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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Feb 23. 2023

5분 만에 끝난 바디체크

70대까지 40대의 몸으로 살길 바라는 아줌마의 필라테스 이야기 5

정신을 집중한 것인지 아님 정신줄을 놓은 것인지 모르게 잠시 나만의 생각 속에서 거울 속 나를 대면하는 시간이 멈추었다. 내 옆에 선생님이 나란히 선 것이다. 이제 첫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순간이다. 거울을 통해 본 선생님의 몸은 발레리나처럼 마르지 않았다. 오히려 근육질로 보였는데 군살 없이 건강해 보였다. 순간 '내가 잘못 온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몸은 일명 S 라인에 야리야리한 몸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도 거울을 통해 나를 보았다. 빛의 속도로 내 몸을 스캔하는 선생님의 눈빛이 느껴졌다. 그리고 선생님은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동작을 시키기 시작했다. 바디체크가 시작된 것이다.


선생님이 요구한 동작은 별개 없었다. 바로 서기, 양팔 위로 뻗기, 몸통은 가만히 둔 채 양팔만 좌우로 움직이기, 허리를 숙여 손으로 바닥 짚기, 한 발로 서기. 몸 여기저기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생각과는 다르게 몸이 흔들리는 느낌은 있었지만 '이쯤이야 나도 하지. 할 만한데.'라는 생각이 순간 스쳤다. 바디체크를 한다 해서 괜히 긴장한 게 살짝 억울해지려 했다. 5분 정도의 아주 짧은 시간이 흐른 후 선생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뭐야? 벌써 체크를 다 한 거야? 너무 대충 아닌가?' 스멀스멀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거북목이네요. 컴퓨터 중에서도 노트북 많이 사용하시나 봐요. 그리고 어깨가 앞으로 휘어져 있어서 팔이 몸 통 옆이 아닌 앞쪽으로 해서 허벅지에 손바닥이 닿아 있어요. 평발은 아니지만 왼쪽 아치가 조금 무너져 있는데 이건 평소 왼쪽으로 힘이 쏠려 있기 때문이에요. 고개를 숙여 발 위치를 한 번 보세요. 왼발이 앞쪽으로 나와 있죠. 전체적으로 체형이 바르지 않아요. 그리고 척추가 곡선이어야 하는데 너무 평평해서 무리가 되고 있어요. 평소 허리가 많이 아플 것 같고 무릎도 한쪽이 더 불편할 것 같아요." 기억나는 건 여기까지이다. 더 깊이 있는 설명들이 들려왔는데 사실 전문적인 이야기라 다 기억하기 힘들었다. 선생님은 내가 오늘 처음으로 만난 사람인데 마치 그동안 내 생활과 몸의 움직임을 계속 봐왔던 사람 같았다. 겨우 5분 만에 끝난 내 바디체크는 선생님이 대충 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기본이 안되어 있어 다음 단계의 체크가 불가능 아니 불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실로 충격이었다.


상담실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에 대해 느껴지는 것이 있다. 첫인사를 하는 말투와 의자에 앉는 모습, 말에서 느껴지는 호흡소리와 말의 온도, 눈빛의 움직임, 표정마다 접혔다 펴지는 주름, 웃음의 어색함과 수줍음, 어쩔 줄 몰라하는 눈물. 상황마다 달라지는 사람의 행동과 감정들을 단번에 모두 알아차릴 수는 없지만 그 사람만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특질, 아주 고유한 특징과 감정의 사용 방법 등은 보일 때가 있다. 삶이 고스란히 몸에, 말에, 표정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생활 패턴이 나의 몸에 흔적을 남겼다. 나만 몰랐던 흔적. 이 흔적을 바로 잡아 나갈 수 있으려나 슬며시 걱정이 고개를 내민다. 그래서 전문가 선생님이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은 잠시 선생님께 맡겨 둔 채로 선생님의 전문성을 믿고 따라가 보아야겠다.


"경아님. 벽에 붙어서 바르게 서 보세요."

"네. 선생님."


속으로 생각했다. 

'내 체형이 비록 무너져있다 해도 벽에 붙어 서는 것쯤이야... 잘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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