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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Feb 21. 2023

내가 '경아님'이라고 불렸다.

70대까지 40대의 몸으로 살길 바라는 아줌마의 필라테스 이야기 3


아침이 분주하다. 오늘은 강의도 없고 상담도 없는 날인데 말이다. 내가 분주한건 필라테스를 가는 첫날이기 때문이다. 레깅스를 입고 갈까 들고 갈까 고민하다가 입고 가기로 했다. 레깅스 위에 체육복도 입었다. 물론 필라테스 센터 안에 탈의실이 있지만 그 힘든 레깅스를 입고 벗은 걸 누군가가 본다면 너무 민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필라테스를 갈 준비를 하는데 괜히 설렌다. 아마도 그건 돈 벌러 가는 것이 아니고 돈 쓰러 가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꿔 말하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쓰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신경을 쓰기 위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경 쓰기란 조금 더 좋은 다른 말로 바꾸면 '관심'이다. 남들은 나에게 관심을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지만 나만큼은 나에게 충분히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관심이다. 마르지 않는 우물같이. 그런데 우물이 너무 깊어 길어 올리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오늘은 내 관심을 길어 올려 나에게 뿌려보려 한다.


필라테스 센터는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운동도 할 겸 타박타박 걸어갔다. 그런데 필라테스 센터가 가까워 올수록 설렘이 긴장으로 바뀌고 있었다. 100점 만점에 33점. 이건 수학 점수가 아니다. 차라리 수학점수라면 절대로 전교 꼴찌는 하지 않았을 텐데. 이 점수는 중학교 2학년 때 받은 내 체육점수다. 그렇다. 그 시절 나는 전교에서 체육을 제일 못하는 아이였다. 이론 20, 실기 80인 체육에서 나는 이론시험으로 20점 만점을 받고 실기시험에서 준비동작과 착지자세에 배정된 13점 만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깎인 점수만큼 운동장 달리기 트랙을 오리걸음으로 돌았다. 몇 바퀴를 돌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친구들 중 내가 제일 많이 돌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운동을 못하는 것은 역사가 깊다. 초등학교 때부터였으니까. 남들 다 넘는 뜀틀도 못 넘고, 매트에서 앞구르기를 하며 늘 매트 밖으로 떨어지고, 발야구를 하면 늘 내가 찬 공은 파울이어서 아이들의 원성을 사곤 했다.


그 시절 나는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다. 어색하고 불편했다. 늘 눈치 보고 주눅 들어 있고 긴장되어 있어 손끝으로 톡 건드리면 빵 하고 터지기 일쑤였다. 그런 내가 체육 시간에 자유롭고 자신 있게 움직인다는 것은 결단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내가 오늘 필라테스를 시작한다. 두 번째 수업까지는 개별수업을 한다고 했다. 바디체크도 해야 하고 기본적인 기구 사용 방법과 호흡법, 기본 동작 등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몸을 잘 못 쓰는 나라서 개별 수업이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께 오롯이 관심을 받을 걸 생각하면 적잖이 부담스러울 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든다.


축지법을 쓴 것도 아닌데 벌써 나는 필라테스 센터 문 앞에 서 있다. 유리문에 달린 길쭉한 손잡이가 눈에 들어온다.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은 찬 바람이 부는 2월이라 손잡이가 차갑다. 차가움을 느끼며 크게 호흡을 한 번 하고 조심히 문을 열었다. 문에 달린 종이 흔들리며 쨍~한 소리를 낸다. '여기 필라테스 처음하러 오는 그 사람 왔어요.'라고 경고음이 울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낯선 인사말.


"경아님이시죠? 어서 오세요."


순간 긴장이 확 풀린다. 내가 '경아님'이라고 불렸다. 그렇다. 여긴 1번 혹은 2번 혹은 3번으로 불렸던 그 체육 시간, 그 운동장이 아니다. 게다가 '경아님'이라고 불리다니. 누군가에게 이름으로 불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부르라고, 불리라고 만든 게 이름이니까. 그런데 학교 졸업을 하고 난 후부터 나는 이름보다는 선생님이라 불렸고 엄마가 되고부터는 **이 엄마라고 불렸다. 그리고 요즘은 강사님, 대표님 혹은 작가님이라 불리고 있다. 물론 호칭 앞에 이름을 붙여서 불러주는 사람도 있지만 성까지 딱 붙여 '양경아 **님'이라고 불러주는 게 대부분이라 이렇게 이름만 불리는 게 낯설다. 그런데 묘하게 기분이 좋다. 느낌이 가볍다. 아마도 그건 내게 걸쳐져 있던, 호칭에 담겨 있던 책임이 없어졌기 때문이리라. 온전히 나로 봐주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난 필라테스를 하는 시간이 내내 좋을 것 같다.


"경아님. 여기 매트에 서 보세요."

"네. 선생님.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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