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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Feb 22. 2023

내 몸을 직면했다.

70대까지 40대의 몸으로 살길 바라는 아줌마의 필라테스 이야기 4

매트에 서 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따라 매트에 섰다. 앞에 있는 전신거울에 내 몸이 보인다.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발가락에 느껴지는 매트의 감촉이 보드랍다. 자꾸만 발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갈 곳 잃은 나의 팔은 몸 통에 어색하기 짝이 없게 달라붙어 있다. 아침에 옷 입을 때 전신 거울에 나를 비춰보기는 하지만 그건 옷매무새를 보는 것이지 이렇게 적나라게 내 몸을 보는 것이 아니니 온전히 내 몸 구석구석을 살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런 내가 오늘 내 몸을 '직면'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레깅스를 입고 있다는 것이. 레깅스의 도움 없이 그냥 탑에 핫팬츠를 입고 거울 앞에 서 있었다면 아마도 이렇게 똑바로 쳐다보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치는 살들을 어찌 맨 정신으로 보겠는가. 그것도 선생님과 함께. 아무리 선생님이 여자이고 중년의 몸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더 많이 보았다고 해도.


직업이 직업이니 만큼 마음의 직면은 수도 없이 해보았다. 대학원 시절 지도 교수님과 함께 동기들이 우르르 모여 진행된 집단상담 시간에 나는 처음으로 나를 직면했다. 원하지 않을 때, 준비가 안된 상태로. 내가 나를 처음으로 직면했을 때 그 분노감과 수치심과 억울함과 당혹스러움. 여러 사람 앞에 발가벗고 서 있는 기분. 한 동안 그날의 기억이, 느낌이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제대로 봐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라고 하지만 난 상담 기법 중 '직면'이 제일 기만적이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상담은 사람을 살리는 것인데 너무 갑작스럽거나 원하지 않을 때 하게 되는 직면은 오히려 독이 되기 때문이다. 마음이 적당히 안정을 찾아 자신의 힘든 내면을 보게 되더라도 의연히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거나, 상처를 다독여주고 감싸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상태에서 정말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직면'이기 때문이다.


난 그 어려운 직면을, 내 몸에 대한 직면을 레깅스의 도움을 받으며 하게 되었다. 분명 레깅스는 내 몸뿐만 아니라 몸을 볼 수 있도록 내 마음까지 감싸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직면한 나의 몸에서는 그동안 고민이었던, 빨리 없애버리고 싶은 살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이지 않는다기 보다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보였다. '생각보다 더 키가 작구나. 그리고 몸은 더 작구나. 이 작은 몸을 그동안 참 많이 구박하고 밉게 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에 뭔가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거울 속의 나와 내가 마주한 시간이 잠시 멈춘다.


......


헐. 이게 아닌데.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정신 차려. 넌 지금 살을 빼려고 왔다고. 원피스 지퍼 안 채울 거야?"

내 안의 앙칼진 자아가 소리를 지른다.


"그래, 알았어. 살 뺄게. 원피스 지퍼도 채워야지.

그냥 내 몸을 미워하지 말고 예쁘게 봐주면서 천천히 하자."

내 안에 늘 있지만 아주 잠깐씩 고개를 내밀어 있는지 없는지 도통 헷갈리게 만드는 그 따뜻하고 이성적인 자아가 앙칼진 자아를 다독인다.


운동이 심리적인 안정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상담을 하러 오는 분들께 많이 권하는데 그 효과를 오늘 내가 톡톡히 본 셈이다. 필라테스 한 회 수업이 50분 정도인데 지금은 첫 수업이고 시간은 고작 10분 밖에 안 지났다. 이 짧은 시간에 40년이 넘도록 함께였던 내 몸에 대한 완전히 다른 느낌을 가져보다니.


더 이상 내 몸이 밉지 않았다. 애처로웠다.

다시 날마다 새롭게 내 몸에 대해 직면을 해 보아야겠다.

짝꿍이 사 준 레깅스를 입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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