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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부터 잘 키우자 Feb 13. 2023

이래서 레깅스를 입는군. ㅎ

70대까지 40대의 몸으로 살길 바라는 아줌마의 필라테스 이야기 2

덜컥 필라테스를 등록했는데, 아차차~ 입을 운동복이 없다. 원래 여행은 옷 없어서 못 가고, 운동도 옷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던가. 요가나 필라테스나 헬스나 다 비슷하게 몸에 쫙 달라붙는 운동복을 입던데 혹시나 이런 거 입었다가 운동도 할 줄 모르는 초보가 너무 튈까 봐 선뜻 사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체육복을 입을 수는 없고. 사실 체육복도 없다. 운동하고는 너무 안 친해서. 이렇게 선택의 순간에 망설여진다면 마땅히 선생님께 전화를 하면 된다.


"선생님! 운동할 때 뭐 입나요?

"네. 첫날 바디체크 할 거니까 레깅스 입고 오세요."


바디체크. 몸 상태를 확인한다는 건데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살이 얼마나 쪘는지, 허리를 숙여 손끝이 바닥에 닿기는 하는지, 팔다리는 제대로 움직이는지를 본다는 건데 뭔가 있어 보이는 말 같다. 있어 보이는 말 앞에 놓인 나의 몸은 참으로 없어 보인다. 유연함이란 찾을 수 없고 근육도 없고, 균형감각도 제로인데.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지 실로 나의 몸이 걱정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걱정은 레깅스. 내가 입으면 웃길 것 같은데... 불편하지는 않을지... 그렇다. 나는 레깅스를 사 본 적도 없고 살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는 아줌마였다. 겨우 치마 입을 때 스타킹을 신는 정도인데... 그래도 선생님이 입고 오라고 하면 입어야지. 입고 오라고 하는 건 다~ 그 만한 이유가 있겠지.


레깅스를 산다고 했더니 짝꿍이 바로 사주겠다며 운동복 사이트를 열었다. 평소에 '그렇게 뚱뚱한 건 아니잖아.'라고 했던 남편의 말은 진정 빈말이었나 보다. 내가 레깅스를 입고 운동한다는데 어쩜 이렇게 좋아할 수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짝꿍은 내가 레깅스를 입고 운동하는 것보다 레깅스를 입는 것 자체가 좋았다고 한다. 하긴 짝꿍이 합법적이고 아주 노골적으로 쳐다볼 수 있는 혹은 조금 더 나아가 더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레깅스 자태는 내 몸뿐이지 않는가. 그동안 나는 짝꿍이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일명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나 보다 내 레깅스에 더한 관심과 기쁨을 가진 짝꿍과 함께 레깅스를 살펴봤다. 그런데 레깅스가 아니라 모델의 몸만 자~꾸 자꾸 눈에 들어온다. 이야~ 다들 얼마나 몸이 예쁜지. 이건 사기가 아닌가. 저렇게 예쁜 몸이라면 굳이 레깅스 입고 운동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하긴 저런 몸은 만들기도 어렵겠지만 유지하는 것도 퍽이나 어려울 테니 얼마나 운동을 많이 해야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운동을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운동은 모두에게 반복되는 숙제인 것 같다. 먹고 싸고 찌고 빼고. 인간이란 참으로 불안정한 상태인 게 분명하다. 사이트를 한 참 살펴봤는데 다 좋아 보이고 비슷해 보여 선택이 참 어렵다. 선택지가 많아지면 좋을 것 같지만 나 같은 초보에게는 선택이 더 어려울 때도 있다. 요럴 때는 후기를 보는 것이 진리. 마치 커닝페이퍼를 보는 듯하지만 나름 판단의 기준을 세울 수 있어 나쁘지 않다. 후기글이 가장 많은 것을 골라서 읽어봤는데 다행히 평가가 좋았다. 그럼 요걸로 낙점!


대한민국의 초고속 배달 서비스를 통해 바로 다음날 레.깅.스.를 받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을 뜯었는데, 헐… 다섯 살짜리 꼬마 옷 같다. 과연 이 조그마한  옷이 내 몸을 받아 줄지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진다. 짝꿍이 웃으며 입어보라고 하는데, 저 웃음은 기대감이 부풀어가는 과정인지, 놀리기 위한 짓궂음이 올라오는 과정인지 알쏭달쏭하다. 순간 가슴속에서 뜨겁게 올라오는 '내 필히 이 작은 레깅스에 내 몸을 온전히 담아 보고야 말리라.' 다짐이 솟구친다.


높이 뛰기 도움닫기를 하는 선수처럼 레깅스에 집중한다.

처음으로 잠수를 하는 아이처럼 숨을 꾹 참는다.

두 눈을 부릅뜨고 레깅스에 한쪽 다리를 넣었다.

결코 평소 입던 바지처럼 두 다리를 동시에 넣으며 순식간에 입을 수는 없었다.

서서 입으려던 나는 어느새 침대에 걸터 앉아 있었다.

그리고 옷 입기가 서툰 어린 아이 마냥 레깅스를 낑낑거리며 당기고 있었다.

드디어 레깅스 밖으로 발가락이 보인다.

뒤 이어 발뒤꿈치가 나오면서 레깅스가 살짝 튕겼다.

마침내 레깅스에 한쪽 다리를 완전히 다 넣었다.

이게 결코 끝이 아니다.

내 다리는 두개다.


다시 한번 손에 힘을 주고 두번째 다리를 넣고 레깅스를 위로 위로 당겨 본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본다.


발목부터 종아리를 지나 엉덩이에 전해오는 레깅스의 그 느낌이란.

그 쫀쫀함이란 그동안 입었던 여러 바지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세포 하나하나가 쬐어오는 느낌.

내가 기어이 레깅스에 몸을 다 담았다.

내 몸을 다 담아버렸다.......


이상하다.


......


분명 불편하고 웃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편하다. 그리고 전신 거울에 비춰본 나의 모습은... 뭐지? 옷 가게 매장에서 날씬해 보이는 일명 요술 거울은 봤어도 요술 옷은 처음이라.내 몸이 날. 씬. 해. 보인다. 물론 앞에서만 봐야 한다. 옆모습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탄력도 있어 보인다. 손에 느껴지는 쫀쫀한 감촉. 레깅스의 감촉이지만 내 피부인 듯 잠시 느껴본다. 나보다 더 감탄하는 남편의 눈빛에서 음흉함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데. 레깅스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질 핏이니 워~워~ 눈으로만 사랑해 주시길... 그 어떤 보정 속옷 보다 효과가 좋다. 갑자기 운동할 자신감이 생긴다.


레깅스!

아! 요술 옷.

이래서 레깅스를 입는군! ㅎ


"이 정도의 편안함이라면 평소에 집에서 입어도 되겠군."

나의 이 한마디에 남편은 레깅스를 두 개나 더 주문해 주었다.


"그대의 진심을 고이 받아 열심히 입고 운동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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