시절 나는 그보다는 '숨 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한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그 시절 죄인이었을까? 이런저런 고민이 많던 시절. 특별한 죄를 지은 죄인이라기보다는 과거는 화나고 현재는 짜증 나며 미래는 불안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도시에 살던 내 주변에 솟대가 있지도 않았고 솟대가 있다고 한들 뭐 날 지켜줄 것도 아니지만 그저 솟대를 떠올리면 내가 있는 공간이 소도가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고요하고 잔잔한 것이 마음의 소용돌이가 잠시나마 멈추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 유치하게 책상에 선을 그어 내 영역임을 선포하고 선을 넘어오는 물건은 모두 내 거라고 배타적인 행동을 취하던 것처럼 내 마음속에 솟대를 세우면 그곳은 나만의 영역이 되었다. 나만의 영역에서 현실의 영역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것이 꼭 철마다 돌아오는 오리와 닮은 듯하다. 그렇게 솟대는 내 마음의 점선이 되었다.  


며칠 전 나의 집에서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함께 한 친구들이 모였다. 내 마음에 솟대를 세우고 나는 친구들과 떠들며 맛도 모르는 술을 마시던 나만의 소도로, 그 시간으로 들어간다. 스무 살. 솟대 마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라면 술맛을 좀 안다는 것. 쓰다가도 달고 향기롭다는 것.


친구들이 돌아가고 나는 내 집 현관 입구에 놓인 미니미 솟대에게 살짝 전했다.

'우린 여전히 신성불가침한 곳에서 술을 마시고 지난날을 떠들어 댔어.'


좋다. 



#인제 #강원도 #솟대 #자작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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