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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Mar 08. 2023

바로 서기와 숨쉬기

70대까지 40대의 몸으로 살길 바라는 아줌마의 필라테스 이야기 6

벽에 등을 대고 바르게 서 보라는 선생님의 지시에 나는 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성큼성큼 씩씩하고 자신 있게 모델처럼 워킹을 하며 벽까지 가고 싶었다. 워킹의 기본은 자신감이 아니던가. 특히나 오늘은 몸매 보정 확실한 레깅스를 입었으니까 조금만 뻔뻔하면 이 몸이 원래 내 몸이다~ 싶게 뽐내며 워킹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내 워킹은  주저주저 두리번두리번. 벽이란 걸 생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이게 벽이 맞나 헷갈리는 사람처럼 벽에 다가가고 있었다. 벽에 등을 붙이는 것쯤이야 하는 마음은 섬광처럼 번뜩였다가 어느새 잔상만 남기고 사라진 지 오래다.


나는 숨 막히는 이 긴장이 싫다. 유독 몸 쓰는 게 어려운 나는 몸으로 하는 모든 것에 긴장을 한다. 40년 보다 더 긴 시간을 움직임에 대한 긴장을 가지고 살았으니 이제는 이 긴장이 친구처럼 익숙할 만도 한데 절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운동을 안 하게 되고 더 못하게 되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는 고리 안에 갇힌 듯하다. 


벽에 선 나와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빛이 마주쳤다. 그리고 선생님의 아주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아님. 등이라 하면 경추부터 속옷 라인 까지를 말하는 거예요.

벽을 미는 것처럼 등을 벽에 붙여 보세요."

그렇다. 나는 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또한 바로 서 있는 것조차 안되다니. 등을 붙이고 턱을 당기고 시선은 살짝 위쪽으로. 내게 느껴지는 내 자세가 이상하다. 그런데 이게 바른 자세라고 한다. 헐... 이건 놀라움의 시작일 뿐이었다.


바른 자세 잡기가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필라테스 기본 동작을 배운다고 한다. 첫 번째는 호흡이었다. 아기처럼 복식호흡을 해 보라고 한다. 실제로 숨을 쉴 때 배까지 공기가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의식적으로 배와 가슴 모두를 부풀렸다가 조였다를 반복하는 거라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몸에 있는 일명 코르셋 근육을 발달시켜 라인을 잡는다고 한다. 코르셋 근육? 정녕 내 몸에 그런 것이 있다고? 모든 사람의 몸에는 코르셋이 있다고 한다.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코르셋은 이태리 장인은 아니더라도 누군가 만들어 놓은 걸 사서 입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내 몸 안에 있었다니. 내가 쓰지 않아 쓸모를 다 하지 못한 코르셋을 이제부터라도 내 몸에 떡 하니 장착을 해 보아야겠다. 복식호흡 몇 번에 진짜 내 코르셋을 장착하고 매끈한 몸매로 원피스를 입을 수 있을 것 같은 기쁨에 의욕이 불탄다. 복식호흡을 계속해 본다. 선생님이 그만하라고 한다. 너무 하면 과호흡이 와서 몸이 힘들어진다며.


과호흡이라... 피식 웃음이 난다. 과호흡의 부작용을 너무나 절박한 순간에 느껴본 터라. 때는 바야흐로 내년에 성인이 되는 현재 고3 딸을 낳던 날이었다. 배 속 아기가 힘들어한다며 간호사가 나에게 호흡을 많이 하라고 했다. 이미 진통이 12시간을 넘기고 있던 순간이라 지칠 때로 지쳤지만 아기가 힘들어한다는 말에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 내며 호흡을 시작했는데, 그날도 난 너무 의욕에 불탔다. 손발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간호사가 나에게 과호흡 왔다며 그만하라고 했다. 그날도 오늘처럼. 사람의 무의식이란 참 기묘하다. 그동안 생각도 안 나던 그 산부인과 그 분만실이 생뚱맞게 이 우아한 필라테스 시간에 떠오르다니. 


다시 정신을 차리고 선생님을 따라 누웠다가 엎드렸다가 다리를 들었다가 내렸다가 팔도 움직이고 목도 움직이고 열심히 따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이 한 마디를 했다.

"경아님. 왜 호흡 소리가 안 들리죠?"

아! 내가 운동할 때 답답했던 이유가 있었다. 결코 운동이 힘들어서 답답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호흡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어지는 선생님의 설명을 요약하면 호흡을 하지 않으면 몸이 아프다고 했다. 아프기만 하겠는가. 죽을 수도 있지. 호흡은 생명 연장의 기본이지 않던가. 나는 어쩌자고 그 기본 중에 기본인 호흡을 안 한 건지. 오랫동안 내 옆에 있던 긴장에 대한 반항으로 무호흡 버티기를 해왔던 것이다. 늘 알아차림은 생각지도 못한 찰나에 이루어진다. 


상담을 할 때 내담자들에게 '일상생활 속 숨구멍 하나는 있어야 해요.'라고 말했는데 정작 나는 숨도 안 쉬고 있었다. 나는 바로 서기도 안되고 숨쉬기도 안 되는 그런 기본 중에 기본도 안 되어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운동을 못하는 이유는 운동신경이 부족한 내 몸 때문이 아니라 움직임에 대한 불편함과 긴장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내 마음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 나이에 몸을 바꾸는 것보다는 마음을 바꾸는 것이 조금은 쉬울 것 같으니 말이다.


50분 수업이라고 했는데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났다. 점심시간을 막 지난 시간이라 다른 운동 스케줄이 없는 것도 이유였겠지만 그만큼 내가 지도하기 힘든 사람인가 보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수업이 끝날 때쯤 선생님이 드디어 물었다. 올 것이 왔다.


"경아님. 필라테스하는 이유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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